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Boys,1998-2007



digital C print on flag fabric, 265 x 397 cm 
exhibition view Museum of Art, Lucerne
Detail from: Two Boys (Rehearsal), 1996/2007
photograph on baryta paper, 36 x 48 cm
private collection

‘신성한 미술’ 놀려먹기



미술 평문이나 전시 서문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어구들이 ‘존재의 의미’ ‘죽음에 대한 고뇌’ ‘동양의 정신성’ 같은 말들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미술 작품이란 것’을 볼 때면, 아무리 그것이 물감 얼룩이나 잘못 깨진 돌덩이처럼 보이더라도 진지해지고 엄숙해지려고 한다. 뭇 사람들이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예술’이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서영의 작업은 예술의 신성성에 대한 날카로운 이의 제기다. 비닐장판에 액자를 끼우고 명조체로 ‘-어’라고 쓴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어”라고 당황스런 감탄사를 떨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작인 ‘전망대’나 ‘수위실’도 마찬가지다. 미니어처도 아니고 실제 크기도 아닌 ‘전망대’나 ‘수위실’은 몸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애매한’ 상황을 연출한다.
“미술에 대한 오래된 전설이 있어요. 내 작품은 대개 그러한 전설을 맹목적으로 믿는 태도에 대한 웃음 같은 것이죠. 굳이 내 작품이 말하는 바가 있다면 ‘전설 속에 있지 않음!’이란 것입니다.”
미술을 감상(체험)하게 되는 상황은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다. 감상자는 만화 그림 속에서 쩔쩔매고 있는 주인공-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의 ‘꽃’은 하얗고 거대한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져 꽃이면서도 꽃의 장식적 기능을 거부하고 있으며 ‘카펫’은 카펫이되 피사의 사탑 같은 모양으로 돌돌 감겨 있다.
“만화에 관심이 있어요. 그림 자체에도 흥미가 있지만 웃기는 상황이 재미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정서영의 작업은 요즘 유행처럼 쉽게 볼 수 있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우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린 1989년부터 정서영의 작업은 고집스럽게 언어와 개념, 물체 자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긋남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미술이 가진 신화적 엄숙성을 깨뜨리고 ‘재밌지?’라고 물으면서, 차갑게 우리의 눈과 이성이 얼마나 불안정한 연산을 수행하는지 보여준다. 진지함과 경박함의 지뢰밭을 피해 그가 만든 ‘물건들’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자주 웃으며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이번에 열리는 정서영의 두 번째 개인전은 새로운 형식의 작가 지원을 통해 이뤄지게 됐다. 개인전은 작가가 ‘사재를 털어’ 여는 것이 보통이지만 정서영의 이번 개인전은 지난해 열린 작가 후원회에서 다수의 미술애호가들이 내놓은 지원금으로 열리게 됐다.
작가는 이 후원금으로 전시장의 불빛을 흰색으로 바꾸었다. 창백한 등 아래에서 그의 작품들은 더욱 ‘권태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형광등이 좋은데”라며 여전히 아쉬워한다. 전시장의 노란 불빛이 조각을 ‘예술적’으로 보이게(비싸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상품이 돼버린 미술의 속성을 폭로하기 위해 또 그만한 노력과 자본을 들여야 하는 것, 그것이 현대 미술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김민경 기자 in 주간 동아 2000.04.13 229 호 (p 90 )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05/10/200605100500019/200605100500019_1.html

Televator


Still from ‘Televator’, with Kris Delacourt, Nico Dockx and Michelle Naismith, Antwerp, 2003-'04 (nota bene: Nico Dockx holding a Dan Flavin lightwork as a reading lamp, also Ann Veronica Janssens' green pebbles scattered on the floor)

‘Zonder Titel', 'Televator', 'Spectaculation' and 'MuHKA Collection Audit’ etc, with Kris Delacourt, Nico Dockx and Michelle Naismith, 'de Collectie Interventies' program, curated by Bart De Bære and Dieter Rœlstræte, MuHKA, Antwerp, 2003-'04

