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솔라리스 art-solaris

아트솔라리스(Artsolaris)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최문선, 김민선)의 작품이다.

우리의 오랜 작업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스 조사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수년간의 노력이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솔라리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산더미처럼 많은 개별적 사실들 뿐이고, 거기에서 어떤 관념적 틀을 쥐어 짜낼 수는 없을 것 같군요. —<Solaris>. 1972. Andrei Tarkovsky

2016년 1월 인터넷 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트솔라리스는 한국 미술작가의 인적 사항과 주요 전시 정보들을 활용해 미술계에 형성된 네트워크와 개별 구성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3차원 지도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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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단 하나 강력한 카르텔 구조 들추다

2016.03.23

한국 미술계에 소란이 일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최문선 김민선 부부)의 작품 ‘아트솔라리스(artsolaris.org)’ 때문이다.

지난 1월 인터넷 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트솔라리스는 국내 미술작가의 인적 사항과 주요 전시 정보들을 활용해 미술계에 형성된 네트워크와 개별 구성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3차원 지도다. 미술계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미술계의 카르텔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업이다.


미술계 폐쇄성 고스란히 드러나다

마흔 넷 동갑내기 최문선 김민선 부부는 1년여 준비를 거쳐 지난 1월 말 아트솔라리스를 공개했다. 제작에는 데이터마이닝 기법(대용량 데이터에서 유용한 상관 관계를 추출하는 과정을 의미)이 이용됐다. 뮌은 기획자, 작가, 평론가 등 미술계 인사의 전시 정보(23일 기준 830여명)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성했다. 여기서 전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전시로 제한했다. 공적 자금이란 정부 지원금뿐만 아니라 예술 지원으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 기업 후원금을 포함한다. 최씨 부부는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사적 영역의 미술이 아닌 공공성에만 주목하고자 했다”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전시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이터가 입력되면 전시의 중요도와 전시 내 역할에 비례해 점(인물)의 크기가 결정된다. 전시를 두 번 이상 함께 하면 점들이 선(관계)으로 연결된다. 전시 횟수가 많아질수록 선은 굵어지고 짧아진다(끌어 당긴다). 알고리즘에 의해 완성된 지도에는 아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중심부 하나가 나타났다. 김민선씨는 이 중심부를 “미술계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하며 “아주 강력하게 엮인 ‘단 하나’의 그룹에 의해 미술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 중심부에는 김선정(큐레이터), 김홍희(큐레이터), 박찬경(작가), 임민욱(작가) 등 10명 안팎의 인물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 임민욱은 김선정, 박찬경과 각각 11회의 전시회를 했다. 작가들은 이 강력한 중심부를 ‘무대’ 혹은 ‘카르텔’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심에 속한 인물들이 서로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을 ‘감염적 소비’로 정의했다.

최씨 부부는 미술계 카르텔이 국내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개의 카르텔이 서로 경쟁하고 교류한다며 미술계를 하나의 그룹이 주도할 경우 취향이 매몰돼 획일화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 선 예술일수록 주류의 전횡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거기서 유추해 대중이 어렵다고 여기는 무용ㆍ음악 등 소위 ‘고급 예술’의 경우 다양한 취향에 견제 받지 않아 하나의 취향만 살아남을 것으로 봤다.


