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난해함과 모호함 속 페미니즘 그 이상의 미학이 있다

경향신문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14) 2022.01.04 

페미니즘 계보의열외’ - 정서영과 양혜규


1. 페미니즘 계보의열외작가

환상의 복식조 13라운드 작가는 정서영(1964) 양혜규(1971).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작가는, 다르지만 비슷한 가족 구성원처럼, 교차하고 중첩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닮아 있다. 유사성의 줄기는 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비타협적 태도이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관측이 어려운 블랙홀과 같이 난해한 이들의 작품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첨예한 감성과 지성, 비상한 통찰력과 탐구력으로 새로운 예술영역을 개척하며 관객을 개안시키는 양면가치를 내포한다. 작가는 어떤 사조나 이념에 속하지 않는 독립성을 견지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이들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없다. 물론 젠더 의식이나 여성적 감수성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들 작업은 페미니즘 독해로는 충분치 않은 미학적, 정치적 진폭과 특성이 두드러진다. 자체가 여성 화단을 비옥하게 하는 의미 있는 요소라고 생각해서 이번 연재는 이들을 페미니즘 계보의열외작가로 초대했다.


정서영, 개념적 정의 어려운 조각. 각종 함의와 서사여러 해석제시

2. 정서영, ‘공기를 두드려서

조각가 정서영, 그는 보통 조각이 아니라 별난 조각으로 한국 화단을 경각시킨 문제적인 작가이다. 그의 조각은 조각이면서 조각이 아닌, 양식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범주화가 어려운 경계지대의 산물이다. 전통 조각의 역사적 권위, 심오한 주제의식, 미학적 깊이, 상징적 수사학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하듯, 그는 칸트적 순수비판 정신과 비타협적 작가 의식으로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예술의 본질과 조각의 원형에 대해서만 묻고 답한다.

정서영의 조각은 응축된 시구나 약호처럼 간결한 형상으로 조형된다. 형상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구상조각이 아니고, 추상화된 상태이지만 추상조각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위적 레디메이드도 아니다. 당황스럽고 거북하다. 구상과 추상, 또는 재현과 제시의 이분법으로는 설명이 되는 새로운 개념의 조각, 그것을 구태여 정의한다면,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인공적 피조물로서 자기참조성을 획득하는 독자적 사물이라 있다. 초기작인전망대’·‘수위실’·‘’·‘선인장’(2000)으로부터, 근작호두’·‘ ’·‘열쇠’(2020) 이르기까지, 정서영의 수많은 조각품은단어가 불일치를 무릅쓰고 조각을 대리하며 제목 역할을 하는, 기표와도 아무 약속을 하지 않은사물로 존재한다.

단순명사로 표기되는 정서영의 사물적 조각은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현존 개념을 공유하지만, 거기에는 미니멀리즘에 부재하는 서술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주제어와 무관한 비묘사적 언어이자 기호화된 의사(擬似)서술로, 작가의 물질적 상상력이 현실사회, 일상환경과 직면하는 순간 발생하는 창조적 비약과도 같은 것이다. 고유한 사물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그것을 사회적 사물로 맥락화하는 매개자적 의지로 그는 인식 이전의 원초적 감각과 비의적 사유로만 가능한 서술적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물질세계와 의미체계를 왕복하는 이러한 수행적 과정에 의해 형식주의 미니멀리즘과 차별화되는, 관념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허구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서술적 맥락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서영 조각의 서술성은 도무지 뜻을 없는 산문적 전시 제목이나 작품명에서 보란듯이 명시된다. “책상 윗면에는 머리가 작은 일반 못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사못을 사용하지 마십시오”(2007, 에르메스 전시명) 극단적인 사례다.

