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상황 Ⅰ>은 김순기가 미대 시절 발표했던 <소리>(1970)를 빌라 아르손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염색한 천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끈을 연결하여 걸거나 나무에 걸쳐 놓는 야외 설치를 촬영한 작품이다. <조형상황 Ⅱ>(1972-1974)부터는 야외에서 여러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까뉴 쉬르 메르(Cagnes-sur-Mer), 니스(Nice), 그라스(Grasse), 모나코(Monaco) 등에서 진행한 《조형상황Ⅱ》(1971-1973) 전시에서는 직접 한국에서 공수한 천과 작가가 직접 대나무를 깎아 만든 살로 수백 개의 연을 만들어서 참여자들과 함께 날렸다. 이때의 영상은 기승전결이 없고 초점이나 각도도 제각각인데, 카메라를 빌려서 여러 참여자들이 돌려가면서 찍었기 때문이다. 김순기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참여하는 보르도(Bordeaux)의 10월 축제에 초대받아 <조형상황 Ⅲ>(1973)을 발표하였다. 작가는 흰 풍선 아래에 천을 늘어뜨려 그 밑 부분에 돌을 매달고, 일정한 시간 후에 돌을 잘라냈다. 해방된 풍선들은 하늘로 향해 날아올라 사라졌다. <조형상황 Ⅱ>와 <조형상황 Ⅲ>는 개방된 장소에서 날씨와 풍향 등 통제할 수 없는 조건에 맡기는 작업이다. 김순기는 <조형상황 Ⅰ>을 발표한 후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 작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며 당시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추구하던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과 함께했다.
- *쉬포르 쉬르파스는 1970년대 프랑스에서 회화의 방식을 실험하는 전위적 예술그룹으로 전통적 기법을 벗어나서 캔버스의 나무 지지체를 없애고 화포를 펼쳐놓거나 접어놓는 등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였다.
조형상황Ⅰ- Ⅲ
어린 시절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가겠다는 꿈을 키웠던 김순기는 1971년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Centre Artistique de Rencontre International) 의 초청작가로 선발되어 도불했고, 국제예술센터(빌라 아르손Villa Arson)에서 서울대 미대 시절 발표한 '소리'를 발전시킨 야외 설치 작품 '조형상황 Ⅰ'을 발표했다.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4학년으로 편입했으며, 1972년 전국 미술대학 우수졸업생 36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파리에서 전시에 참여했다.1970년대 초반 프랑스 문화부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졸업 후 교수로 임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김순기도 이 정책에 따라 1974년 마르세유 고등미술학교에 임용되었으며,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임했다.
보수적인 파리 미술계와 달리 니스, 앙티브, 카뉴 쉬르 메르, 깐느 등과 마르세유, 엑상 프로방스와 같은 지역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새롭고 실험적인 미술 실험이 적극 장려되었다.
'조형상황 Ⅱ'와 '조형상황 Ⅲ'에서 김순기는 미대 학생, 작가, 일반인과 함께 대형 풍선을 만들어 해변에서 바람에 날리고 영상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작품에 사용된 카메라는 방송용 고가 장비로, 김순기는 직접 촬영하지 않고 참여하는 일반인들과 작가들에게 카메라를 맡겨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하였다.
작품에 사용된 카메라는 방송용 고가 장비로, 김순기는 직접 촬영하지 않고 참여하는 일반인들과 작가들에게 카메라를 맡겨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하였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말하며 독자의 참여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했듯이 김순기도 예술이 열린 시공간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석했다..
출처 : 아시아에이(http://www.asia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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