단일한 취향의 전파와 문화 획일화

최씨 부부는 카르텔보다 더 큰 문제는 ‘독립군’까지 주류의 문화에 편입되는 (혹은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는)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든 구성원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마치 유일한 성공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며 “미술계 인물들은 이미 형성된 카르텔에 어떻게든 편입되고자 그들의 취향에 작업을 맞춰간다”고 분석했다. 또 “젊은 시절에는 우리도 역시 그 무대만 바라보고 아등바등했다”며 이런 행태가 유지될 경우 미술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향을 맞춘다고 모든 점들이 주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심부와 연결될 수 있는 점은 ‘운이 아주 좋은’ 극히 일부의 경우다. 마치 ‘노력해도 안 된다’는 유행어처럼 애를 써도 이미 공고해진 카르텔 구조에 편입되기란 쉽지 않다. 김민선씨는 “그런데도 모두가 신기루 같은 하나의 무대만 보고 달려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중심과 독립 사이 한 점을 가리키며 “시간 순서대로 전시회를 보면 중심부와 한 번 손잡은 후에는 그들과만 계속 작업을 하려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며 “그냥 블랙홀처럼 안에 빨려 들어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독립군끼리 뭉쳐볼 수는 없을까. 최씨 부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면 실력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미술계에 팽배한데다 한국 미술계는 워낙 좁다 보니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트솔라리스의 분석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특히 갤러리 전시를 제외해 자료가 미술계 전반을 보여준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는 연구원이나 통계학자가 아닌 작가”라며 “미술의 공공성을 말하기 위해 작가로서 작품을 구현한 것이라 봐달라”고 말했다. “억지로 카르텔을 보여주고자 의도한 것도, 한국 미술의 기반 다진 주류들의 공로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며 “그저 객관적으로 우리 현실을 보자는 것”이라고 의도를 밝혔다.

“공론화의 단초를 제공한 데 만족”하지만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갈 생각이다.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 추가 데이터나 자료를 받고 있다. 작품 공개 후 받은 수많은 정보들을 입력해 한 달 내 분석 인원 1,000명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 등의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해 아트솔라리스 2.0를 만들 계획도 있다.


아트솔라리스 공개 이후 쏟아진 비난

아트솔라리스 공개 이후 미술계에서는 뜨거운 피드백이 쏟아졌다. 비난은 주로 주변부에서 나왔다. “주류를 질투한다거나 주류끼리 밥그릇 싸움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근거나 이유도 없이 “구리다”는 평론가도 있었고 “크지도 않은 미술계를 굳이 시각화해 뭐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최문선씨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은 환영”이라면서도 비난의 화살이 미술계의 카르텔이라는 본질을 말하지 않는 것에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손가락으로 잘못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욕하는 것”이라며 최씨는 “우리 모두가 잘못된 구조 속에 이미 살고 있었는데,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 시각화한 놈을 찾아서 응징하려는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심부와 멀리 떨어진 수많은 독립군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작품 공개 후 부부는 20년 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는데도 점으로도 표현되지 않은 한 작가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미술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얘기였다. 작업의 부작용이었다. 작가들은 “결코 좌절감을 줄 의도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저변을 확장하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진석(큐레이터), 함영준(큐레이터) 등은 이미 미약하게나마 별도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미술계 카르텔 중심부의 반응은 어떨까. 침묵이다. 최씨 부부는 “이번에 제기된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어쩌면 미술계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신은별기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3231449501550


아트솔라리스: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경각심

글_임경민

아티스트 그룹 뮌이 2016년 3월에 발표한 작품 <아트솔라리스art-solaris>는 웹사이트상에서 바로 볼 수 있다(www.artsolaris.org). 이 작품은 웹상에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미술계 내에서 일어난 850회 이상의 전시와 미술계 인사 950명 이상의 전시정보를 반영해 만든 3차원지도라 할 수 있다. 전시는 정부지원금, 세금 감면의 혜택을 받는 기업후원금을 포함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한정했다. 어째서 공적 자금인가하면, 작가 뮌이 만났던 수많은 작가들이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획자들이 12년 전과 비교해 보면 미술계에서 대다수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이 잘 분배되고 유효 했다면, 의기투합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그들이 지금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웹 상에서 자료를 모으고 입력하면서 만든 아트솔라리스는 다른 어느 집단보다 더 거대하며, 비슷한 생각과 기준으로 뭉쳐 파악이나 분석이 쉽지 않고, 더구나 웹 환경 안에서는 그 실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하나의 덩어리를 보여주고 있었고, 뮌은 그런 구조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트솔라리스는 한국일보와 시사IN에 지난 3월 작품이 소개되어,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어느 정도 문제작은 되었는데, 정작 미술계에서는 화제작이 되지 못했다. 작품에 대한 내용이 기사에 난 후 ‘아트솔라리스’라는 작품을 아는 작가가 많았을 것이다. 미술계에 민감한 눈과 귀가 많을진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복잡한 심경이 되어야 하는 입장이거나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웹상의 정보를 반영하며 컨텐츠를 구성한 아트솔라리스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로 갈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Q. ‘솔라리스Solaris’라는 단어는 실제로 사전적으로 정의된 단어가 아니다. 작품명의 의미와 이름 짓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