특히 작가의 지속적 프로젝트텍스트 드로잉 “125분에 뚱뚱한 거북이를 만났다” “우주로 날아갈 때는 코를 빼놓고 간다 식의, 의식의 흐름을 차단시키는 분절적인, 그러나 속에 얽매이지 않는 해방적 서사로 특성화된다. 가운데괴물의 지도, 15 작가가 15분간 고개를 숙이고 작업실 주변을 거닐며 보았던 것들의 기억을 담은 것이다. 괴물의 흔적이나 힌트는 없지만 우연과 오해를 동반하는 기억의 흐름을 추적하며 괴물의 출몰을 연상시킨 드로잉은 2008 광주비엔날레와 2009 갤러리 플랜트에서 각각 먹지 복사본과 원본 드로잉으로 발표됐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괴물의 지도에서 드라마틱한 서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2010 LIG 아트홀에서 연극적 퍼포먼스라는 그답지 않은 미학 실험을 시도했다.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 그것이다. “그것은 엄청나게 바위였어요…” 시작해당신 모자 끝을 조금 베어내겠습니다 끝나는,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균열적이고 분열적인 대화로부터 발상된 서사극에는 남자와 여자, 할머니와 소녀, 요괴와 인간의 중간 형상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거나 미세한 동작만을 반복하는데, 그럼에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극장의 시공간을 활성화한다. 배우들은으로 발생시키는 장소특정적 조각을 연기한 셈인데, 연기를 통해 결국 밀랍 인형이나 극사실주의 조각처럼조각이 되어버린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정서영의 용의주도한 서사적 실험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물적 조각으로 환원된 것이다.

그럼에도 식지 않는 서사적 충동으로 그는 견고한 사물성을 완화시킨다. 그것은 자율적 형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물의 사회적 의미화 작용에 유념하는 작가의 관계적, 맥락적 예술의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200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출품작을 잠시 소환해 보자. ‘새로운 이라는 작품은 오토바이 뒷좌석을 서울 을지로나 청계천에서 흔히 보던 판자 짐수레로 대체하면서 수레 밑부분은 창문 달린 아파트, 윗부분은 고속도로로 만든 이상한 조합의 변형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린 옹색한 수레 판잣집은 택지가 부족해 고속도로 밑이나 도로변에 바짝 붙여 지은, “3세계 특유의 대안 또는 아시아적 방식으로 건조된 초현실적 건축 풍경에 대한 정치적 코멘트이지만, 동시에 베니스에서는 무용지물인 오토바이를 탈것으로 개조한 농담 같은 풍자이기도 하다. 3세계 현실에 대한 성찰적 서사이자, 베니스의 장소특정적 조각인 얼굴의 오토바이로 작가는 서사적 조각, 또는 조각적 서사라는 이중 함의를 실체화했다.

정서영 조각의 이율배반적 미학은 비물질적 대상을 물질적으로 조형화하는 지점에서도 확인된다. 작업 초기부터 그는 진동, 시간, 공기 비고정적이고 순간적인 현상을 고체로 농축시킨 물질적 조각, 또는 무형을 형으로 만드는 개념적 조각으로 사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했다. 1998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유령, 파도, 전형적 사례다. 2020 바라캇 갤러리공기를 두드려서전에서는 비물질과 물질의 모호한 함수관계를 대변하듯, 알쏭달쏭한 전시 제목으로 비물질 공기가 물질적 조각의 매체가 있다는 허구적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공기가 예술매체라는 가설이 사물과 서사, 비물질과 물질의 이중적 함의로 난해함을 면할 없으면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정서영 조각의 매력, 또는 흡인력의 비밀을 깨닫게 해준다. 설명하지 않고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그의 작업은 관객의 감응, 상상, 연상으로 채워야 하는 빈틈이 많아 역으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정보의 전달 양과 정밀성이 떨어지는 희박한 공기와 같이 그의 조각은, 마셜 맥루한의 용어를 빌리면, ‘ 매체이다. 고기압적 선동보다는 저기압적 절제를 구가하는 까닭에 그의 조각은 쿨하고 쿨하기 때문에 핫하다. 이것이 공기와 같은 비물질을 매체화한다는 해학에 담겨진 정서영 조각의 메시지가 아닐까?


