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의 새발견 modernity and technology 모단 떼끄놀로지는 작동중


2013년 문화역서울 284 기획展3
  

2013_1123 ▶ 2013_1231 

참여작가
강홍구ANG Hon Goo_권혜원KWON Hye Won_금혜원KEUM Hye Won 권용철 KWON Yong Chu_강정윤 KANG Jeon_김상균_김수영KIM Su Young 나점수 NA Jeom Soo_디자이너스파티Designersparty_배동학BAE Dong Hak 배윤호+허성범BAE Yoon Ho+HEO Sang Bum_안성석AHN Sung Seok 우주+림희영U_Joo+LIM Hee Young_유화수YOO Hwa Soo_이광기LEE Kwang Kee 이문호LEE Moon Ho_영섭KIM Young Sup_이배경LEE Bei Kyoung_이완LEE Wan 정직성JEONG Zik Seong_조병훈CHO Byung Hoon_조춘만JO Choon Man 차혜림CHA Hye Lim_최중원CHOI Jung Won_홍승표HONG Seung Pyo
총괄기획 / 민병직
큐레이터 / 정혜윤_최지혜_신고운(홍보)

문화역서울 284 CULTURE STATION SEOUL 284 

이번 전시의 출발은 전시가 개최될 바로 이곳, 문화역서울 284(구서울역사)이다. 문화역서울 284의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서있는 곳을 돌이켜보는 전시인 셈이다. 서울역이 가진 장소적 맥락인 근대성의 묘한 이미지로부터 이번 전시는 비롯되었다. 1925년 완공된 경성역은 일제 식민지 제국주의의 첨병이자 서구화된 외래문명의 대표적인 건물로 당시 한국의 가장 첨단 근대문명과 문화적 파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다. 1920~30년대의 가장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작동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서양식 건축문화를 일본식으로 다시 적용한 건물 자체도 그렇지만, 역사 내부의 각종 신식 공간들, 예를 들어 끽다점과 양식당 등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달리고자 했던 고급문화의 온상들이었고 열차의 작동 자체도 당시의 뭇사람들과 근대의 속도감과 기술문명의 찬탄을 주기에 충분한 공간적 매력을 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았던 당대 지식인들에게 서울역은 각별한 장소적 감성을 전한 공간이기도 했다. 전쟁을 전후로 하여 서울역으로 개칭한 서울역은 다시 1960, 1970년대 한국 근대화의 또 다른 이미지로 작동한다. 한국 근대화의 심장부 같은 산업화의 상징들이 그런 역할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근대성은 1920,30년대 그리고 1960,70년대의 두 시기적 축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두 시기 모두 그 색다른 문화적 파장과 빛깔과 함께 한 만큼 눈여겨볼만한 시대적 두께를 지닌다. 화려한 서구의 문명을 힘겹게 받아들여야 했던 전자의 모던 시기나 전후 힘든 근대화의 노력 속에서 힘겨운 사회발전을 이루어야 했던 후자의 이른바 '새마을 한' 시대는 한국사에서 남다른 시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구의 근대화를 한국적인 근대성으로 숙성시켜야 했던 힘겹기만 시절이었던 동시에 근대화와 산업화가 서로 경쟁을 하듯 속도를 내면서 오늘날의 한국의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힘찬 동력의 한 복판에 이들 시기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던 것이고 이 두 시기를 가로지는 것이 있다면 그 시기를 열심히 서울역의 기차가 내달렸다는 점이다. 1990년대 KTX가 생기고, 구서울역사가 문화재가 되고 다시 문화역서울 284가 되기 전까지의 이곳 구서울역은 우리의 부지런하고 발 빠른 근대화, 그 힘겨운 속도의 대표적 이미지였고 이번 전시는 이러한 서울역이 가진 역사적인 장소성의 맥락과 근대화의 동력, 테크놀로지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는 역사와 결부된 시대적인 접근이나 혹은 연대기적 구분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근대'의 새발견이 아니라 '근대성'의 새발견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재연하고 재현하는 박물관식 전시는 동시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이미 서울역사 자체가 근대성 자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근대 전시'가 아니라 근대성을 다루는 '동시대적인' 전시이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전시의 핵심적 키워드는 부제에 있는 '테크놀로지'라는 개념에 숨어 있다. 앞서 말한 서울역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우리의 근대 시기에 차지하는 위상과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놀라게 했던 역할들 말이다. 