‣ 원작은 스타니슬라프 렘(Stanislaw Lem)의 소설『솔라리스Solaris』(1961년)이며 1972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i)에 의해 영화화된 이후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솔라리스는 젤라틴질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혹성이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다다. 이 바다는 거대한 하나의 뇌로 작용하며 솔라리스를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정보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사고에 교란을 일으킨다. 가장 나중에 파견된 연구원은 그동안 수집된 정보는 실체와는 거리가 먼 것들뿐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양상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공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접한 사람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감지하고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접한 모든 정보가 유효한 것은 아니며, 어떤 정보는 오히려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교란시키는 경우도 많다. 산재되어 있는 정보가 솔라리스의 바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리고 갈등을 일으키고 헷갈리게 하기도 하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정보들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웹 환경 그리고 실체를 명확히 볼 수 없는 미술계 역시 솔라리스의 바다와 유사한 속성을 보였고 작품명을 ‘아트솔라리스’로 정하게 되었다.

Q.<아트솔라리스>가 올해 소개되었지만, 내용을 볼 때 짧은 시간에 완성될 수 있는 성질의 작품은 아니다. 긴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이 작업의 배경이 궁금하다.

‣ 2006년부터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좋은 전시를 하게 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국 미술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에 특별히 인맥이 없는 상황에서 겪는 한국의 미술계의 작동방식이 건강하지 못한 분열의 상황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정 전시컨셉과 취향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전시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냥 보기만 해서는 정확히 어떤 기준이며 어떤 내용인지 알기가 어려워 그들이 개최하는 전시와 작품의 면면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8년경부터 그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던 차에 2009년 말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단체전이 있었다. ‘그런 무리 지은 전시들은 혹시 연구소에서 연구되고 진행되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에서 시작한<Made in Laboratory>라는 타이틀의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에 할당된 공간으로 출근한 두 연구원이 지급된 작가리스트와 관련 있는 텍스트를 조사하고 키워드를 엑셀파일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작가 50명을 선별하고 조사했을 때, 결과를 토대로 무리가 지어졌으며 그에 따라 취향, 작업적 성향과 인맥 등이 발견되고 정리되었다. 감지된 것과 기준에 의해서 분류된 정확한 인지는 다른 것이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작업적 주제들의 공통분모, 국내의 출신 대학, 유학을 거친 대학 등 대상의 카테고리화가 원활히 될 수 있는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그 그룹의 기준에 벗어난 다수의 작가들은 여기에 포함되기 어렵겠다는 질문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웹프로젝트로 시작되기까지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Q. 그렇다면 아트솔라리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접적인 동기 혹은 계기는 무엇인가?

‣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기억극장>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더 이상 ‘의외의’ 피드백은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긍정적인 반응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 외의 생각들을 들을 수 없었다. 너무나 공고하게 굳어진 미술계는 더 이상 다른 무리에게 의견을 전하지 않고, 다른 무리를 초대하지도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취지아래 사실은 벽을 세우고 상호교환을 거부하는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관찰과 움직임이 없는 현상아래서는 더 이상 ‘의외의’ 반응을 기대하거나 그러한 상황에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회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고, 눈치만 보다 사라진 주변의 많은 미술계 사람들과 우리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가 느끼는 현실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스스로를 콘크리트 벽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단조로운 테마, 일방적인 개념미술이 영역을 넓혀가는 싱거운 미술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외국어로 된 책을 읽어서 내용을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번역을 해서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아트솔라리스는 사실 2009년부터 해 온 작업이지만 작년부터 그것이 체계를 잡은 정보가 되었다.


