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적 테크노 @ 세마 코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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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의 커미션 작품 중 안데스 작가의 〈지질학적 테크노〉 프로젝트가 던진 파동을 세마 코랄에서 전합니다.
사전프로그램 《정거장》은 비엔날레의 25년 역사와 평행하게 진행되었던 미디어아트의 변화와 시도들을 살펴보고, 이어서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발견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그 하나로 제작된 프로젝트 〈지질학적 테크노〉는 현대미술작가 ‘안데스’의 2017년 남미 여행 중 생겨난 오래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안데스산맥 지층의 형성 과정을 제빵, 전시형 퍼포먼스, 참여형 워크숍으로 발전시킨 작가는 ‘지질학적 등산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지각 변동, 소리, 형상, 비트와 같은 비가시적 감각에 집중한 그 예술적 소통을, 여러 음악 관련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기획해 온 ‘유지성’ 필자의 글을 읽으며, 감지해 보세요!


경계 너머의 지진파로 만든 열두 곡의 지질학적 테크노 글 | 유지성 〈지질학적 테크노〉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의 일환으로 제작된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 핵심이 되는 상상력은 프로젝트를 이끈 작가 안데스의 2017년 남미 여행 중 생겨난 오래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 남아메리카 동부의 거대한 자연 장벽 안데스 산맥 지층의 단면에서 케이크의 절단면을 상상한 그는, 이 발견을 곧 제빵으로 산의 형성과정을 추적한 전시형 퍼포먼스 〈지질학적 베이커리〉(2019-2021)와 서울의 산을 방문하여 여러 지형을 관찰하고 탐험한 참여형 워크숍 〈빵산별 원정대〉(2020) 등으로 구체화한다. 그렇게 원정대를 꾸려 산을 오르던 그는 ‘지질학적 등산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바로 지진파를 이용해 테크노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클럽에서 경험한 테크노는 강렬한 저음에 추상적인 사운드로 ‘땅의 파동’을 기록하는 지진파의 성질과 꽤 닮은 점이 있었다. 물론 지진파는 대부분 10헤르츠 이하의 저주파로 구성되기에 몸으로 느낄 뿐 인간의 귀로는 듣기 어렵다. 단, 그 소리를 대략 20헤르츠 이상의 가청 음파로 변환시킨다면 그것은 음악을 이루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테크노는 지진파의 본래 성질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인 동시에 이처럼 지진파 샘플을 이용한 작법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장르다. 신시사이저 파형과 샘플을 재료로 한 샘플링 및 모듈레이션 기법은 테크노의 음향적 다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렇기에 두 파동(지진파와 테크노의 구성요소)의 정성적 유사성과 작법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충분한 정당성을 갖는다. 물론 이런 설득력 있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테크노 아티스트들에게 이 같은 작업은 큰 도전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가상악기와 샘플을 마음먹는 대로 사용 가능한 현재의 프로듀싱 환경에서 가청 음파로 변환된 지진파 샘플은 한계가 명확한 시작점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두 테크노 프로듀서 Zeemen(지멘)과 Xanexx(자넥스)는 그런 난제 혹은 흥미로운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감히 풀어내며 이른바 ‘땅의 소리’로 테크노를 창작했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요즘 시대엔 없는 일(Zeemen)”이자 “극단적 상황(Xanexx)”이지만, 각자의 어려움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작업하였기에 오히려 테크노의 본령에 가까운 음악들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당히 반복적이고, 샘플이나 