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처음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김순기에게 있어서 비디오는 장자와 비트겐슈타인, 석도의 화론과 선불교 연구를 통하여 형성된 '無爲', '우연', '변화', '혼돈', '영원한 현재', '자유', 의 관념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매체였다. 그래서 그의 비디오는 'vide & O' (空과 시초 이전의 가능성인 제로, 혹은 작가가 즐겨쓰는 표현인 '빵점')이며 'vide et eau' (空과 무형의 물(水))인 것이다. 백남준의 "多多益善"과는 반대로 김순기의 비디오는 항상 근원적 혼돈(O)을 지향하기 때문에 백남준은 약간의 비평을 섞어서 김순기를 "컨셉츄얼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이번 전시는 김순기의 최근작으로 꾸며져 있다. 그는 현 세계를 움직이는 두 가지 원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별자리들의 움직임이며 다른 하나는 주식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주식의 오르내림은 얼핏보면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인간사회의 변수를 넘어서는 비정한 테크놀로지의 반영물로 진화한 채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 사유를 반영한 작품이 바로 「주식거래 株式去來 Stock Exchange」 이다. 이 작품은 TV모니터로 된 네 개의 높은 기둥에 올라앉은 판잣집의 모양을 하고 있다. 네 개의 기둥에는 그가 촬영한 일상의 장면들이 쉴새없이 나타나고 있고, 어린아이들이 마음대로 붙인 신문과 잡지로 된 판잣집은 무작위로 보이는 이미지들을 전시장의 벽면과 천정으로 쏘아대고 있다. 또한 그 이미지들과 함께 울려퍼지는 음악은 미니멀한 사운드이다. 이 이미지들과 사운드는 랜덤하게 선택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닛케이 주식거래소와 다우존스, 유로50, 코스닥의 주식지수 변동에 따라 선택되는 것들이다. 「주식거래」는 이제까지 상황을 설정하고 우연을 조장하는 수준으로 작가의 역할을 한정했던 작업들과는 달리 경제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 한국사회, 거품경제, 나아가 거품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통해 주식변동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또다른 '대자연'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결국에는 인간이 그 인공적 대자연의 노예가 되었다는 불행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김순기의 작품은 고정된 미학적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백남준의 작업이 최소한의 조형적 외향과 신화적 서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대중들과의 높은 친화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김순기의 작업은 작업 자체의 컨셉을 물화 物化 시켜내는 기본적인 장치들로만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소위 '썰렁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그의 작품에 주목한다면 그 작품들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은 「견우와 직녀」이다. 아트선재센터의 계단에 설치한 작품은 양편으로 태극기와 인공기가 있고, 태양광으로 동작하는 작은 케이블 카가 반복적으로 오가도록 되어 있다.
「복권동네」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즉석복권들을 모아 만든 작은 판잣집 모형들과 비디오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꽝'으로 판명되어 버려진 즉석복권들로 만들어진 작은 집들이 연출해내는, 옹기종기 모여 앉은 복권동네의 예쁘장한 풍경은 우리들이 느끼는 일상 삶 속에서의 행복과 안온함이 '꽝'난 복권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아트선재센터의 한옥관에 설치되는 「존 케이지」 와 「이애주」이다. 「존 케이지John Cage」는 (빈말 Empty Words) 과 (미라쥬 메르발 Mirage Verbal)을 연주하는 존 케이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두 대의 TV를 설치함으로서 존케이지의 이중창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빈말'은 프랑스에서 열렸던 멀티 미디어 페스티발 -김순기와 초대된 사람들(1986) 에서의 공연장면이다. 「 이애주」는 호주의 사막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이애주의 모습과 동물들의 춤이 이조백자 위에 프로젝션 되는 작품이다.
「Vide & 0 얼음 비디오」는 TV모니터를 얼음으로 주형하고, 얼음 비디오가 실온에서 녹아 결국 없어져 버리고 마는 작품으로 '빈 그릇'인 비디오에 대한 일종의 언어유희로서 관객의 감상하는 시간 그 자체가 비디오가 되는 것을 연출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비디오 아트의 초기정신을 고수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9월7일에는 성완경 교수와 함께 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백남준과 김순기의 전시를 같은 기간동안 서울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via neolook.com
photos via kimsoungui.com, lump.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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