양혜규, 주관적 언어로 풀어낸 설치. 여성 인식·역사관 조밀하게 엮어

3. 양혜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를 무대로 전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양혜규. 그의 작품세계는 중량과 질량이 너무 커서 빛을 포함한 무엇도 빠져나올 없는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주관적인 언어로 구사하는 특유의 서사, 학문적·현학적 용어로 표기하는 전시와 작품 제목들이다. 2020 국립현대미술관 ‘O2 & H2O’ 전과 전시 대표 출품작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 2018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회고전도착 예정 시간’(ETA), 2012 카셀 도큐멘타13 출품작진입: -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등이 단적인 사례다.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이라는 특정 작품군의 주제목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취약하여 상처받고 다치기 쉽다 ‘vulnerable’ 뜻은 체계적이고 공고하게 발전해온 그의 작품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목의 함의가 양면가치, 애매모호함, 비일관성 등으로 일반화되기에는 턱없이 복잡다단한 양혜규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블라인드 ’(2006) 각종 감각적 기계장치와 3편의 비디오 에세이의 영사막으로 둘러쳐진 블라인드 구조물로 구성된 초기 설치작이다. 작품은 제목부터 작가의 등록상표가 블라인드라는 재료적 발견과다치기 쉬운 배열개념이 동시병발적으로 발생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블라인드의 뜻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손쉽게 시야를 차단하거나 개방하는 기성품 블라인드는다치기 쉬운 배열이라는 애매하고 모호한 발상을 위한 충분한 재료적, 소재적 잠재력을 암시했을 것이다.


2007 이후다치기 쉬운 배열작품군은 바퀴 달린 링거대나 의류진열대 같은 직립형 스탠드 위에 전구, 전깃줄, 사슬, 로프 온갖 소품을 걸쳐 놓은행거작품이자 전등으로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조각으로 재탄생한다. 정박형 예술품의 형식적 관례와 영구적 가치를 부정하듯, 행거 위에 유연한 재료들을 적당히 걸쳐놓은 듯한, 헐겁고 무격식적인 자유형의 행거 조각은 유약한 인체를 환기시키는 맥락에서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이라는 명칭에 걸맞아 보인다. 행거식 조각의 의인적 암시는 블라인드 혹은 매듭공예 패널로 결합된 의상이자 탈것이 되는의상 동차(Dress Vehicle)’(2011~2018), 바퀴 달린 무속방울 조형물이 이동할 소리를 내는소리 나는 조각연작(2013~2017)으로 발전했다. 움직임과 소리에 기초한 수행적 조각은 등신대 크기로 커진 냄비, 컴퓨터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다리미의 외피 전체를 방울로 뒤덮고 바퀴와 손잡이를 달아 의인화시킨 4인조소리 나는 가물 서울 ‘O2 & H2O’ 전시의 화제작으로 등장했다. 전시에서 주목을 하나의 작품군은 인조 짚을 직조하여 제작한 몸통 없는중간유형(the intermediates)’ 집단이었다. 작가가이무기 부르는 조각은 머리나 수족이 없는 추상적 유사생명체,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피조물로, 그야말로 비인간적으로 형상화된다치기 쉬운 배열 완결판이었다.

