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작업에 대한 해석 2

때는 1980년 5월 어느날. 전두환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고(그 전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발령돼 있었음) 전국의 모든 대학은 강제휴교됐다. 대학교 정문에는 총에 칼을 꽂은 공수부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나는 무얼 할까 궁리하다가 오래 전에 놓은 미술취미나 다시 해보자고 생각했다. 자연대생이 미술도 하면 좀 멋지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단순히 취미를 위해 소개 받은 화실이 종로구 혜화로 23에 있는 화실이었다. 지금도 그 건물은 별로 변하지 않은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당시 화실을 하던 분들은 지금은 다 쟁쟁한 명문대 교수들이 됐지만 (한 분은 일찍 돌아가셨다) 당시는 다 그지들이었다. 야전침대에서 자며 라면 끓여먹는 전형적인 80년대 미술대생들이었다. 소개해준 분을 따라 쭈뼛거리며 생전 처음 들어가본 화실은 내게는 신세계였다. 하다만 작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예술의 기운만은 팽팽하게 충만했다. 그 중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작품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정서영의 작업 <같은 것>(2020, 알루미늄 주물)이었다. 각목을 붙여서 십자가 형태로 만든 후 거기에 사람 머리 모양의 소조를 뜨기 위해 진흙을 이겨붙이다 만 형상이었는데 당시는 그게 누구 작업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지도 몰랐던 그 물체에서 나는 엄청 나게 강렬한 기운을 느꼈고 “예술은 완성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창 뻗어피어오르는 과정 혹은 생성 중에 있는 것이구나! 아니, 생성의 거칠고 신선한 기운 자체가 예술이구나!” 하는 들뢰즈 비슷한 통찰을 얻게 됐다. 지금도 내 평생 본 모든 작업 중 가장 강렬하게 감동적인 것을 꼽으라면 그 작업, 혹은 물건을 꼽는다 (겸재와 추사는 빼고). 단순한 진흙덩이였던 그 물건은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았고 과연 내가 무엇이 될지 맞춰 보라는 듯 미래의 생성을 수수께끼로 던져놓고 있었다. 화실에는 다른 작품들도 몇 개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진흙 덩이만 생각난다. 정서영이 그 진흙덩이를 알루미늄 주물로 뜬 것은 당시 그 화실 선생님 (나중에는 친해져 미술보다는 주로 음주관계로 만났고 형이라고 불렀던)과의 음주대화에 기인한 것 같다. 술이 잔뜩 들어가 기고만장해진 나는 무슨 온갖 예술 장르의 전문가라도 된 양 말했다. “그런데 형, 같은 바이올린이라도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면 나무소리가 나고 현대음악을 연주하면 알루미늄 같은 금속성이 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에 대해 그 ‘형’도 뭐라고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세월이 40년이나 지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서영은 바로 그 물질과 감각의 수수께끼를 알루미늄 주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작업에는 수수께끼의 답이 들어있진 않지만 질문이 한 겹 더 들어 있다. “각목과 진흙을 알루미늄 주물로 바꿔 놓으면 뭐가 되는 걸까?” 그 답은 알루미늄의 물질적 특성 속에 있다. 알루미늄의 녹는 점은 섭씨 660도, 밀도는 2.7g/㎤ 밖에 안 된다. 철의 녹는 점이 1538도이니 알루미늄은 훨씬 쉽게 녹일 수 있는 금속이다. 철의 밀도가 7.8g/㎤ 밖에 안 되니 정말로 가벼운 금속이다. 녹이기 쉽고 가벼우니 알루미늄은 다양한 곳에 다양한 재료로 쓰인다. 알루미늄의 또 한가지 특성은 은회색으로 빛나는 표면이다. 금속 중에 이런 색의 광택을 가진 것은 알루미늄 밖에 없다. 그래서 알루미늄으로 만든 물건은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듯한 초현실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정서영은 <같은 것>의 표면을 무광택으로 처리하여 알루미늄임을 숨기고 있다. 이는 엄청난 기만전술이다. 고급재료인 알루미늄을 써놓고 마치 태석한 진흙덩어리 같이 만든 것은 정서영이 아주 겸손하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내가 1980년 5월 받은 충격이 하도 컸기 때문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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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영준
2020.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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