이번 전시는 그 핵심 개념이 바로 근대성의 테크놀로지라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조금 더 확장하여 이른바 근대성을 구현했던 테크놀로지는 무엇이며, 그 테크놀로지는 어떻게, 지금까지 구동하는가에 무게중심을 두고자 한다. 지금에서 보자면 많은 것들이 변하고 달라지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자면 이러한 근대 테크놀로지 작동의 많은 부분들이 지금, 동시대에도 여전히 관통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시대를 지속적으로 작동케 하는 '근대성의 테크놀로지'를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까운 시대인 근대(近代), 그리고 그 테크놀로지는 여러 가지 방식이긴 하지만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데 있다. 마치 지금 서울역 주변의 풍경들이 근대를 비롯하여, 현대, 동시대의 여러 풍경이 중첩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포스트모던이건, 유동하는 근대이건, 액체근대이건 혹은 얼트 모던이건, 근대는 아직도 좀처럼 우리를 벗어나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어떤 배경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을 첨단 도시 서울의 한복판, KTX와 롯데마트와 온갖 일시적인 일상의 여행객과 노숙자가 함께 하고 있는 이곳 구서울역사에서 되물어 보고자하기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나 싶다. 그런 이유로 이번 전시는 근대라는 화두를 갖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시간성과 공간성이 교차하는 동시대의 시공간성에 탐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현재적인 의미에서 서울역이 상기하는 것, 곧 근대의 기억을 갖고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시간대 속에서 다른 공간성으로 존재하는 서울역을 화두로 해서, 근대성이 우리에게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역사적인 서술이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달리는 저 열차의 엔진처럼 지나간 과거도 현재에 부단히 이어져, 미래를 향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성과 테크놀로지 ● 우리가 기억하는 근대의 테크놀로지는 대게는 산업, 기계 테크놀로지이다. 열역학과 증기기관, 혹은 콘크리트와 철문명이 상기하는 저 견고한 산업, 기계 문명, 테크놀로지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좀 더 넓은 외연과 연결을 갖는다. 테크놀로지, 쉽게 말해 재주, 솜씨, 기예는 비단 산업과 기계문명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닐뿐더러 일상과 삶 전반에서 작동하는 개념들이다. 이를테면 '연애술'처럼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익혀야하고, 수행해야 하는 전반적인 기술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많은 작품들이 미술(美術)이나 예술(藝術)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예술 곧 art는 라틴어(ars)에서 유래한 말이고, 희랍어인 테크네를 번역한 말이다. 테크놀로지의 어원이 되는 테크네는 법칙에 입각한 합리적 제작 활동 전반을 의미했고, 로마와 중세, 심지어 근대까지도 넓은 의미의 솜씨, 즉 물품, 가옥, 배, 침대, 옷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솜씨뿐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고 심지어 청중을 사로잡는 웅변술까지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런 온갖 잡다한 기술, 솜씨가 '아트'로 지칭되어, 건축가, 도공, 기하학자, 전략가, 양복 재단사, 변론가등의 아트로, 곧 솜씨란 의미에서의 아트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비범한 삶의 지혜와 숙련된 기술로 무장한 생활의 달인들이 오늘날 예술가들로 주목받는 것처럼 말이다. 솜씨란 어떤 규칙들에 대한 지식에서 발화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규칙의 개념이 예술의 개념과 정의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미 진작부터 테크놀로지는 넓은 의미의 용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넓은 의미로 확장된다. 