신시사이저가 애초에 가진 거친 질감이 가감 없이 드러나며, 곡의 주제 의식을 충실하게 담은 바로 그런 테크노 말이다. “테크놀로지는 부족함으로부터 출발해서 쌓아가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Xanexx의 소회나 “이펙터를 많이 쓰기보다 원래 샘플의 길이를 조절하거나 음높이를 바꾸는 식으로 접근하며 (지진파 샘플로 테크노를 완성한다는) 프로젝트의 목표에 충실하게 작업했다”는 Zeemen의 후기는 이들이 만든 지질학적 테크노 트랙들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안데스, 〈지질학적 테크노: 땅의 비트를 들어라〉 자료 중 ‘지진파를 가청영역대로 변환한 소리 샘플’, 2022. 지진파 사운드 변환과 오디오 엔지니어: 최선호.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커미션. 각각의 트랙은 2016년의 경주 지진, 2017년의 북한 6차 핵실험,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태평양 주변의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자주 일어나는 환태평양 조산대, 2018년의 인도네시아, 2015년의 힌두쿠시 산맥, 2005년의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 그리고 2021년의 화성까지 특정 시공간, 즉 그때 그 ‘땅’의 지진파를 담고 있다. 음악 제작은 2022년 7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미술관에서 열린 비공개 제작 워크숍을 통해 어떤 지진파를 선택하고 어떻게 음악을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며 전개됐다. 제작 워크숍에는 지질학 연구원 이준형, 김병우와 이정인, 테크노 아티스트 Zeemen과 Xanexx, 오디오 엔지니어 최선호가 참여했고, 참여자들은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 시공간에서 관측된 지진파를 테크노 음악으로 변환하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경주부터 지구 밖 화성까지,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 곳곳을 포함한 열다섯 개 지역의 지진파가 음악의 대상이 됐다. 제작 워크숍이 주어진 과제 해결을 위한 실무적 관점의 토의였다면, 같은 기간 동안 진행된 전문가 강연 프로그램은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관객과 함께 지진, 파동, 테크노 음악 등을 배우고 체험하는 ‘오픈 리서치’의 형태로 꾸려졌다. ‘지구와 지진’(박성준 지진학자, 2022. 7. 23.), ‘지진과의 불편한 동거’(홍태경 지진학자, 2022. 7. 30.), ‘테크노 음악의 역사를 따라서’(이대화 음악 칼럼리스트, 2022. 8. 6.), ‘테크노 음악의 연주와 제작’(이동화 뮤지션 , 2022. 8. 13.), ‘파동과 비트 - 우주 모든 것들의 연결과 소통’(김태희 실험물리학자, 2022. 8. 20.), 그리고 ‘기계와 음악’(이영준 기계비평가, 2022. 8. 27.)은 각기 다른 주제로 이뤄졌지만, 하나의 프로그램이 구성한 맥락 안에서 지질학과 테크노라는 전혀 다른 분야를 연결 지어 〈지질학적 테크노〉 프로젝트에 관한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진과의 불편한 동거’ 프로그램에서는 지진파라는 데이터가 다양하게 응용되는 사례를 통해 일상 환경과의 관계를 인지하게 됐고, ‘파동과 비트’에서는 지진파와 음파라는 두 파동의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기계와 음악’에서는 기계의 발전과 음악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작 워크숍에 참여한 모두는 테크노가 기계의 힘을 빌려 지진파의 특질을 해치지 않고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음악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공감하고 공유하게 됐다. 두 개 이상의 강연에 복수로 참여한 관객이 적지 않았다는 점 또한 지질학과 테크노의 만남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마침내 일련의 절차를 거쳐 탄생한 〈지질학적 테크노〉 열두 트랙이 공개됐다. 2022년 10월 1일과 2일에 열린 렉처 퍼포먼스는 그동안의 오픈 리서치를 정리하며 프로젝트 전개를 재구성한 안데스 작가의 발표와 각자 만든 테크노 트랙의 제작 방식을 보여준 두 테크노 아티스트의 발표로 구성됐다. 이 자리에서 그들이 들려준 지진파 샘플들은 원 파일의 데이터를 가청 주파수 대역 위로 끌어올려 음파로 전환한 상태였고, “딱”, “쿵”, “그르릉”처럼 아주 짧게 끊어지는 ‘위험한’ 소리였다. 