'MONOPOLIS / Antwerpen', survey exhibition, curated by MuHKA, Extra City and Objectif Exhibitions, Witte de With CHK, Rotterdam, 2005-'06


Televator

Map-reference and compass-point fires off double-ended guns, shooting out upright solarium-ray timber-beams and rafter-eaves. These spotlights photographically develop cinema projections onto shopsoiled, burnt, tarnishing and rusty shadows, stationed on potters’-wheel D.J turntables, staying put there until they bake, electroplate and glaze, when these manhole drain covers have to prepare for vertical take off and landing. One half, low-flying aircraft, fixed upon floating aquatic floor; the other, inlaid into cloudy aerial ceiling as mountain-climbing synchronised-swimmers; both cling on and slide along, using their barnacle and limpet suction-pads; all holding exactly the same position, kept in line by, at same time as the rest.

Around outer boundary limits, faraway distant close-up details reflect and magnify themselves, leaving visible and clear windows behind. As an alternative to load-bearing walls, the guild of carpet-weaving, jeweller and mosaicist silkworms embroider tapestry of blinds and shutters from harp and lyre cord. Every meshed ventilator, sail rigging, mosquito-net and theatre-curtain, stretches taut, slackening loose, seen and passed straight through, except where vision and access are blocked by arched doors and gateways, always on the move, changing place, whenever it suits them.

Bricked-up, somewhere, deep inside cylindrical pilaster intestines, escape-committee insulates cavities and residents’ association tunnels-out; each side, observing reverential and devoted adherence to plans, first set down, very long ago, then handed on, ever since, by generations of ancient secret-passageways.

©, Copyright, Douglas Park, 2003

'Andere Sinema' number 170, edited by Dieter Rœlstræte and Sarah Leisdovich, MuHKA, Antwerp, 2004

Arrow, 1999





Sumi Ink on canvas
Approx. each 30,5 x 30,5-22,5 cm
Acquisition SEMA 서울시립미술관

Kim Kim Gallery Seasonal Greetings 2012


We are proud to announce a show of Nakhee Sung and Nakion in Februar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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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m thanks go to all the artists, partners, friends, supporters, volunteers and visitors who contributed to the success of Kim Kim Gallery in 2011.

Announcements & Distractions @ 19 Performance Relay
Apple vs. Banana, Chung Seoyoung Solo Show @ Hyundai Cultural Center
Kang Sumi Lecture / Chung Seoyoung Monodrama @ Kim Kim Salon
Kim Kim Gallery @ art:gwangju:11
Kim Kim Schaulager


킴킴 갤러리 새해인사 드립니다 : 2012

2012년은 2월 성낙희 성낙영 2인전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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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킴 갤러리 감사인사 드립니다: 2011

Announcements & Distractions @ 19금 퍼포먼스 릴레이
사과 대 바나나 (정서영 개인전) @ 현대문화센터
강수미 강연 / 정서영 모노드라마 @ Kim Kim Salon
킴킴 갤러리 @ 아트:광주:11
킴킴 샤우라거


19금 퍼포먼스 릴레이 2011 (19 Performance relay)




