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의 호두 한 전시장에서 그 호두들과 만났다.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서영의 〈공기를 두드려서(Knocking Air)〉 전시에서 문제의 호두와 만났다. 그 호두들은 1층 안쪽 전시실의 빨간 나무 장 안에 드문드문, 가끔은 옹기종기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온전한 호두도 있었지만, 잘린 면을 드러낸 호두는 좀 더 쓸쓸해 보였다. 소재가 유토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푸집을 만들어 캐스팅한 플라스틱이었다. 이게 대체 뭐지? 왓 더 호두! 그 장의 빨간색이 또 내 머리를 간지럽혔다. 호두가 앉아 있는 장의 색이 1970~1990년대에 지은 옛날 집에 많이 쓰인 빨간 벽돌, 딱 그 ‘산업화’의 색이었다. 집에 와 ‘정서영 호두’를 검색해봤다. 온라인으로 창작물과 미술품을 판매하는 ‘취미가’에서 정서영의 다른 호두를 팔고 있었다. 그 호두에는 보통의 호두라면 사회가 쉽게 합의해주지 않을 엄청난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유리컵 안에 놓인 그 호두는 진짜 호두였고, 껍데기 틈으로 종이가 비집고 나와 있었다. 취미가에 전화를 해보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유리잔 속 호두는 지금 구찌의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정서영의 호두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보통의 호두 껍데기도 조각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언제 될 수 있는가? 플라스틱으로 호두 형태를 캐스팅하면 조각이 될 수 있는가? 일민미술관에서 정서영의 거의 유일한 단행본 형태의 도록을 사서 찬찬히 읽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했다. “형태는 분명히 선택된 생각”이고 또한 “사물에서 조각까지 가려면 사물에 대한 합의를 깨야 한다”고. 나는 작가가 던진 수수께끼에 낚였다. 이 찌를 빼내려면 호두 껍데기라는 사물에 대한 사회적 합의인 가격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저 호두를 사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어치운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처럼 쫙 하고 쪼개버린다면? 그 순간 뭔가가 한 번 더 깨지지 않을까? 사물이 합의를 깨고 조각이 되었지만, 조각 역시 사물이니 다시 깨질 수 있다. 나는 용감하게 나의 견해를 정서영 작가에게 알렸다. 작가는 바라캇 컨템포러리를 통해 “그렇습니다. 당연히 조각은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호두 껍데기로 만든 작품을 사서 실제로 쪼개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고, 바나나를 먹어치웠다는데 (그것도) 별일 아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와, 멋있어.
취미가에서 판매하는 정서영의 호두. 사진 제공 취미가.
ESQUIRE 2020.07.02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47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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