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물의 아름다운 담는 조춘만: 용접사에서 사진가로 Industry Korea, 조춘만


“조춘만은 오랜 세월을 용접사로 일했기 때문에 기계의 메카니즘을 몸으로 터득해 알고 있는 사람이다.(중략)십만톤짜리 선박의 깊숙한 곳까지 기어들어가서 용접을 하면서 몸으로 배운 시스템의 메카니즘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보는 구조물에 대해 해석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그런 것들에 대해 막연한 스펙터클로만 대하면 그런 사진은 아마추어들이 찍는 저녁노을 사진처럼 한없이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산업의 고고학 : 조춘만의 기계 사진들, 이영준) 

지난 4월 사진가 조춘만(59)의 개인전 가 갤러리 K에서 열렸다. 그의 두번째 개인전이자 오로지 산업구조물만을 카메라에 담아온지 13년만이다. 한때 용접사로 뜨거운 용접봉을 들고 누비던 현장을 사진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필름에 새기고 있는 조춘만. 비평가 이영준의 설명처럼 복잡한 구조물의 구석구석을 제 몸처럼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사진에는 철과 콘크리트의 삭막함이 아닌 그것이 지닌 아름다움과 거대한 생명체와 같은 에너지가 있다.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생동감 있는 인체를 그려내듯 산업구조물의 생생한 조형미를 사진으로 드러내는 조춘만을 만났다.  


용접사로 산업현장에서 오래 일해왔는데,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1974년에 처음 용접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시급이 70원이었는데 한달에 380~480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쉬는 날은 한달에 하루 정도였죠. 울산과 포항 그리고 중동까지 새로 짓는 정유공장, 제철소, 발전소 등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쉬지 않고 일했지요. 83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년 동안 근무한 뒤 귀국하면서 처음 니콘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물론 어떤 사진적 의식 없이 가족의 모습을 찍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0년이 더 지난 1993년, 가까운 청소년복지회관에서 사진을 배우면서부터였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최근 발표한 ‘Industry Korea’ 시리즈는 어떤 작업인가요?
1990년대 초반에 철거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던 부곡, 용연, 염포, 대일마을 등은 울산의 대표적인 공해지역이었습니다. 첫 개인전을 통해 발표한 ‘TOWNSCAPE’ 시리즈는 이들 지역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록한 흑백작업이었죠. 휴머니즘적 시각이 많이 묻어났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흑백 다큐멘터리 작업과 함께 산업구조물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오래 살았고 산업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업구조물로 시각이 옮겨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할 때인데 은연중에 살롱풍의 사진색이 묻어나와 그것을 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이런 과도기를 보낸 이후 본격적으로 ‘Industry Korea’ 시리즈의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Industry Korea’는 산업현장의 대형 구조물들을 조형적 대상으로 바라본 컬러작업으로 이것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포착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산업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공단주변을 자주 다니다보니 산업스파이로 몰리는 웃지못할 일도 많았습니다. 산업현장이라는 민감한 소재 때문에 발표에도 제약이 많았구요. 개인전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입니다.

거대한 산업구조물을 촬영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촬영을 위해 산을 많이 오릅니다. 언젠가는 울산의 덕유산을 두번이나 왕복하며 무박 3일로 산행을 한 적도 있습니다. 구조물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대형카메라로 작업하고, 화면 전체에 초점이 맞도록 조리개를 f64까지 조여서 촬영합니다. 그러다보니 맑은 대낮에도 바람이 불면 촬영이 쉽지 않습니다. 철구조물만이 갖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산과 구름 같은 자연환경은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또한 외부 환경에 의해 구조물의 이미지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아주 맑은 날 주간에 주로 촬영하고 일정한 빛의 방향만을 고집하는 일관성을 지키고 있어요. 촬영을 위해 먼 길을 달려갔더라도 이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그냥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접사로서 일한 경험이 산업구조물 촬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산업시설물들의 크기는 무척 거대하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으면 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일할 당시엔 몰랐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세월이 흐른 뒤에야 확인한 것이죠. 제가 촬영했던 공장이나 건조 중인 대형선박, 거대한 철구조물들의 상당수는 제가 현장에서 직접 용접했던 것들입니다. 익숙함과 애정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이 거대한 산업구조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만 킬로미터의 얽혀있는 파이프라인 중에서 손가락만큼 작은 라인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구조물 전체가 동맥경화를 일으킵니다. 인체의 혈관과도 같아요.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철구조물들이 단순히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살아 숨쉬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냉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도 잊지 않습니다.