체험을 사랑하는 체험으로 순간의 공동체를
by 김남수 Namsoo Kim

in Article 아티클
#5
a journal of contemporary art
Dec. 2011

체험을 사랑하는 체험으로 순간의 공동체를, <19금 퍼포먼스 플레이>


예술이 징후 자체는 아니지만 징후가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이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지만 감정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의 변주처럼 들릴 텐데, 결국 징후는 아직은 판단불가능한 지대에서 새로운 감응을 위한 계기 같은 것이다. 이질적인 퍼포먼스들의 집합으로 세워지는 네트워크, 이것이 <19금 퍼포먼스 릴레이>(11월 11일 대안공간 루프)의 정체라고 할 때에는 유보적인 시각 혹은 신중한 시각으로 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원적으로 개방된 퍼포먼스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틈을 통해 그 전략적 기능을 파악하기는 아직 힘들기 때문이다.물론 <19금 퍼포먼스 릴레이>의 기획 의도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는 있다.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이라는 ‘예외상태’로부터의 탈주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미시 공동체’ 혹은 ‘순간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2010년 첫 번째 행사에서 표명되었던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이란 모토는 당시 인구 센서스의 참여독려용 문장이었지만, 이는 교묘히 변용되어 ‘벌거벗은 인간’의 상태에 처하지 않을 만큼 예술가의 자기 실천의 수행문으로 작용했다. 확실히 이 변용적 작업은 이태원이라는 해방구의 공기와 화학적으로 맞물려서 기대 이상의 가능 세계로 열려졌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행사에서 기획자 홍성민씨는 여전히 우발적이고 지각적이며 참여적인 토대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 “미술/퍼포먼스/공연예술의 분할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으로부터 이탈하는 잠재성을 탐문한다는 식의 취지를 밝혔다. 이는 그의 랑시에르 독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느끼는 감각의 문제”라는 층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즉 그는 “감각적 세계 안에 몸이 기입되는 방식”이라는 체험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몸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이란 토대 위에서 기존의 장르적 분할 체제를 재분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과연 이 제안은 충분히 실현되었을까. 탈전문화된, 항상 이미 해방된 예술가=관객이라는 전제는 사실 현실화되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관객이 그 신체적 존립 자체를 주장하는 것으로써 사회적 틈을 벌리고, 아니 사회적 틈이 된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미 플럭서스 등에서 선취된 이러한 미덕은 항상 이미 “이론으로서는 낡았으나 실제로 해보면 의외로 신선하다”(가라타니 고진)라는 선상에서 새로운 실상으로 실현되곤 한다. 또한 다른 복선을 깔고 있는데, ‘의외로 신선한’ 퍼포먼스가 “사회적 친교”라는 관계 미학적 시공간으로 체험되고 ‘미시 공동체’ 혹은 ‘순간의 공동체’를 촉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클라스트르)라는 정치인류학적 표현은 예술 실천을 통해 우리 시대의 공동적인 것이 구축하는 길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몸이 느끼는 감각의 문제”라는 가장 기본적인 차원이 급진성의 분할로 작용하게 된다.대충 이러한 시나리오인데, 첫머리에 말한 것처럼 과연 징후 이상의 감응적 상황을 연출한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그 이유는 <19금>에 개입한 정치미학과 관계미학의 연합, 기존 영역의 분할 체제와 그 체제에 대한 재분할 사이의 차이, 무엇보다 퍼포먼스의 강도와 ‘불화’가 어떤 감응 세계를 낳았는지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명제에 기대어 일련의 징후들을 적극 옹호하고 싶다: “영혼의 신비한 새인 ‘소문’은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최초의 ‘라디오’다.”(백남준)


첫 번째 행사의 나비효과는 두 번째 행사의 흥행성공으로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사회적 친교를 맺기에는 공연간의 배치가 너무 촘촘했고 관객들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가능한 만남들을 고안해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부족했고, 주어진 공연들을 지켜보기에 다소 바빴다. 어쩌면 이러한 불평은 공연 큐레이팅의 문제나 공연 자체의 문제보다 오히려 전체의 통찰로서 장소성의 문제로 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대안공간 루프가 풍기는 공간적 권능과 분위기는 홍대 문화의 쇠락이나 제도 공간의 비평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반면, 공간 해밀톤이 연접해 있는 이태원 공간의 채널이 그리워질 만큼 보다 넓은 사회적 틈으로 회고되었다. 이것이 <19금>의 가장 활발한 기호라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흥미로운 점이 없지 않았는데, 데뷔와 함께 88만원 세대의 감각을 노래한 그룹 ‘빚과 세금’의 오프닝도 그랬다. 그들의 노래는 합의할 수 없는 현실의 촉지로 이어졌다. 이런 부분은 LIG 아트홀이나 국립극단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전개한 어어부밴드 프로젝트의 공연과 비견할 만하다. 촉지적 감응보다 더 센 것이 있을까. 직접적이며 위협적이거나 수동적이며 방어적이건간에 ‘감정이 있는 사랑’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정금형 작가의 <금형 신제품 시연회>는 ‘러닝머신과의 신체적 교류’라는 매우 잘 계산된, 자연화된 타입이라 제한적이었지만, 이는 본래 공연을 앞두고 벌인 시연회의 성격이 빚은 결과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금형 작가가 천착하는 '금형'이란 개념은 기계의 욕정이 사이버네틱한 감응으로 일어나는 구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할 듯하다. 그의 '금형' 페티시즘은 절정의 순간 "와락" 껴안으면서 완성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데, 거의 정사(情死) 수준임을 재확인했다.


