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웹툰 그리고 가족, '호민과 재환' 가정의 달에 소중한 존재를 담다


독자는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무엇인가? 여러 단어나 현상 등이 떠오를 수 있지만, 많은 이가 '5월'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또 '5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역시 '가정의 달'일거라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관용표현으로 쓰인 지 오래고,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주는 또 서로를 생각하게 해주는 날이 많다.

5월 가정의 달.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시대와 세월에 치여 전하지 못한 안부 인사를 '가정의 달'을 핑계 삼아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때로 보내는 순간. 가정의 달 5월,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오늘(18일)부터 8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과 3층에서 <호민과 재환>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대한민국 현대사 주요 이슈를 본인만의 시각으로 조망해온 주재환 작가와 <신과 함께>, <무한동력> 등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웹툰을 다수 만든 주호민 작가의 '부자'(父子) 2인전이다. 저마다 장르는 다르지만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전시회를 연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 또 미술이라는 이름 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어낸 하나의 전시회. 미술과 웹툰, 그리고 가족이 모두 녹아있는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에 가장 적합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호민과 재환>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회 <호민과 재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본인만의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시금 탄생시켜온 주재환 작가와 <무한동력>, <셋이서 쑥>, <만화전쟁>, <빙탕후루> 등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웹툰은 물론 한국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석한 <신과 함께>로 널리 알려진 주호민 작가 부자(父子)의 2인전이다.
전시회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과 3층 전시관을 통해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의 작품을, 3층 전시관 한 쪽에 위치한 '프로젝트 갤러리'와 '크리스탈 갤러리'를 통해서는 특별 영상을 전시하고 있다.
<호민과 재환>은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입장과 장르에 속한 화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한 공간에서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때문에 관람객은 두 작가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건 물론,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저마다가 해석한 사회와 현실을 엿볼 수도 있다. 또한 종이에서 시작한 저마다의 미술이 시대를 거쳐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로 변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으며, 세대를 거치며 작가의 태도부터 장점, 관심사 등 콘텐츠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하는지도 볼 수 있다.
이처럼 <호민과 재환>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은 익숙하게, 또 익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익숙하지 않게 전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제시,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생각의 기회를 끝없이 제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금번 전시는 총 4개 세션으로 분류. 각각의 세션은 작가들의 시대 경험과 저마다가 그린 세계, 이미지로 풀어내는 이야기 등을 담아냈다.

주재환 작가가 전하는 '세션1.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다' 
<호민과 재환> 전시를 시작하는 2층 '세션1.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다'는 주재환 작가가 이끌어간다. 해당 전시에서 주재환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한 세대 앞선 본인 작품에서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주재환 작가는 작품에 단순함과 함축성, 시적 상상력 등을 담아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풍자와 이야깃거리를 뚜렷하게 던지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작품에 대한 표현은 작가 개인의 즉흥적인 붓놀림과 창작일 때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사회 풍자 등이 담길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관람 중 잠시라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 정도의 '생각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이처럼 주재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존재뿐 아니라 관람객 본인의 '상상력'도 필요하며, 이는 어려운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생각할 수 있는 편이다.
 

주재환 <호민 초상>, 주호민 <재환 초상>

<호민과 재환> 전시회에 입장하면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의 초상.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두 작품은 서로가 바라보는 가족의 얼굴과 애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중, 주재환 작가가 만든 <호민 초상>은 캔버스에 아크릴과 플라스틱 장난감 등을 활용, 아들 주호민 작가의 초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장난감 안경과 아이스크림으로 눈과 코 등 얼굴 일부를 표현하고, 리본으로 나비넥타이를 장식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코흘리개 시절 귀여운 존재'임을 연상케 한다.
왼쪽부터 주재환 작가의 <호민 초상>, 주호민 작가의 <재환 초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 주재환 작가는 캔버스에, 주호만 작가는 모니터에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도 저마다의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주재환 <계단을 오르는 봄비>

현대 미술 거장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를 패러디한 주재환 작가의 <계단을 오르는 봄비>. 작품은 뒤샹이 표현한 계단을 내려오는 형상을 '오줌 줄기'로 대체, 희화화하고 있다. 뒤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표현했다면, 주재환 작가는 이를 통해 미술계를 포함한 사회의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 계단의 상층에서부터 흐르는 오줌 줄기는 하층으로 갈수록 더욱 굵어지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이 무의미함을 암시한다.

전시장 2층과 3층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주호민 작가의 작품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 이는 주재환 작가의 <계단을 오르는 봄비>를 다시금 본인만의 시각으로 패러디한 작품으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속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 서로가 도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담아냈다. 
주재환 작가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하강하는 오줌의 형상을 통해 위계에 따른 권력을 보여줬다면, 주호민 작가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나쁜 존재를 뿌리치며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 올려주는 인물들의 협동을 담았다.

주호민 작가 <계단에서 뭐 하는거지> / 2021년 /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주재환 <아침햇살>
액자를 감싼 수많은 노끈. 주재환 작가의 <아침햇살>은 주재환 작가의 기억 한때를 나타낸 작품이다. <아침햇살>은 주재환 작가가 지하 작업실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당시, 장마철 침수로 인해 캔버스는 썩었지만 가운데 액자는 멀쩡했던 걸 작품으로 재활용한 것이다. 액자를 둘러싼 셀 수 없이 많은 비닐 노끈. 주재환 작가는 비닐 끈을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아침 햇살로 표현, 옛날처럼 햇살을 잘 볼 수 없는 지금의 환경오염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주재환 작가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 당면과제 중 하나인 '환경오염'에 대해 언급했으며, 위기를 작품으로 이어가는 주재환 작가의 재치를 엿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주재환 작가 <아침 햇살> / 1998년 / 비닐끈, 액자 콜라주 