Q. 그 과정에서 영향 받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것은 작가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 )의 작품이다. 그는 1970년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단체전 《Information》에서 <투표>라는 작품을 통해MoMA의 이사회 회원이자 당시 뉴욕주지사였던 록펠러의 국가정책에 대한 태도가 차기 선거에서 관람자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지를 묻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 Museum)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뉴욕 슬럼가를 이용한 부동산 사업을 폭로해 큐레이터는 해고되고, 전시는 급작스럽게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일들과 억압, 정보의 비대칭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초대받아 전시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70년대 당시의 날선 시각과 망설임 없는 폭로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어떻게 아트솔라리스를 통해 사유화되고 있는 공공성을 드러낼 것인가 고민했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지금 이 방식은 다소 서툴 수도 미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분명 감지된 문제를 무시하거나 없는 것처럼 여기면 차후에 분명 더 큰 염증이 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이 이야기가 공론화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 문제가 이미 인지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아트솔라리스를 프로젝트로써 이어나갈 생각이다.


Q. 아트솔라리스는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정보도 웹에서 취한 것인데 1970년대와는 사회적 환경이 매우 다르다. 이 변화와 그에 따른 이슈의 이동을 작품에 어떻게 반영하였나?

‣ 예전에는 개인의 자취가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작성된 기록을 조사하거나 관찰 혹은 직접 묻는 방식으로 유의미한 내용을 도출해야 했다. 비록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어떤 점에서는 명확한 내용을 바로 획득할 수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한 다른 정보가 여러 가지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개인의 움직임, 취향, 선택과 사회적 이동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는 수집되어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트솔라리스>도 이러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그야말로 모든 기록이어서 작품으로써 소개되기 위해서는 데이터 마이닝을 통한 선별이 필요했기에 특정한 기준과 어느 정도의 개입이 적용되었다. 일단 공적자금이 투입된 전시를 대상으로 한정했고, 투입된 자금의 규모가 크고 전시의 중요도가 높은 순서로 점수를 부여하여 그 내용이 화면상에 구현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공공영역에서의 전시가 몇몇 무리의 독점적 구조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다.


Q. 웹 환경과 작품의 콘텐츠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 앞서 언급했던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에서의 작업에 참여한 조사원에게 우리는 한국작가 50명과 외국작가 50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서만 찾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유효한 정보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정보들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웹에서 볼 수 있는 것의 차이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웹이 가지고 있는 접근이 쉽다는 특성과 또 그만큼 부정확한 부분을 논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한정된 루트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만큼 그 부정확함 자체에 객관성이 존재한다. 변화된 웹 환경은 점점 검색이 쉽도록 변해간다. ‘해시태그’를 달거나 위치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단계를 통해 넓디넓은 영역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내용이 쉽게 정렬된다. 이것은 한 편으로 검색되도록 한 것만 검색되는 맹점을 낳는다. 유명세가 있는 인물이 웹 특히 SNS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특정 단어 등에서 노출되는 빈도를 높인다면, 데이터 마이닝의 과정에서 더욱 많이 그리고 자주 잡히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이고, 이것이 실제의 가치평가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작품의 취약점이자 웹기반 작업의 특징이 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깨닫게 된 내용이 있는지?