길종상가의 박길종 작가와 현시원씨가 진행한 <송창식 골든 제3집>은 송창식의 뇌와 실시간 연결된다는, 일종의 ‘존 말코비치 되기’ 식의 송창식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특이한 기계의 발표회였다. 그러니 여기서 "골든"은 실제로 "골이 들어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척 보기에는 코팅한 양은 찜통처럼 보이는 단순한 외관의 기계가 송창식과 심오하게 연결시켜준다니... 과연 풍자적 상상과학의 끝은 어디까지인가.홍성민 작가의 <영화>는 홍상수의 <극장전>에 나오는 한 장면의 대화를 전혀 다른 맥락의 영화들에 더빙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실시간 연극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코드의 재맥락화는 홍성민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카오스의 경련을 기존 필름에 입혀갈 때 발생하는 그 간극이 비논리적인 경험으로 인도했다. 좌우간 웃음은 순간의 공동체를 이루는 아교였다.


디르크 플라이슈만의 <예술아카데미에 대한 퍼포먼스>는 비엔나 액셔니즘의 작가 헤르만 니치에게 오마주를 바치는 렉처 퍼포먼스였지만, 액션 없이 지나치게 평면적이었다. 킴킴갤러리의 는 반복되는 드로잉 이미지들과 음악 사이의 선율적 풍경에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의 효과를 추가했지만, 그 예측불허는 다소 예측가능했다. 그러나 <19금>은 개별 작품들의 호오나 평가로 볼 수 없는 기획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참여하는 관계적 구조 내에서 사회적 틈을 생산하는 프로젝트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틈이란 협력적인 체계로서 예술 실천이 출현하는 장이며, 그 실천들의 관계망 자체이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실시간 일파만파로 전파되는 사회, 네이션=스테이트=자본의 공모가 가속화되는 통제 사회에서 지금 여기, 오늘의 현장에서, 함께 예술의 공동적인 것의 체험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 내의 감성 체제에 요동을 가하는 일이다.

글 김남수(무용평론가)

Distant Riders, 2007

Installation, 8 digital prints (each 260x150cm) digital prints on wood construction 
260x580x580cm

