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Seoul: 서울은 영감의 원천이다

독일인 화가의 눈에 비친 한국의 색은 무엇일까. 
잉고 교수는 회색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콘크리트나 집과 건축에 사용된 페인트를 봐도 회색이 조화를 잘 이룬다고.


독일 화가 잉고 바움가르텐

연구실 문을 열자 커다란 한국 집 그림이 반긴다.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인 그는 한국 집의 건축양식을 그린다.
“지붕을 보세요. 마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잉고 바움가르텐이 작품집 속의 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뜻 봐서는 보이지 않는 그곳에 시선이 갔다.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한국 집을 오브제로 하고, 그가 특히 집중하는 것은 오래된 집의 독특한 구조다.
“건물의 디자인이나 건물이 창조해내는 분위기를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건물이나 집의 지붕을 자세히 보면, 좌우대칭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구조예요. 콘크리트벽도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죠. 그런 독특함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저는 한국의 건축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시도한 집합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건축에선 대문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가 서울에 매료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모르고 지나치는데, 이 독일 화가는 그 구조가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통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서울이 외국 예술가들에게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서울은 오랜 역사에서 생성된 전통문화가 풍부한 도시예요. 박물관도 많고 영감을 얻을 요소가 많은 도시죠. 그리고 한국 예술가뿐 아니라 외국 예술가들에게도 지원이 많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요.”
독일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파리 유학을 거쳐 일본 유학 중이던 그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 데는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의 역할이 컷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아내가 6년 전 그가 홍익대에 부임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
“워낙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파리에서 공부할 때도 독일과 다른 프랑스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는데 아시아에 오니 유럽과는 확연히 달라요. 한국은 파리에서 공부할 때 학교의 ‘스쿨 트립(School Trip)’ 프로그램에 선발돼 대전엑스포에 참여하면서 처음 방문했어요. 그 뒤로 아내 덕에 몇 차례 더 방문하면서 더 많이 보게 됐죠.”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대한 관심은 결혼 후 가족이 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더 커졌다. 그는 서교동 일대에서 뜻밖의 영감을 얻었다.
“상수동에 살 때부터 동네 산책을 즐겼어요. 그러다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오래된 집과 골목이 눈에 확 들어왔죠. 굉장히 빨리 변화하는 서울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적 요소를 발견한 겁니다. 공원에 마련돼 있는 운동기구도 신기했어요. 이것을 그리자! 그렇게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죠. 이후로 부동산에서 정보를 얻어 오래된 집, 오래된 빌라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는 가족과 함께 서교동은 물론 종로와 올림픽공원도 자주 간다. 휴식과 영감을 동시에 얻는 산책이다.
“종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에요. 오래된 가게도 많고, 꽃이든 악기든 한 가지 물건만 파는 특화된 건물이 많아요. 인상 깊고 재밌는 공간이죠. 올림픽공원은 조각품도 많을뿐더러 건축양식을 주의 깊게 보면 입구인 평화광장부터 모든 건물이 아주 흥미로워요.”
그가 자신이 찾아낸 집과 빌라, 건축물의 사진을 보여줬다. 한국적인 집의 구도, 건축양식, 특이한 대문 사진 등이 많았다. 몇몇 사진은 리모델링 전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작품으로 활용했던 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록해둔 것이다. 그는 작품 속 집의 리모델링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은 굉장히 역동적이죠. 기회가 많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전통이 위협받는다는 점은 부정적이죠. 반면 파리는 모든 것이 오래되고 바뀌는 일이 좀처럼 없어요. 덕분에 건축물의 분위기나 가치가 그대로 보존되죠. 그런데 한국은 집, 건물, 가게가 계속 바뀝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데 적응하려 할 뿐 전통과 오래된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요즘 돌아다니다보면 그리 한국적이지 않은 건축물을 많이 발견해요. 때로는 전통적 가치가 완전히 파괴되고 사라지는 모습도 봅니다. 소중한 가치가 보존되고 더 발전될 기회가 없는 것 같아 아쉽죠.”
그는 자기 작품이 한국의 오래된 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가치를 알리고, 옛 모습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며 전통의 보존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매개체가 되길 바랐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위해 그의 작품 속 집을 찾아 서교동으로 향했다. 잉고 교수는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몇몇 집과 빌라를 알려주며 리모델링된 집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줬다. 그는 서교동의 변화상을 완전히 꿰고 있었다. 작품 속의 집에 가보니 그가 이 집에서 발견한 구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주인에게 이 집이 독일 화가의 작품 소재였다고 말하자 “이 오래된 집이 뭐가 좋다고 그렸대요?” 하며 의아해한다. 그래서 잉고 교수의 말을 전해주었다. 대문 입구와 방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다른, 대칭이 독특해서였다고.


http://ju-bu.com/common/cms_view.asp?cd1=100103&cd2=100115&rai=1982

주부생활 2014년 11월호
[에디터] 이인철, 성영주, 박진아·[사진] 김태환
Styler Jubu Monthly Magazine, Seoul
Nov. 2014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