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자를 닮은 한국관

《차이들의 풍경》은 한국관 전시에 특성을 부여할 주제적 핵심 개념으로서,복수적 차원의 차이들, 크게는 예술과 자연, 내부 공간과 외부 풍광의 차이, 작게는 작가들과 작품들간의 차이들이 만들어 낼 개념적 전시 풍경을 말한다. ‘명상적이고도 역동적인‘ 전시 풍경으로 타국가관들과 차별화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차이를 만들어 낼 이 《차이들의 풍경》은 한국관의 구조적, 공간적, 장소적 특성으로부터 그 개념을 도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관 전시의 특성, 나아가 한국관의 정체성은 한국관 자체의 사이트 특정성으로부터 출발한 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관은 베니스 동남쪽에 위치한 자르디니 공원 내 중심 노변으로부터 후미진 곳에 사선으로 위치해 있고 크기도 작아 주변의 다른 국가관들,즉 중심로에 면하고 있는 커다란 러시아관, 일본관, 독일관, 캐나다관, 영국관, 프랑스관들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선으로 자리잡은 덕분에 타관들로부터 분리되기 보다는 그것들과 오히려 유기적으로 관계 맺어지는 의외의 효과가 발생하며, 더구나 나무숲이 울창한 해안 풍광이 둘러싸고 있는 공원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까닭에 일단 그 앞에 당도하면 자르디니 공원의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더욱 만끽할 수 있는 이점도 갖는다.
 
건축물 자체는 일부 벽돌과 나무벽을 제외하면, 주로 철골구조와 유리로 되어 있어 상당히 현대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연과의 합일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천창과 앞 뒤 유리 벽면들을 통해 내부로 관통하는 자연 풍광이 건물을 자연의 일부로 삼켜버릴 뿐 아니라, 특히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빛은 견고한 건축물 자체를 탈물질화, 소멸시킴으로써 단지 풍경만을 남게 한다. 건물 구조 역시 사이트의 자연적 특성에 조응하듯 재단되지 않은 듯한 비정형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때 화장실로 사용되었던 자그마한 입방체구 벽돌 건물을 허물지 않고 건축하는 것이 한국관 건립의 조건이었다고 하는데, 그 고건물에 잇대어 지형이 허용하는 제한적 범위 내에서 조성된 듯한 장방형, 궁형의 신축 공간들이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자연적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형을 반복하듯, 건물 내부 역시 비정형적이고 불규칙한 공간들로 구성된다. 정사각형, 직사각형, 궁형, 파형의 공간이 구획 없이 펼쳐져 있고 천정 높이도 제각각이다. 동남쪽에 위치한 입구 유리문을 들어서면 천정 높은 기다란 장방형의 주 전시공간과 그 오른편으로 낮게 굽이 치는 파형 공간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문 좌측은 상대적으로 시야에서 가려져 있어 방향을 좌로 틀어야만 궁형 공간과 그 뒤쪽으로 연결된 구 벽돌 건물 내부 공간으로 인도된다.
 
한국관의 건축가 김석철과 프랑코 만쿠조는 수상도시 베니스의 자연풍광을 요약하듯, 북동쪽 벽면을 해안의 파도를 연상시키는 파동벽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건물 옥탑에는 돛줄처럼 생긴 사선의 쇠줄들을 장착시켜 그 모양새가 배의 갑판을 크게 닮게 하고, 해안가 갯벌로 인도하는 푹 꺼진 지면으로부터 건물 후
면을 들어올려 부둣가 선창을 연상시키고 있다. 한국관은 이렇게 자연적 조건에 따라, 그것에 순응하는 구조로 건조되었다는 점에서 환경친화적인 현대건축을 표상하는 동시에, 바로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전통 정자에 비견될 수 있다. 전면과 후면의 유리벽면을 통해 주위 풍광이 관통되는, 즉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순환적 소통 구조에서 사방이 열린 한국 정자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자연 한가운데에 지어지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이 그냥 스쳐 지나가게 하는, 산수가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아담한 공간, 자연과 대화하고 명상할 수 있는 장소, 그리하여 전통 산수화에 많이 등장하는 한국의 정자를 유추시키듯, 자르디니 공원의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관은 앞뒤 안팎이 없는 정자의 통풍 구조처럼 유리면을 통한 시각적 통풍을 일궈냄으로써 자연과의 합일, 또는 자연과의 감정이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2. 관통의 미학에 의한 공간적 뒤집기

한국관은 건축적으로는 자연친화적이고 열린 구조라는 맥락에서 현지로부터 “서양 건축으로 표현된 동양 정신“ 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반면, 국내적으로는 1995년 건립 당시부터 유리벽 뿐 아니라 궁형, 파형 등을 포함하는 특이한 구조 때문에 전시장으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종전의 전시 관계자들은 유리벽을 코팅하거나 벽면으로 차단하고 내부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번 한국관 전시는 건축물의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전시 내용과 연출의 시발점으로 수용하여 건물의 특성을 살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전시 개념과 특성을 건물과 주변 경관, 정자의 열린 구조를 닮은 건물의 구조적 특성으로부터 도출하여 그것이 자연스럽게 한국관의 특성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동양적인 것, 전통적인 것보다는 한국관의 사이트 특정성으로부터 한국관의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의도이다.
 