Best of 2011 EXHIBITION, art in culture

art in culture 2011년 12월호 www.artinculture.kr BEST OF 2011 EXHIBITION 아트인컬처는 연말 특집으로 미술전문가 59명을 대상으로 2011년 베스트 전시 앙케트를 실시했다. 미술전문가 59명의 앙케트를 통해 2011년 한 해의 한국 전시지형을분석 평가한다. 아트인컬처는 연말 특집 'BEST OF 2011 EXHIBITION'을 마련했다. 미술 문화의 대표적인 제도이자 창작을 담아내는 그릇 ‘전시’의 다양한 층위를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자리다. 전시를 기획에서 관객 호응까지 정교하게 조망하고, 나아가 전시 문화의 풍부한 소프트웨어 정착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앙케트 형식 (1)추천자 59명에게 1차 추천 전시리스트를 제공했다. 1차 리스트는 아트인컬처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에 열린 전시 중 언론 보도, 본지 리뷰, 전시 장소 및 장르 등을 고려했다. (2)추천 방법은 전시의 다양한 층위를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5개 평가 항목을 제시했다. 앙케트에 참여한 추천자들은 각 항목에 부합하는 전시를 5건 이내로 선정하도록 했다. 5개 평가 항목은 ①기획 컨셉트와 주제 ②예술성 ③디스플레이 ④학술 교육 ⑤홍보 관객호응도. (3)1차 리스트에 누락된 전시도 추천 가능했으며, 앙케트 참여자가 재직 중이거나 기획에 참여한 전시는 추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추천 결과 요약 추천 결과 및 1차 리스트를 총 수합한 ‘올해의 전시 116개’가 결정됐다. 항목별로 3회 이상 중복 추천을 받은 전시를 집계한 ‘BEST OF BEST 33’은 다음과 같다. 
 <코리안 랩소디: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박이소: 개념의 여정> 
 <크리스찬 마클레이: 소리를 보는 경험> 
 <팔방미인: 1970~80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눈 위에 핀 꽃> 
 <서용선> 
 <피처링 시네마> 
 <쇼 미 유어 헤어> 
<정서영: 사과 vs. 바나나> 
 <오늘의 프랑스미술: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페스티벌봄> 
 <소통의 기술> 
 <추상하라!: 소장품 기획전> 
 <손정은: 명명할 수 없는 풍경> 
 <카운트다운> 
 <정마리의 정가, 이수경의 헌신> 
 <안창홍: 불편한 진실> 
<시티 넷 아시아 2011> 
 <디터람스의 디자인 10계명> 
 <구본창> 
 <최진욱: 리얼리즘> 
 <근대 일본이 본 서양> 
 <조선화원대전> 
 <풍속인물화대전>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 
 <인터뷰> 
 <장민승+정재일: Spheres PartⅠ> 
 <김용익: 무통문명(無痛文明)에 소심하게 저항하기> 
 <김홍석: 평범한 이방인>
 <몹쓸 낭만주의> 
 <여론의 공론장> 
 <조각가의 드로잉>
 <초상화의 비밀>

형상, 그 너머로

계란껍질 통닭
1993, 29x36cm
Mixed media on Canvas

마크 해리스(Mark Harris)

김범의 작품에는교육받지 않은 작가들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형상언어단순한 도구들로부터도 감지되는 물활론(物活論:animism), 겸손한 재료의 선호와 조립을 위한 즉흥적 방법각각의 작품에 가득한 예측할 없는 유모어 감각등창작과정에서 서로 쉽게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부분들이 종합되고 있다그의 창작과정에서 유모어(해학) 작품에 있어서 하나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형상 속에는 하나의 장난(joke) 있지만형상을 만드는 방법이 자체로서도 유모어스럽기 때문에겹겹의 해학과 재치들은 시각적이고 언어학적인 표식들로 구성된 거미줄같은 (web) 안에서 결합되어보는 이로 하여금 일단 장난이 이해된 이후까지 작품을 주목하게 한다.

그런 유모어로써 김범은진부한 해석들이 간과하는 사실들현상들에는 밑바닥이 있고그것이 밝혀질 때에도 일반적으로 위축된 감각을 가지고는 도달할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유모어는 일상성의 근저를 관통하여 어떤 이치를 발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그리고 이것이 그의물질과 형상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 철저히 적용되기 때문에인간의 행동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길가의 개들의 모습 안에서 커다란 절망감을 보고부드러운 벽돌 벽의 표면 위에서 화면의 파괴 가능성을 발견하며구워진 닭의 대칭적인 형태안에서 흥분을 느끼는그의 이런 관점은 재미있고 또한 겸손한 것이다.번민하는 개와 요리된 통닭의 모습이 없는 도시나 시골의 생활은 상상할 없기에 가지가 범의 진행되는 작품들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가 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인 같다.

