인생은 잠깐의 드로잉..우순옥의 시적 성찰

개념적인 작업으로 한국적인 여백의 미를 보여주었던 중견작가 우순옥(53,이화여대 교수)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잠시 동안의 드로잉’이란 이름의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오랫동안 추구했던 사색적인 작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즉 구체적인 사물이 아닌 공간, 시간 같은 비물질적인 존재를 구현해낸 설치와 드로잉,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잠시 동안의 드로잉’이란 타이틀처럼 작가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꿈처럼 짧은 인간의 삶을 깊이있게 성찰했다.
우순옥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 보다, 만질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한다. 그리곤 어떤 상태, 그 내면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도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철학적 응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듯한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네온 텍스트 작업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나는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 이라 생각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 전반에서 그 사유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갤러리 1층에 넓게 설치된 작업 ‘신기루’는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감명깊게 봤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탈지아’, 베르너 헤어조크의‘파타 모르가나’ 등 12편의 작가주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영상 이미지를 보여주는 12개의 소형 텔레비전 옆에, 작가는 부드러운 들꽃 식물을 심어 관람객들이 마치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한쪽 벽에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를 담은 ‘예술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다’가 상영되고 있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다가 한 번씩 작업실을 서성이며 오래 전 보르헤스의 책에서 읽은 불교에 관한 짧은 시를 읊조리기도 한다. 관람객 또한 이 공간에서 작품을 음미하며 ‘시적 관조’에 빠져들 수 있다.
우순옥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달’의 존재는 작가에게 때 묻지 않은 영혼이 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때론 어떤 깨달음의 의미이기도 하다. NASA에서 찍은 달의 모습을 느리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그 곳’은 계속 변화하는 달의 모습에서 우리가 늘 바라보긴 하나 한 순간도 품을 수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한 동경을 상기시킨다.
우순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장소, 기억, 존재와 부재, 기다림 같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마치 드로잉하듯 쓰고 지우고 있다. 그 반복의 여정을 통해 빚어진 형상은 이미 ‘없는’ 그러나 그 없음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을 관객 앞에 은은히 환생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 시대에는 우순옥으로 살고 있지만 그전엔 내가 작은 물방울이었을 수 있고 이후의 삶에서는 하나의 다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인생이 하나의 단선이 아닌 하나의 원을 그려가는 과정일 수 있고 그것을 ‘인생의 드로잉’으로 생각해 전시명도 그렇게 붙였다”고 설명했다. 
우순옥은 이화여대 미대 및 대학원 졸업 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7년여 간의 독일 유학은 작가의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111114000354
이영란 선임기자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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