‣ 일단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외국은 미술이나 문화에 관련된 대학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술대학을 다니는 사람의 수가 많고,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수도 적지 않은데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결국 대부분 미술계에서 사라지거나 관계도에 전혀 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지탱하고 지지해줄 공공의 힘이 한쪽에 쏠리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작업을 그만두는 것에 가속이 일어나는 것을 방치해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전시가 많지만 그 중 중요도가 높은 전시, 비용이 높거나 주목도가 있는 기획자들의 전시, 99프로를 공공기금으로 활용하는 대안공간들 위주로 데이터 마이닝을 하면서 공공의 전시가 공공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떠해야 공공적이다라고 지금 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열린 기회가 주어지고, 더 큰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떠나고 사라지기보다 지속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의 무리에 들 수 없다면 가능성을 타진할 수조차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아트솔라리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로지 몇몇의 카르텔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지내며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Q. 독점적 구조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미술계에서 아트솔라리스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술계의 반응과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 기대했던 반응은 ‘공론화’이다. 일간지나 주간지에서 나오는 반응에 비해 미술계에서는 공식적인 반응이 없다. 아마도 각자의 입장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은 한다. 사적으로는 부정적 반응이 많다. 뜨기 위해 하는 작업이라거나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 문제를 불거지게 해서 좋을 게 없다는 충고도 있었다. 속담에서처럼,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현재의 미술계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 소를 잃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가 아트솔라리스를 통해서 그저 더 주목받기 위해서 였다면, 우리가 높은 점수를 부여했던 주된 전시만 참여하거나, 어느 기사에서 왜곡했듯이 빅데이터 분석으로 아트파워의 인물들 랭킹을 정리했을 것이다.

Q.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트솔라리스>를 발표한 올해 2016년이 지나간다. 이렇게 단발로 끝날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트솔라리스와 관련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앞으로 아트솔라리스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물리적인 영역이나 작품이 보여주는 정보의 깊이 면에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국내 네트워킹이 해외의 네트워킹과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유통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더욱 정교하고 유효한 정보를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깊이 면에서의 확장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SNS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밖에 없지 않나. 웹 기반으로 사적 영역에서의 정보를 다룬다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SNS플랫폼은 개인적 차원의 발언이 역사화될 수 있는 위험이 아주 크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취향 혹은 개인의 선택을 노출하는 빈도가 높고, 그 당사자가 해당 앱 상에서 맺은 관계의 수가 많은 경우 사실관계의 확인이 없이 의미와 가치가 확대 재생산된다. 사익을 위해 공공의 장을 활용하면서 헤게모니를 확대해 나가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SNS플랫폼이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전문가라면 중심을 잡고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의도가 나쁘지 않더라도 양상이 부정적으로 흐르면 정확히 점검하고 대책과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미술계에 무슨 헤게모니가 있느냐 여기에는 돈도 권력도 없다“는 작가도 있는데, 정말 열심히 작업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돈과 물리적 집단이 있어야만 헤게모니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사이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사 전체를 100이라 할 때 그 중 5에 해당되는 정도만 미술계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자고 말하고 싶다. SNS플랫폼 상에서 좋아요와 공유가 넘쳐나지만 공감은 자동으로 발언이 되지 않는다. 개인이 정보 자체의 가치를 떠나 그저 언급하는 것만으로 힘을 가지는 현상이 나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지 말고, 습관적인 좋아요 버튼 누르기를 하기 전에 여기에 힘을 실어줘도 좋은가 생각하는 풍토가 특히 미술계에서 자리 잡히기를 바란다.

Q. 향후 활동 계획은?

‣ 앞으로는 여럿이 같이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서툴러도 좋고, 서로 맞서도 좋다. 그것이 무슨 문제이든 어떤 것, 어떤 상황이 감지되었다면 그에 대한 논의가 제안되고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영역을 형성할 것이다. 대형 공공전시의 주 기획자, 참여작가의 좁은 관계도에 대해 쉽게 발언할 수 없는 입장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공적자금으로 전시가 개최되는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 과정의 불합리나 커넥션을 외면하고 전시성과에 대한 사적활용으로 경력을 연장해가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벗어난 채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시를 이루어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기를 희망한다.
http://www.artnd.net/board_VheX64/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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