이를 위해 우선 천창을 막은 천정 만을 남겨두고, 유리를 막은 모든 가벽을 제거하거나 유리면의 코팅을 벗겨내면서 건물의 원형을 복구시킨다. 그럼으로써 외부 풍경을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자연 채광을 강화시키며 공간의 투명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베니스 해안풍경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들이고 내부의 예술작품을 밖으로 확장시키는 관통의 미학으로 공간적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그동안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던 궁형이나 파형의 죽은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전시 면적을 넓힐 뿐 아니라 정형적 구조로 이루어진 타국가관들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연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작가 선정은 이러한 구조적, 공간적 요구와 맞물려 이루어졌으며 작가들은 모두 사이트 특정적 현장 작업을 신작으로 발표한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장방형의 중앙 공간과 우측의 파동벽이 하나의 공간으로 펼쳐지는데 맞은편 유리벽을 통해서 훤히 내다 보이는 자연적 해안풍경이 내부의 여하한 예술을 불허하는 듯 강렬한 이미지로 들이닥친다. 이에 정면 공간을 과감하게 비워놓고 길이 17m의 파동 벽면을 황인기의 대하 벽화, 컴퓨터로 재구성한 그의 디지털 산수화로 장식할 것을 구상해 본다. 현장을 답사한 작가는 한걸음 나아가 파동벽 분 아니라 이웃한 유리 벽면까지 연결하는 장장 28m의 벽화를 제안한다. 유리를 통해 내다 보이는 실제 베니스 풍경과 유리면에 재현된 전통 산수화가 실제로 병치되는 국면에서 외부와 내부의 공간적 뒤집기라는 전시 의도가 요약적으로 명시될 것이다. 결국 이 산수 벽화는 시공을 초월하는 관념적 산수화의 은유이자 한국관의 사이트 특정성을 환유하는 알레고리 풍경화로서 존재하게 된다.
 
좌측 공간은 정면 시각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한눈에 펼져지는 중앙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궁형, 정방형 등 오목조목한 분할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서영의 밀봉적 오브제로 은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서영은 이번에 오브제를 건축적으로 확장, 건축물 구조 자체를 버팀목으로 이용하는 사이트 특정적 오브제 설치작업을 선보이기로 한다. 궁형 공간의 철조 기둥을 심으로 커다란 가짜 기둥을 만드는 한편, 입방체 구 벽돌 건물 내부 공간에 일정 부분 손질을 가하고 특정 오브제를 배치하여 그 방을 수수께끼 같은 시각적 픽션의 장으로 전환시킨다. 외부 풍광에 조응하는 황인기의 풍유적 벽화와 대조적으로 정서영의 초현실적 픽션은 인공적 인테리어 속에서 펼쳐지지만, 유리벽을 통해 안과 밖을 흐르게 하는 황인기의 유리 벽화와 마찬가지로 후면 출구를 통해 내부 픽션을 외부로 확장함으로써 건물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한국관은 노변으로부터 약간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옥외 작업을 통하여 주의를 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박이소를 초대하는데, 그는 스펙터클한 야외 작업과는 거리가 먼 허술하고도 썰렁한 각목의 구조물을 설치한다. 그 구조물의 일부를 이루는 내부형 미니어처 목각과 건물 입구의 쇼윈도처럼 생긴 작은 공간에 놓여지게 될 소형 조형물이 유사한 개념의 미니어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상호 연결되면서 시각적, 동선적으로 건물의 안과 밖을 연결시키지만, 실상 기념비적 외부 조형물을 내부 미니어처로 대치하는 그의 역전적 제스처에 의해 황인기의 산수 벽화를 통해 이루어진 공간적 뒤집고 다시 한 번 수행된다. 여기에 그의 미니어처 조형물들이 크기와 위세를 겨루는 빌딩들이고 보면 그의 뒤집기 작업이 공간적 도치 이상의 인식론적 게임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건물 안과 밖을 소통시키는 동시에 안과 밖의 질서를 도치시키는 3인 참여작가들의 사이트 특정적인 작업에 의해 생성적이면서도 해체적이고, 명상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차이들의 풍경‘이 창출된다. 전통 산수를 디지털 수열로 대치한 황인기의 알레고리 풍경화, 조형적 응축과 확장으로 불가능한 언어적 표현을 외 화시키는 정서영의 픽션적 풍경, 허술함의 미학으로 문명에 대해 비판을 던지는 박이소의 소담한 문화 풍경… 예술이라는 이름의 이러한 개념적 풍경들은 베니스 해안의 실풍경과 교차, 병치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차이의 풍경을 일궈 낸다. 결국 한국관의 구조적 특성과 장소적 특성에 의거한 외부와 내부, 예술과 자연의 충돌과 조화가 엇갈림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3인 참여 작가의 미학적, 이념적 차이가 엇박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타관들과 차별화되는 한국관의 총체적 이미지, 즉 관조와 동요의 양극을 왕래하는 ‘차이들의 풍경‘이 창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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