발원지별로 차이가 뚜렷한 지진파처럼, 두 뮤지션이 만든 트랙들도 지역별 특성을 잘 살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완성됐고, 이 모두는 테크노 음악이 가진 여러 특성들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진계가 기록한 북한의 제6차 핵실험 파형이 타격감과 긴장감 넘치는 테크노가 되었다면(프로듀서 Zeemen 제작, 이하 각 음원을 제작한 프로듀서명을 표기), 2018년의 인도네시아 지진파는 용암이 분출되듯 육박하는 저음역에 그래뉼러 신시사이저를 통과한 산발적 파편을 더한 화산지대의 사운드로 변모했다(Xanexx). 2021년의 화성 지진파를 몽환적이며 신비로운 인상으로 재조합한 트랙(Zeemen)과 2005년 동아프리카 탕가니카호의 거대한 지층의 움직임을 앰비언트 성향으로 해석한 실험(Xanexx) 또한 〈지질학적 테크노〉라는 프로젝트명에 걸맞은 더할 나위 없는 결과물이었다. “파형 모듈레이션은 신호처리 학자들도 하는 일”이라는, 오픈 리서치의 첫 강연을 맡았던 지진학자 박성준의 발의 혹은 증언이 어쩌면 〈지질학적 테크노〉를 응축한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이 같은 테크노 아티스트의 작업과 지진학자의 연구 사이의 연결점은 ‘경계 너머의 도시를 전자음악으로 여행해보자’는 프로젝트의 표어와도 맞닿아있다고 할 만하다. 지구 반대편 지층의 단면을 확인하고 생겨난 작가의 호기심에서 기인한, 심지어 지구 밖 행성의 파동까지 음악의 일부로 끌어당긴 경계 없는 프로젝트로서 〈지질학적 테크노〉와 열두 곡의 트랙은 견고한 지층처럼 오래 기록될만한 의미가 있다. *이 글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2022)과 연계하여 수록되었습니다. 이번 사전프로그램은 비엔날레의 25년 역사와 평행하게 진행되었던 미디어아트의 변화와 시도들을 살펴보고, 이어서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발견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여기서 미디어아트는 기술과 예술의 대칭적인 구도나 기술적 변화에 따라 변모해간 예술의 형태 이전에 분할과 복사, 반복과 확장, 흐름과 소통, 그리고 동시간성과 가상성이라는 무형의 성질에 가까이 있습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에서는 지난 비엔날레 작품과 기록을 전시하는 공간에 미디어아트의 근원성에 집중한 작품을 새롭게 호출하거나 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웹을 필수적으로 활용해 여러 지식 생산자를 온-오프라인으로 연결하고 비시각적인 감각에 집중한 예술적 소통의 주요 사례를 이곳에서 소개합니다.

안데스: 안데스는 일상의 환경, 놀이, 오브제, 사운드와 같은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용하는 작업을 만들어왔다. 쌈지 아트디렉터(2006-2009), 동요 트리뷰트 밴드 부추라마(2006-2012)로 활동했으며, 매일 입었던 복장을 기록하는 〈데일리 코디〉(2006-2013)와 연계한 다양한 형태의 참여형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최근에는 산의 형성과정을 제빵으로 추적하는 〈지질학적 베이커리〉(2019-2021)와 서울의 산을 탐험하고 주변 환경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찾아내는 워크숍 〈빵산별원정대〉(2020-2021)를 진행한 바 있다.

유지성: 유지성은 2009년부터 『GQ KOREA』 에디터, 『Playboy Korea』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프리랜스 에디터 경력을 시작한 이후로는 BUDXBEATS, Discogs, Red Bull Music 등을 비롯한 여러 음악 관련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현재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및 한국 힙합 어워즈 선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더불어 Jesse You라는 이름의 디제이 및 프로듀서로 전자음악의 관점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자 한다. 《Boiler Room Seoul》, 《Wonderfruit Festival》, 《Shi Fu Miz Festival》 등 국내외 이벤트에 참여했으며, 음악 레이블 Walls And Pals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http://semacoral.org/features/geotechno-listen-to-the-beat-of-the-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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