‘Industry Korea’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또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함이 없습니다. 오늘의 거대한 산업풍경도 언젠가는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을 테지요. 또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한 대한민국의 산업시설물들이 저의 사진을 통해 공해의 대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기계로 만든 시설물은 정직합니다. 그저 인간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기존의 작업은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다만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다양한 산업풍경으로도 시선을 돌리고자 합니다. 



INDUSTRY KOREA

인체의 수많은 혈관처럼 얽혀있는 광대한 산업현장의 철 구조물들.
이 산업현장에서 나는 수없이 땀방울을 흘렸다.
최근 많은 산업들이 타임머신을 탄 듯 빠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와 함께 한 추억이 점점 회색으로 바래져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산업현장의 철 구조물들이 나와 함께 남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조그마한 필름에 이들을 담아두고 싶었다.

1974년 꿈 많은 18살, 먹고 살기위해 배관용접공으로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중공업, 발전소, 제철소, 정유공장, 석유화학. 국내 및 국외 산업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작업 중 용접봉을 물린 고대기를 잡은 손의 작은 미동조차도 배관 용접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에 용접봉이 다 타들어 가도록 나는 가쁜 숨을 참으며 용접했다. 얽히고설킨 파이프라인과 볼 탱크, 뼈대를 이루는 에이치(H)빔 등, 되돌아보면 참으로 힘겨웠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아려오는 동시에 아름답게도 느껴진다. 함께 뒹굴었던 산업 구조물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를 왜 끌어당기는지, 왜 나를 산업사진가의 길로 인도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들이 나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용접사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용접사(鎔接士)는 전문적 기예를 닦은 사람이라는 뜻의 선비 ‘사(士)’를 쓰기 때문에 ‘용접이 예술’이라는 말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용접자체가 늘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했고, 아마도 그 사실이 현재의 내가 산업구조물에 깊은 애착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공장이 완성되어 생산품이 생산되기까지는 구조물의 뼈대인 에이치(H)빔과 기계 설치, 내용물이 이동되는 파이프라인이 마치 인체의 혈관처럼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산업구조물이란 결국 인간의 두뇌와 노력으로 만든 또 하나의 거대한 스케일의 인공적인 창작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과거의 산업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화를 거쳐 오면서 현실의 한 편에 ‘살아있었노라’ 라는 자국만 남길 뿐, 흔적의 잔향이 짙게 남아 있지는 않다. 단순히 먹고 살기위해 일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전혀 다른 감성적 시각으로 다가온 산업풍경을 낱낱이 해부하듯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지난날 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스펙터클한 철 구조물들이 머지않은 날에 사라질 것 같아 늘 마음이 저려온다. 언젠가는 우리의 곁을 떠나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그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오늘날 시점에서 재해석하여 산업적 풍경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의무이자 하나의 운명이기도 하다.

 - 작가노트 중에서

▲조춘만은 2003년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까지 산업구조물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개인전으로 2002년 (문화예술회관, 울산/ 고토갤러리, 대구)와 2013년 (갤러리 K, 서울)을 열었고 2001년 <개발, 그리고 또 다른 시작>(고토갤러리, 대구), 2004년 <다큐먼트>(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6년 <시련과 전진>(국회의사당, 서울)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월간 사진 2013년 7월호, 106-109 쪽
글|조미리기자
https://www.monthlyphoto.com/webzine/special_view.asp?m_seq=10&s_seq=377
https://books.google.co.kr/books?id=9b-tAwAAQBAJ&pg=PA106&lpg=PA106&dq=2002+TOWNSCAPE,+%EC%A1%B0%EC%B6%98%EB%A7%8C&source=bl&ots=zU4WEEufHM&sig=Ok-uetYteDTl8aJXzASJPogYV54&hl=ko&sa=X&ved=0ahUKEwik08aJxd3LAhWBM5QKHbF6DSIQ6AEIPjAJ#v=onepage&q&f=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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