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 기록 이미지와 현대 미술의 만남

"<우주생활>은 우주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실제적 감각"
"NASA 기록 이미지를 통해 우주에 대한 다양한 표상을 살펴보고,
현대 미술을 통해 과학 기술에 대한 시각적 감각을 통찰하는 우주-이미지 전시"
"<우주생활>이란 지평선 너머 무한대의 공간과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공간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생활이다."

다양한 주제의 기획 전시를 통해 한국 시각 문화의 인문적 담론 생산을 주도해 온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2015년의 첫 전시로 <우주생활 - NASA 기록 이미지들>을 개최한다. 기계비평가 이영준 교수(계원예술대학교)의 기획으로 열리는 이 전시에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공개한 우주 관련 이미지 77점은 물론, 현대 미술가 총 7팀의 작품 30점, 총 107점이 전시되는 국내 최초의 대형 우주-이미지 전시다.
20세기 중반부터 인류는 눈부신 과학 발전을 통해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우주는 과학 발전이 보장하는 전리품이었고, 인류는 금세 우주로 뻗어나가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미래를 믿어왔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습득해야 하는 과학적 지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부터 기계 엔지니어링을 거쳐 여러 철학, 인문학적인 논쟁까지 이르며 발전했으며, 우주에 대한 인류의 환상은 수많은 대중문화 텍스트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상되었다.
전시 <우주생활>은 앞서 설명한 우주적 질서에 인류가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되짚어 보는 자리다. 다시 말해, 우주라는 덧없는 시공간에 대한 실제적 감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즉, 환상의 온도를 낮추고 과학적 감각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우선, 미항공우주국(NASA) 에서 공개한 수많은 기록 중 엄선된 77점의 이미지가 전시된다. 로켓을 쏘아 올리기 위한 엔지니어링부터 인간 생활의 극한을 상정한 갖가지 실험까지, 우주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보고자 했던 인류의 여정을 본 전시를 통해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다. 거기에는 우주를 실재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던 20세기 인류의 숭고한 염원이 들어 있다.
또한 이 전시에는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김상길, 김지원, 김홍석, 박아람, 정재호, 조춘만 등 현대 미술가의 작업도 함께 전시된다. 이들 작업의 공통점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과학과 기술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작가에게 과학은 신비이고 어떤 작가에게는 실제이기 때문이다. 즉, 과학과 기술에 대한 표상을 재현하는 다양한 시각적 방법을 통해, 인류와 우주 사이의 논리에 대한 감각적 인식의 지평이 현대 미술가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과학적 지식과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여전히 우주는 판단이 불가능한 세계다.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와 논리로 구성된 환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주는 대부분의 인류에게는 과학 기술을 통해 증명된 실재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지와 말과 감정과 상상의 생활이다. 아마도 현재의 인류에게 우주생활은 무중력의 우주공간 속에 사는 생활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더 큰 세계에 대한 판단력을 넓혀 나가는 생활일지도 모른다.

큐레이터 : 이영준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과 이미지 연구로 시작하여 현재는 기계-이미지에 이르는 영역에서 연구와 비평을 계속하고 있다. 『조춘만의 중공업(공저)』(워크룸프레스, 2014), 『페가서스 10000마일』(워크룸프레스, 2012),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현실문화연구, 2006) 등의 기계 비평 저서와 『이미지비평의 광명세상』(눈빛, 2012), 『비평의 눈초리: 사진에 대한 20가지 생각』(눈빛, 2008)등의 사진, 이미지 비평에 대한 저서가 있다

작가/작품
1) NASA 기록 이미지 아카이브
미항공우주국(NASA)은 1958년 설립된 이래로, 지금까지 실행해 온 방대한 양의 우주과학 관련 활동을 이미지로 남겼다. 지구, 달, 태양계의 모습은 물론,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한 머나 먼 우주의 사진, 우주과학 관련 각종 실험과 기계장치, 각종 매뉴얼 등, 현재 10만장이 넘는 이미지가 NASA의 홈페이지에 무료로 대중에 공개되어 있다.
NASA 기록 이미지 아카이브는 인류 과학 발전을 증명하는 보물이자, 본 전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작가다. NASA 기록 이미지 중 엄선한 76점을 선보인다.

2)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김나영은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독일인 그레고리 마스는 소르본 대학 철학과, 파리 국립미술학교, 파리 조형예술 인스티튜트, 네덜란드 얀반아이크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2005년 듀오를 결성한 이후, 유럽과 한국 등지에서 활동, 주요 개인전으로는 《부적자 생존》(3bisf 현대예술센터, 액상 프로방스, 2009),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공간 해밀톤, 2010), 《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아트클럽 1563, 2012) 등이 있다.
본 전시에는 나무로 만든 인공위성인 을 전시한다. 실제의 인공위성과 똑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가짜 인공위성은 기계의 외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결국 작동하지 않는 나무 덩어리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실체는 없고 표상만 존재하는 인류의 '우주생활'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3) 김상길
김상길은 반복적인 일상의 순간이나 사물의 특정 부분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찰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하여 익숙하던 삶의 이미지들을 기이하고 낯선 풍경으로 대치시킨다. 영화 혹은 광고 속 이미지들을 재연한 ‘모션 픽처’ 연작,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을 오프라인 공간에 초대하여 단체사진으로 촬영한 ‘오프라인 커뮤니티’ 연작, 그리고 텅빈 사무실이나 인적이 없는 주차장처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을 담아낸 ‘re-mode-1’ 연작 등 작가는 인물, 풍경, 다큐멘터리 등 사진의 거의 모든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인의 동질화된 일상 속에서 연극적 미학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는 암스테르담 아펠아트센터, 휴스턴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유수의 미술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한국 사진비평가상, 쌈지스튜디오상,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김상길의 시리즈는 우주감각의 최전선에 서 있다. NASA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사진들을 증폭하고 색조절을 한 이 시리즈에서 과학적 정보는 사라지고 감각만 남는다. 한정된 지상의 감각이 아닌 우주의 감각을 좇는 김상길의 사진은 섬뜩하게 아름답다. 

