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s
참여작가: 김문기, 김민제, 김범, 김영규, 뀨르와 타르, 변상환, 실라스 퐁, 이원호, 정정엽, 정해민, 주재환, 최성균, 함양아, 허보리
예술사회학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예술이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를테면 예술작품의 생산, 분배, 소비... 더 나아가 작가가 ‘자유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채 타자가 되어가는 과정, 감상행위와 구매행위를 시스템의 효율성에 귀속시키는 기술의 작동 등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이 시대의 예술은 ‘습관적으로’ 철학 논쟁에 깊이 가담한다는 이미지에 집착한다. 방대해 보이는 이론의 뭉치들이 강박적으로 동반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찢겨진 기술사회’의 현상으로, 의미 없는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그리고 덧없이 의미를 보상하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피하기 어렵지만 철학적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철학의 중심 테제는 이미 날아가버린 새인 가치의 개념 설정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에 대한 물음과 개념 형성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이란 가치에 대한 끝없는 긴장이며 따라서 가치의 개념을 불확실한 것으로 보게 되면 존재 자체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
가치는 세계가 인간과 맺는 관계에서 지니는 중요성의 척도다. 예술은 예술과 세계(땅)와의 관계, 예술과 다른 세계(하늘)와의 관계를 수립하는 방식이 될 때 비로소 철학적 울림을 동반하는 것이 된다. 이 점에서 오늘날 예술은 선사시대 이후 인간이 예술이라 불렀던 어떤 것들보다도 더 철학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더는 아름다움도, 조화도, 기쁨도, 고귀함도, 심지어 의미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자크 엘륄.Jacques Ellul)
과거의 예술은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실재를 전환하는 방식이었던데 반해, 오늘날 예술은 상황을 지배할 능력이 없다. 마르셀 뒤샹의 남성용 변기에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이르는 역사가 바로 그러하다. 이 역사는 실재를 잘 설명하기 위해 실재를 전환하는 방식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그 상실을 은폐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데 급급해온 역사다. 다시 제도의 가림막과 패거리 문화의 울타리 밖에서 보기를 갈망하자.
오늘날 예술은 가치에 대한 긴장으로서 인간 정신과 동떨어진 것이 됨으로써, 철학의 문제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왔고 더 멀리 떨어져 나가는 중이다. 그럴수록 더 많은 혼돈의 어휘들을 거느린 채 뻔한 정치적 볼거리들에 겨우 의존한다. 가치에 대한 긴장이 크게 약화되어, 동시대의 비참성과 불행에 냉담하다. 이러한 특성이 이 시대의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어휘와 개념들에서 드러난다. 베이유는 말한다.
“우리 시대의 불행에 대해 작가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 (하지만)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가치의 약화라는 경향을 보였다. 자발성, 성실성-예술계 내에서의-, 무상(無償)성, 풍요의 창조 등은 그들이 가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어휘들로, 선악에 관련된 단어들 즉 도덕, 고귀함, 명예, 정직, 관용 등의 어휘들보다 훨씬 더 자주 이용되었다. ... 작가는 독자에게 도덕 선생은 아니지만, 인간의 모든 상황들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인식하는 것이 그것을 넘어서는 첫걸음이다. 예술이 전체주의적인 거대한 짐승의 무리로 변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반란의 환상, 주도권의 환상, 자유의 환상을 주는 기술에 포섭되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시대의 고통, 강요된 침묵과 도덕적 고립, 사람들의 불행과 접촉면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식은 사건(들)의 발생으로 시작해 몸집을 불려 나가는 과정 없이는 공허한 상상에서 시작해 덧없는 환상으로 막을 내리는 여정이 되기에 예술사회학의 경유지들을 지나야 가치의 긴장 안에서 진동하는 사유로 상승하는 길이 나온다. -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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