근대가 발견하고 발전시켰던 산업기계 테크놀로지를 비롯하여(기계술), 근대의 시각적 인식론인 풍경술, 근대의 관광여가술, 철도술, 소리술, 시간-공간술, 관광여가술, 인물술 등 온갖 잡다한 기술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의 기술들이 현재에까지 어떻게 지속되고, 혹은 비판, 변용되어 다르게 존속되어 있는지를 물어볼 것이다. 근대가 만들어낸 이러한 기술들은 오늘날에도 수직수평술, 구조건출숙, 공간술 등의 형태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물론 많은 영역에서 근대의 핵심적인 기술들을 비약적으로 뛰어넘는 새로운 동시대 테크놀로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대가 움직이는 방식은 단일한 흐름은 아닐뿐더러, 전근대와 근대, 현대, 동시대가 이질적으로 상호공존하고 있음을 이번 전시는 새삼 주목한다. 특히나 사회의 주류 영역이 아닌 곳들, 일상의 미시영역이나 소소한 삶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근대적인 테크놀로지의 작동은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예술의 영역의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이러한 비전일적인, 비동시적인 시대적인 작동, 감성이 발휘되고 영향을 끼치는 효과들을 주목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근대는 여전히 넓은 영역이기에 이번 전시의 경우 전시의 출발이 된 서울역의 장소적 맥락을 거점으로 삼아 근대의 테크놀로지 구동을 포착할 생각이다. 서울역이 가진 건축적인 면모들, 기계적인 작동의 속성들, 서울의 주요 풍경으로서의 서울역의 작동방식, 근대관광, 여가의 거점으로서의 서울역 등, 막연한 근대의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서울역을 기점으로 한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작동을 탐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의 최대 목적은 이 공간, 곧 서울역 자체를 전시의 주요 무대, 오브제, 작품으로 등장시키려는데 있다. 서울역이야 말로 전시의 주제인 근대의 테크놀로지 작동 자체이니 말이다. 서울역을 전시의 중심화두로 삼아 근대성의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작동과 현재에도 지속되는 면모들을 검토하는 것이 이번 전시가 말하는 새발견의 면모들이다.
기차가 다니지 않은 현재의 (구)서울역사는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된, 기억이 있는 방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들 방들은 기차 역사가 단순히 기차를 타는 곳만이 아닌 과거에도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흥미롭게 반증한다. 그리고 문화역서울 284로 변모한 이 시점에도 그 오래된 근대의 기억은 여전히 스멀스멀 작동하고 있다. 중앙홀, 3등대합실, 1,2등 대합실, 부인실, 역장실, 귀빈예비실, 귀빈실, 서측복도, 그릴 등 각각의 공간은 과거를 복원한 기억들과 현재의 문화공간이라는 이중적 설정으로, 엄밀히 말해 과거도 현재도 아닌 그 무엇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니, 현재이자 과거로 자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이번 전시가 동시대의 작업으로 과거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구서울역사가 복원 과정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영화로운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장소적 맥락 속에서 묘한 이미지로 현존하기에 이런 불균등한 시간성, 공간성의 느낌을 증폭된다. 이번 전시는 이렇듯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공의 층위를 넘나드는 설정 속에서 진행되며 각각의 공간이 갖는 역사적 흔적을 참고한 공간 설정과 각각의 방마다 설정된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작명과 배치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흥미로운 이해를 더할 생각이다. 1층의 중앙홀을 질서, 균형술로 기준점으로 삼아 3등 대합실의 기계술, 1,2등 대합실의 근대-이미지+철도술, 부인대합실의 근대-관광,여가술, 역장실의 근대-소리술, 귀빈예비실의 서울역-시간공간술, 귀빈실의 근대-인물술, 서측복도의 근대-공간,풍경술, 그리고 2층 그릴의 수직+수평술과 사이공간을 활용한 구조+건축술, 근대-기록술 등 근대가 작동시킨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그러한 기술들이 오늘날 현대미술 속에서 어떻게 구동되고 있는지를 관람객들과 조우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설정을 유지하되, 연관된, 혹은 상반된 작업의 배치로 어떤 구동을 만들 수 있도록, 방 구조를 잇는 사이 공간의 활용을 통한 리드미컬한 배치와 움직임도 얼마간 고려했다.