김상길-Accession Number_March/20/1998+March/20/1998, c-print , 230x180cm, 2012
4) 김지원
김지원은 2003년 이후 맨드라미 연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주요작인 연작은 작가의 작업실 앞에 수북히 핀 맨드라미를 이전과는 다소 다른 전통적인 회화적 관찰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정물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구체화시킨 맨드라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생성, 성장, 소멸의 압축적 과정을 깨닫고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명료한 생의 단계를 인지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김지원의 회화는 2009년 이후 작업하기 시작한 구축함과 공항의 풍경이다. 김지원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소재들을 회화에 끌어들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대상이 왜 저렇게 존재할까, 저것이 왜 저렇게 보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 그의 붓질이, 물감이 마음껏 궁금해 할 수 있도록, 김지원은 캔버스에 풀어놓는다. 그 궁금함은 긴장을 유발한다. 투박한 듯한 터치로 그려진 최첨단 기술의 산물인 구축함은 과연 왜 저렇게 존재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우주에 대해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하는 것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김지원-무제, 린넨 위에 유화, 118X228cm, 2009
5) 김홍석
김홍석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였다.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개념적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람객의 선입견을 깨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동시대의 미술을 미술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적 합의와 미술계를 중심으로 얽힌 그물망과도 같은 사회, 경제, 문화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번에 전시된 김홍석의 작품은 마치 기계를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듯 제작된 것으로, 마구 구겨진 종이를 마치 어떤 법칙의 결과인 것처럼 세밀하게 측정하여 설계도로 그려낸 것이다. 이는 정밀성의 아이러니를 말해준다. 정밀함과는 거리가 먼 우연적 형태를 일일이 측정하여 그려낸 솜씨는 마치 자연 현상을 필연인 것처럼 규칙화해내는 인간의 태도와 닮아있다. 결국, 예술과 과학기술은 우연과 필연이 기이한 치밀함을 통해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융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홍석-Elaborate diagrams for intended impossible completeness-A1(detail), 종이에 펜, 2013
6) 박아람
박아람은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대신에 무작위로 형태를 그려주는 포토샵 등의 그래픽 툴을 적극적으로 이용, 드로잉부터 입체까지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개인전 (2014, 케이크 갤러리)을 열었다.
박아람의 은 흡사 우주공간에 떠 있는 성간물질의 파편을 묘사하는 듯 하지만, 실은 우연한 계기로 설정된 2차원의 면을 교합한 뒤 3-D 프린터로 출력한 결과물이다. 자연의 원리와는 무관한 어떤 우연의 집합인 그것은 사실 어떤 것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주에 대해 상상해 보라는 자극제이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자들을 작가라고 했을때,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작업은 '우주생활'에 대한 사고와 감각의 스펙트럼을 한껏 팽창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박아람, 운석들, 3d print, Dimension Variable, 2015
7) 정재호
정재호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연작으로 주목을 받은 회화 작가다. 최근에는 사물이나 인물을 다루면서 시간 속 과거 우리의 삶과 역사를 반추하는 듯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치 기록사진을 촬영하듯, 정재호는 과거의 사건과 공간, 사물과 인물을 작품에 담아 역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정재호는 항공과 우주의 이미지를 판타지 속 괴물로 설정한 재치 있는 드로잉을 선보인다. 원래부터 항공기는 하늘을 나는 인류의 오랜 희망과 양차대전으로 비롯된 재앙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시리즈는 그러한 항공기에 대한 환상에 도전한다.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듯이, 이 그림은 항공기와 우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공연한 환상을 진정시켜 준다. 우주로 가는 추동력은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로켓엔진의 연료를 어떻게 정확히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재호-구조, 한지에 먹, 80X123cm, 2008
8) 조춘만
조춘만은 열여덟의 나이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들어가 산업과 연을 맺은 후 1970~80년대 조선소, 발전소, 석유화학 공장 등 국내외 산업 현장에서 용접사로 일했다. 불혹을 넘겨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사진을 수학한 뒤, 지금껏 산업 현장에서 강철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 전시에서 소개되는 거대한 배의 사진은 우주선의 스케일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다. 바다와 우주가 둘 다 인류의 스케일로는 쉬이 짐작하기 힘든 무한의 공간이라면, 조춘만의 사진에 나오는 큰 배와 기계들은 무한의 공간을 탐색하는 뚝심과 정교함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공간과 스케일과 물질의 숭고미의 끝에는 결국 우주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초극심우주(Hubble eXtreme Deep Field; XDF)의 모습이 10년 동안 2백만 초의 노출시간 동안 쌓인 빛을 모아 마치 우주 탄생의 비밀을 보여주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면, 조춘만의 사진은 배에서 나오는 빛을 찍어서 배가 닿지 못하는 곳을 밝힌다.

조춘만-석유화학, 화이버베이스 잉크젯프린트, 110X165cm, 2014
제공 | 일민미술관

http://www.art1.com/news/?at=read&subm=6&idx=272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