현재와 현생에서는 알지 못하는 '세션2. 지금 여기, 그리고 너머의 세계'
2층 전시관을 지나 3층으로 향하면 '세션2. 지금 여기, 그리고 너머의 세계'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부터는 주호민 작가도 본격 참여,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을 소개한다. 세션명 속 '지금 여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말하며, 작가들이 경험한 지금과 지금까지의 사회를 저마다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 해석했는지 등을 담고 있다. 또 '너머의 세계'는 우리가 볼 수 없고, 현생에서는 알지 못하는 '죽음의 세계'와 '신화의 세계'에 대한 두 작가의 관심에 집중한다.
웹툰 <신과 함께>를 통해 대중에게 한국 신화와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이야기'를 전달한 주호민 작가. 이와 같은 소재에 대한 관심은 주호민 작가 본인뿐 아니라 아버지 주재환 작가에게도 있음을 '세션 2. 지금 여기, 그리고 너머의 세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세계를 탐구하고 현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주재환 <짜장면 배달> / 1998년 / 캔버스에 유채

주재환 <짜장면 배달>

거칠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과 공간 속 그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뭔가. 주재환 작가의 <짜장면 배달>은 '짜장면'을 빠르게 배달하기 위해 곡예를 하듯 오토바이를 타는 배달부의 모습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면발이 조금이라도 불기 전, 고객에게 빠르게 짜장면을 배달해야하는 배달부의 숙명. 과장되면서도 동적인 선은 강한 속도감을 전달하는 건 물론,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한다는 배달부의 초조함과,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대 사회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호민 <신과 함께 - 저승편> 중 <죽어서야 로얄층>
"저층과 고층은 인기 없다. 중간 즈음 '로얄층'이 진짜다" 아파트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는 납골당에 대한 설명으로도 비춰진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다 젊은 나이 과로사한 '김자홍'이 저승 변호사 '진기한'과 나누는 대화를 담은 <죽어서야 로얄층>. 이는 죽어서도 계속하는 '서열화된 주거환경'의 현실을 반어 유머로 표현한 작품으로, 주호민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현실 풍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호민 작가의 '세션3.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
'세션2' 맞은편 '세션3.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는 주호민 작가가 이끌어가는 전시다. 이는 만화가로의 주호민 작가가 가진 차별화된 시각과 만화가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등에 주목한다.

해당 세션을 통해 주호민 작가의 다양한 작품과 스토리텔링 능력, 본인 특유의 영화적 연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건 물론, 아버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놀라운 블랙 코미디 등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주호민 작가가 '삼류만화패밀리'에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 원화를 비롯, <신과 함께>와 <무한동력> 콘티, 스케치 등 그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작업물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종이부터 디지털로 이어지는 세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세션3.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의 재미 요소 중 하나로 생각한다.

<호민과 재환> '세션3.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 중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지금 '세션4. 만능 이야기꾼, 주호민'
전시 마지막 '세션4. 만능 이야기꾼, 주호민'은 작가의 생활을 이어가는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의 '지금'에 주목한다. 웹툰 작가에만 본인을 한정하지 않고 방송인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주호민 작가. 특히 유튜브와 트위치 등을 통해 '주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만능 이야기꾼으로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건 물론, 구독자와 소통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주호민 작가는 그간의 방송 경험과 이야기꾼으로의 면모를 살리고자 '세션4. 만능 이야기꾼, 주호민'을 통해 미디어 간 경계를 넘고 콘텐츠를 확장하고 연결하는 '트랜스미디어' 현상을 직관적으로 선사한다.

주호민 작가는 아버지 주재환 작가의 그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딱딱하지 않고 재밌게 설명하고자 <이상형 월드컵>을 활용한다. 두 작가는 <주재환 월드컵 16강>으로 기존 미술계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대중적인 방식으로 저마다의 작품을 소개한다.
유튜버이자 트위치 스트리머 '주펄'로도 활약하고 있는 주호민 작가. <호민과 재환> 세션 4에서 주호민 작가는 '만능 이야기꾼'으로의 활약을 이어가며, 아버지 주재환 작가의 작품을 주제로 만든 <주재환 월드컵>을 진행한다. 만화가 이말년(본명 이병건) 작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침투부'를 통해, 혹은 '주펄'로의 모습이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반가울 수 있는 공간이다
당장이라도 '주펄' 특유의 개그를 보여주거나 "주펄 화이팅~"을 외칠 것 같은 영상. 관람객 중 일부는 세션4를 방문하고 유독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전시 맞은편 위치한 크리스탈 갤러리에는 주재환 작가가 전하는 <반딧불 - 우리 모두의 꿈>이 전시 중이다. 이는 실제로 보는 경우는 드물고 이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나마 볼 수 있는 '반딧불'을 영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제작한 작품이다.

<반딧불의 잔존>이라는 번역서에 따르면 서치라이트 같은 강한 빛은 권력, 반딧불처럼 약한 빛은 민중을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해 반딧불을 지상에 떨어진 별이라고 시적 표현했다고 한다. 주재환 작가는 이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 한시도 뭔가를 바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현대인에게 반딧불을 보며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이른바 '멍 때리기'를 유도한다.
이처럼 <호민과 재환> 속 다양한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입장과 장르에 속한 화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한 공간에서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전시관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주호민 작가의 거대 작품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아버지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패러디한 건 물론, 아버지와 아들 간 작품 세계를 이어주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 외에도 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다수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세월과 시대에 치이고 지쳐, 잊고 있던 가장 소중한 존재에 대한 돌이킴과 감사함, 그리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 <호민과 재환>이 그 순간을 전해줄 수 있음을 확신한다.

(http://www.koreacen.com)어린이뉴스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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