더 넓은 근대를 향하여 ● 우리에게 근대는 기억으로 지속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통해 확장해야 할 근대이니만큼, 이에 대한 가치평가가 상반되는 작업의 배치를 통해 확장된 근대로서의 의미를 구현하는 데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다양한 근대적 기술들이 펼쳐지도록 함으로써 전시 자체가 커다른 근대성의 장치(assemblage)로 기능하도록 했다. 근대성의 테크놀로지의 구동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서로 다른 기술들과 효과들이 얼기설기 모여 (불협)화음을 내는 그런 매커니즘을 꿈꾸는 것이다. 사실, 이번 전시에서 근대성의 문제를 테크놀로지로 풀려 했던 기본 동기도 대중공간으로서 거듭나고 있는 문화역서울 284의 현재적 상황과도 연동된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도 일반인들에 근대의 기계적 기술은 여전히 감탄과 찬사의 대상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가 그 고마움을 모를지라도 근대의 테크놀로지는 지금 시대의 중요한 삶의 기반이다. 근대의 테크놀로지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감성적 놀라움의 대상이었듯이 근대성을 구동하게 하는 많은 테크놀로지들이 첨단 현대에서 여전히 구동되는 이 시대 또한 이에 대한 기대 혹은 기억들 또한 여전하기 마련이다. 놀라움이거나 신기함, 혹은 낯설거나 오래된 기억 같은 감성들이 그런 것들일 수 있겠다. 테크놀로지의 핵심이 재주와 솜씨를 통한 편리함, 능률, 경제적 이점에 더해 여러 가지 (감성적인) 효과에 있다면 응당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꿈꾸는 점도 이러한 감성적인 작동, 인식적인 전환일 것이다. 새발견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삼'에 가깝다할 정도로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은 비틀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넘어서고 그 영역을 더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좁은 의미의 근대가 아닌, 더 많은 생명력과 확장력을 가진 넓은 근대를 그려볼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런 면에서 근대의 기술문명에 대한 오래된 속된 믿음들, 곧 단선적인 기술진보에 대한 신화라든가 경직된 합리성, 계산가능성, 이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한다. 굳이 포스트모던을 운위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면에서 오래된 근대에 대한 굳건한 신화들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역시 단순히 근대의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작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그러한 테크놀로지의 작동이 갖고 있는 장단점들을 함께 드러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조밀조밀하게 해석하고 평가된 과거를 통한 더 나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사실, 넓게 해석된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삶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삶의 외부 조건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내면화된 실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를 단순히 좁은 의미의 기술로만 한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을 더욱 낫고 아름답도록 만드는 실천 역시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근대성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주목은 알게 모르게 동시대의 삶에 여전히 침윤되어 있는 다양한 미시적인 연관관계에 대한 고민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번 전시는 이런 면에서 근대성을 화두로 한 동시대 미술에 대한 어떤 재해석, 단상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이나 예술 역시 더 나은 삶에 대한 요청을 가능케 하는 테크놀로지의 일부이니 말이다. 아무쪼록 이번 전시가 현재의 문화역서울 284를 중심으로 과거의 (구)서울역사가 연상시키는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근대와 그 근대의 다양한 작동방식에 대한 이해를 테크놀로지 개념을 통해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 그렇게 오래된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는 각별한 기회가 되길 희망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의 주요한 테크놀로지였던 구서울역사의 미래 역사라 할 수 있는 현재의 문화역서울 284의 각별한 작동들에 대한 관심들이 촉발되길 기대한다. 
■ 민병직
via neo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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