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주재환은 마흔에야 데뷔했다. 한창 젊었을 때 밑바닥에서 생업전선을 헤매고 다닌 탓이다. 행상, 외판업, 심야 방범대원 등 예술과는 거리가 먼일을 성인이 되고서도 20년이나 해왔다. 사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은 그러나 그를 일흔이 넘어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로 일궈냈다. 불편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다양한 형식으로 ‘뱉어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성격인 것 같아. 한가지 주제로 평생 하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 뭐. 다음번엔 종이 팔레트를 오려서 해볼까 생각 중인데, 나도 모르지 뭐. 어떤 재료가 또 발견될지.”
나이답지 않은 ‘쿨’한 답변을 이어가는 말투는 그의 작품이 주는 느낌과 흡사하다.
■불편한 현실에의 가감 없는 비판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한학기만에 중퇴하고, 20년 만인 79년에 미술계에 데뷔했다. 30대 작가들이 주축이 돼 모인 그룹 ‘현실과 발언’을 통해서다. 참여 미술운동의 모태인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그는 대표작 ‘몬드리안 호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등을 선보였다. 당시 국내 화단에 활성화된 모노크롬(하나의 색이나 이미지로 전체 화면을 구성하는 단색조 그림)의 틀을 깨고 색색의 물감으로 구체적 형태를 그려넣은 작품이었다. 봐도 잘 모르겠는 그림보다, 대중과 소통이 되는 그림을 그려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후 유화, 콜라주, 종이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해나갔다.
데뷔 이후로도 긴 잠행기를 가진 그는 200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를 통해 비닐, 폐조각, 깡통 등 재활용품을 활용해 고되고 비루한 한국의 일상을 담아 선보인다. 그의 작품에 대해선 진보 미술진영의 젊은 평론가들이 한국적 개념미술이라고 평하는 데 반해 조잡하며, 부피감이 없다는 비판이 대립했다.
“재료를 재활용하는 건 일종의 생태성하고 맞물리는 거야. 요즘 너무 낭비하니까 버려진 것을 재활용하는 거지. 어떤 게 좋은 예술인지 합의를 보는 건 힘들지 않수? 실험적인 것, 아웃사이더같은 작품은 주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미술계가 보수적이라 인정받기 어렵기도 하고. 나이가 들고서도 여전히 국외자라는 느낌도 있지만, 별수 있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면 보는 사람도 피곤하잖아. 읽어내려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가끔가다 유머러스한, 보고 웃을 수 있는 것도 만들고 하는 거지. 노동자라고 해서 만날 붉은띠 매고 싸울 순 없지 않겠수.”
■‘팍’ 오는 작품 한 점을 위해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하고 나서는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수도승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신문을 보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한다. 인생을 반성하고, 자신을 수거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보다 편안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미술하는 사람으로서의 꿈이라면 ‘팍’ 오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림은 특이해. 영화니, 연극이니, 소설 같은 거는 처음부터 쭉 보며 읽어내려가는 건데, 그림은 딱 보고 순간적으로 ‘와야’하거든. 빨려 들어가 야하고, 그게 마력이지. 따지고 보면 그런 작품은 많지 않아. 그래도 ‘팍’ 오는 거 한점을 위해 사투하는 거지. 어느 작가는 그게 꿈일 것 같아.”
원로작가지만, 아직도 예술은 그에게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철학적이고 그런 거 없다, 하고 싶어서 할 뿐’이라는 대답이 소탈하면서도 명쾌하다. 학력과 이력보다는 작품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그. ‘배고픈 것을 떠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 행복할 따름’이라는 평범한 말이 노장의 기운을 받아 비범하게 다가온다.
© 경기일보 성보경기자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558779
Ma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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