그의 작품들 중에캔바스 위에 계란 껍질로 통닭을 그린 것은 Faberge egg(계란 형태의 공예품) 섬세함을 간직한 짓궂은 각색으로 보인다또한 그는 캔바스에서 잘라낸 통닭의 실루엣을 계사용 철망으로 메꾸고 같은 재료로 구워진 통닭의 모습을 입체적인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개들은 개의 과자로 그려지고캔바스의 화폭을 오려냄으로써 자신의 몸을 물어 뜯어내고 있는 개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게 원자재(raw materials) 혼합시키는 방식은뉴욕에서 공부하는 외국출신 화가들이 즉각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떤 미학적인 경향재료 자체에 가장 충실하려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 1970년대의 급진적인 화가들이 지녔던 어떤 청교도적인 미학에 뭔가 기여하는 점이 있을 같다 범은 이런 접근 방법을 물질을 통한 풍자적인 해석을위해 사용한다그는 원단 그대로의 캔바스아연도금된 전선줄유리달걀껍질등을 사용하여그것들이 함축하는 어휘들을단지 자연 그대로의 속성으로서 아니라 여러가지 서로 모순되는 해석을 통해 풀어보려는 작업을 시도한다우리는 화폭 위에 깨진 유리 조각들을 붙여 만든 발자욱 모습들또는화폭에 거꾸로 붙인 압핀들이 이루고 있는 개구리의 형상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물을 것이다이런, '트기' 같은 발명물들은 반대의 극단도 생각해보게 한다압핀을 갖고 개구리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없음' 넌센스가 되고 의미가 사라지는 극점을 실험하듯 넌센스가 다른 주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범은 관습적인 특수성을 갖고 있는 화폭 자체를 재료로 사용하여 조형작업을 오히려 회화의 일반적인 제약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무엇이든 형상화시켜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한 재료의 성질에 대한 탐구와 추구는 캔바스의 잘려진 부분에 어떤 다른 물질이 아닌 바로 잘려나간 물질을 다시 꿰매어 넣는 그의 최근작에서도 역시 나타나고 있다윤곽을 이런 식으로 꿰매어 만들어지는 형상은 기억에 남도록 미묘한 일련의 작품들로 이어진다.

〈벽돌 벽 #1〉, 캔버스와 실, 51×61cm, 1994

중의 하나로서 개의 발자국들이 잘라내진 부분들을 원래의 제자리에 꿰매어 넣음으로써 마치 동물이 거기에 있었던 듯한 옴폭한 면을 남긴다 다른 작품에서는 캔바스의 직사각형들이 벽돌 벽을 묘사하기 위해 재조립되며고르지 않은 바느질은 굴곡과 느슨함으로써 형상에 예리한 활기를 준다. 'REMEMBER'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잘려지고 다시 꿰매어 붙여져 있는 작품에서는 글자들이 사라짐으로써, '기억하라' 명령을 애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의 작품 가운데엔 특히 그의 종교적 배경 여년전 만해도 아직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당했던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자라온 영향이 그런 해학과 더불어 드러나는 경우들이 있다 중엔 지우개가 화폭에 십자가 모양으로 직접 붙여지거나화면 뒤에 볼록하게 담겨진 작품들이 있다. '죄를 지우다'라는 것이 명제이며마치 너의 십자가를 들고 너의 죄를 지우라는 지우개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나타났음을 알고는 미소를 머금게 된다다른 방법으로 그의 그림과 드로잉에서 표면에 직접 훈계와 지시사항을 적거나비밀 메모를 혼합해 넣은 일련의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질나게 한다. '도주열차' 외로운 철도길처럼 캔바스에 꿰어진 도화선에행위가 수반되어야 하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지시사항의 하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제공된 라이터로 불을 붙여서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요구한다실제로 그렇게 하기 전에 당신은 주어진 빈칸에 이름을 써넣어야 한다작품은 파괴되기 전까지는 미완성일 아니라 행위자로서 서명한 사람이 바로 작품의 진짜 작가라는 것을 뒤샹적인 방법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즈 가운데 다른 작품에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어느 부분은 보게 하고어느 부분은 보게 하며 다른 부분은 만지도록 촉구한다 일련의 그림들에서 있는 고의적인 역기능과그림들을 보는 법률을 새로 쓴다는 점은 커다란 발명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런 고의성은 예술작업을 위해 Manzoni 지적(知的) 구습타파(또는 우상파괴) 주장하던 것과 몇몇 Fluxus 예술가들이 가졌던 대담성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작품은 희미하게 알아볼 있는 창백한 모습을 하고 있고드로잉들은 수줍고 도해적(diagrammatic)이며난해하다그들은 마치 하나의 흔적으로서도 충분한 매우 고요하고 깊은 인상을 준다실상 자체는 발자국사람 발자국캔바스에서 잘라낸 자국들에서 보듯이많은 경우에 흔적들로 이루어진다그리고 그는 달걀껍질 깨진 유리조각 등의 남은 부스러기들을 재료로 자주 이용한다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이런 소재들은 그가 불합리 성을 묘사하기에 효과적인데그것은강렬한 표현방법으로 우리를 압도하기보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형상과 해학을 탐지해 나가길 원하기 때문이다그의 표현들은경험에 대한 연설조의 진술이 아니라그보다는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완곡한 방법이며어떻게 사람들이 어떤 관습적인 틀을 벗어난 관찰에 대해 설명을 붙이는 가를 살짝 엿보게 하는 것이다, Michaux 말한 대로 평상시의 상황에서 어떤 놀라운 결론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멜론 안에는 심장이 뛰고있다(Henri Michaux, Slices of Knowledge, 1952)"