대목에서 양혜규가 블라인드와 같은 일상용품, 가전제품 레디메이드 공산품이나 매듭, 뜨개질, 짚공예와 같은 민속적이며 가사적인 직조공예, 또는 주변의 허름한 오브제를 자주 활용하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다치기 쉬운 배열 아랫목을 차지하는 가전기기는 일찍부터 단골 소재로 등장했는데, 가운데 2009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한 광원조각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공동체의 살림 한국관에서 전시한살림 특기할 만하다. 집안 살림, 가사노동을 여성의 다양한 삶의 양태에 기반한 우울과 감상의멜랑콜리아 번역한 계열의 작품에다치기 쉬운여성 공동체에 대한 공인과 공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합의와 공론에 유념하는 작가의 역사인식, 동양과 서양, 고와 , 예술과 공예의 차별을 부인하는 교차문화적 의지와 상통한다. 양혜규가 추상화, 퍼포먼스, 자수, 직조를 섭렵하는 소피 토이버아르프에게 보내는 특별한 경의나, 외조모가 살던 인천의 폐가에서 기억과 시간을 불러낸 탈미술관 전시사동 30번지’(2006), 할머니가 벽장에 보관하던 통조림에 대한 기억으로 캔에 손뜨개질 덮개를 씌운통조림 코지’(2010) 연작에서다치기 쉬운 환대하는 작가의 심경이 확인된다.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물꼬를 블라인드 작업은 2008 이후 독자적인 대형 설치작품으로 탈바꿈하며 형식적으로, 의미론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적색의 파열된 미로산맥’(2008) 사회주의 항일투사 김산과 미국 전기작가 웨일스의 희귀한 만남과 그들이 처한 혁명과 추방의 위험을상처받고 흘린다 ‘vulnerable’ 라틴어원을 환기시키는 붉은색 블라인드로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 - 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2012)에서는 재일교포 액티비스트 서경식과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이탈리아의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가 공유한 이민과 이주의 대서사적 경험을 대형 추상적 구조물로 조형화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익명적이고 몰개성적인 블라인드로 자신의 감정을 거르고 기존 서사의 흐름을 우회시킨다. 반항 서사를 물밑으로 가라앉히고 추상을 전면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는 미학적 형식주의자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 부인할 없는 정치적 반항과 윤리의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지금/여기의 상황주의자이다.

양혜규는 2010~2016 사이 프랑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편소설죽음에 이르는 ’(1982) 5회에 걸쳐 미국, 한국, 독일, 홍콩, 멕시코에서 무대화했다. 소설 주제가 불가능한 남녀 사랑인 만큼 공연은다치기 쉬운 배열이라는 양혜규의 핵심적 키워드를 관통한다. 여하한 배역의 개념 없이, 매번 다른 여배우가 소설 전체를 낭독하는 모노드라마에서, 작가는 영상, 조명, 사운드, 대형 선풍기, 모기향 등을 동원하여 공감각적 무대를 창출했다. 전통적 연극 장르의 규범을 손상시키는비카타르시스 경험을 강조함으로써 양혜규는 뒤라스가 글쓰기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소격효과를 창출하는 동시에, 불가능한 사랑과 같은다치기 쉬운 배열 뉘앙스를 전파했다. 결국 양혜규에게취약함(vulnerability)’이란극복하기보다 힘을 싣고 싶은 어떤 가치…. 떨쳐버리거나 대체하는 대신에 지킬 방법 모색하게 하는 신체적이자 정신적이고, 윤리적이자 저항적이며, 미학적이자 정치적인 양날의 검과 다를 없다.

4. 수수께끼와 블랙홀의 메시지

결은 다르지만 정서영과 양혜규는 유사가족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서영 부친이 시인이고 양혜규 모친이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이들은 고도의 문학적 감수성과 비범한 언어적 감각으로 그들만의 기호학과 조형학을 제안한다. 이것이 수수께끼나 블랙홀과 같이 난해한 그들 작품의 언어적 배경을 말해준다. 그러나 해설을 거부하는 비타협적인 작품을 피하고 돌아서기 이전에 그것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알기 위해 지각세계의 문턱에 올라서면 작품 자체가 스스로를 자명하게 드러낸다. 일견 불가사의한 이들 작품이 베일을 벗는 순간 지적 감흥과 억압된 감각 중추가 분출하는 감성적 희열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기와 같은 쿨함과 멜랑콜리한 취약함으로 관객을 각성시키는 이들 작업의 메시지가 아닐까?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201042148005/?fbclid=IwAR0xZPgpBH7GQX_Vm5CVmMk5oW3-qCj8BfEpgvam7TJDzZrbKLXFWlsjDM0#csidxe68d9e0f45383569e349227125f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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