이런 식의 이야기는 주로 크지않은 종이에 그리는 범의 많은 드로잉들에서 매우 명백하게 나타난다여기에 제한되지 않은 생각들을 실은 폭주열차를아이디어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빨리 형상을 그린다는 점과 연관시켜 생각해 있다대부분의 드로잉 작품 경우에흔히 무시된 지나치는 주제들이 다루어지는데거기에는 물체와 동물들도 우리 자신의 것과 동등한 생명을 갖고 있고 인간의 특성들을 대변한다고 여김으로써 그것들의 존재론적 지위를 향상시켜 주는 물활론(物活論: animism) 담겨 있다.

작품들 가운데는 부끄러워서 눈을 앞발로 가린 개의 모습과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사자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황소, 자기의 두개골을 의기양양하게 밟고 서있는 머리없는 뼈대, 자기자신을 조각조각으로 절단하는 검사(劒士), 폭발하려고 하는 다이나마이트를 쥐고 있는 잘린 , 그리고 목줄이 전기 콘센트에 꽂혀있는 세파드를 또한 그리고 있다. 그런 독설적인 해학들은 냉소적인 사색과 예외적인 인간애가 서로 편안하게 합쳐지는 Michaux 두번째의 측면을 생각나게 한다

"거기에, 싸움에서 포로가 공격자들은 현장에서 얼굴이 찢겨 벗겨지고필요한 것은 얼굴을 잡아당겨 벗겨내는 믿을 없는 의지력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한데‥‥(Henri Michaux, In the Land of Magic, 1941)"  이런 잔인성을 지니지 않은 다른 그림들 역시도 예측하기 힘든 주제들을 다루었기에 몇몇 묘사해보자면, 가운데 하나는, 카메라가 사진사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고 카메라의 끈은 둘레로 흘러내리고 셔터 케이블(shutter cable) 눈에 바짝 붙어 있다. 사진사가 눈을 깜박이는 순간에, , 사진사가 물체를 보는 순간에, 카메라가 물체를 대신 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요리된 닭의 초록색 다리가 종이를 움푹 들어가게 실제의 이빨 자국을 간신히 벗어나고 있고, 다른 작품에서는 권총이, 손잡이에 털가죽, 총의 공이치기 대신 , 그리고 총열에는 구레나룻 수염이 붙어있는 개의 얼굴로 바뀌어지고 있다이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맴도는 놀라운 드로잉들이고,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 , 우리가 생명이 없다고 여겨온 곳에도 흘러넘치는 생명이 분명코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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