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아카이브Crumbled Archive – 애호가로서의 비평

 2021년 5월 18일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기계비평가 이영준입니다.

기계에 관심이 있는데, 특히 근대에 만들어진 쇳덩어리로 된 기계, 메커니즘이 보이는 기계에 관심이 있고,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요즘 기계 중에 디지털 회로랑 연결되지 않은 기계는 거의 없거든요. 제가 주변을 살펴보니까 디지털 회로와 연결되지 않은 기계는 방앗간에 떡 빻는 기계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혹은 옛날 전화기는, 그러니까 다이얼로 된 전화기는 디지털 회로가 없어요. 그리고 디지털 회로를 어떻게 전문적으로 정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일단 CPU가 들어가는 회로라고 생각해요.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 회로고, 그건 밥솥에도 들어가 있고, 자동차에도 요즘은 정보 회로의 비중이 엄청 커졌죠. 문제는 그런 회로에 들어있는 알고리즘을 알 방법이 없으니까 손을 못 대겠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되게 많이 떠들길래, 나도 알아보려고 검색해봤는데 낯선 용어가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싶어서 바로 포기했어요. 단순히 위키 백과만 봐도, 약 인공지능 강 인공지능, 또 다양한 용어가 나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여튼 디지털 기계는 내 영역이 아니다 싶었어요.

저는 기계 비평이라는 영역이 굉장히 독특한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익숙지 않은 사람도 많을 텐데,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기계 비평이라는 게 기계를 대상으로 하긴 하지만, 예술비평과 비슷한 점은… 마침 기계가 여기 있는데, 기계라는 사물을 보고,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사물의 특성, 가령 재질은 어떻고 작동은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점 같아요. 이걸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사물을 볼 때 단순히 저건 굴삭기다, 헬리콥터다 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이게 사물로서 존재하고 작동하려면 수많은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비평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평가하는 건데, 일단 평가하기에 앞서서 이해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이해를 하다 보면 기계의 내러티브가 보이기도 하거든요. 헬리콥터의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생겼는지, 그런 내러티브를 펼쳐보자 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기계 비평입니다.

기계에 대해 비평을 하게 된 계기는 기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것일까요?

그렇죠. 저는 어릴 때부터 기계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또 사람이 철이 들면 관심사가 바뀌잖아요. 주식이라든가, 돈에 관한 이야기나, 사회에 대한 것으로 바뀌고는 하는데, 나는 철이 안 들어서 기계가 계속 좋더라고요. 그래서 기계에 대해 비평을 하게 되었고, 기계 비평이라는 건 결국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기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기계 비평이라는 것을 하실 때 보다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제가 써보고 싶은 글이 있는데, 보잉 747이 여객기 중에 가장 아이콘 같은 비행기에요. 이게 1971년에 대한항공에 처음 도입되었고 지금은 단종되었는데, 아무래도 50년 가까이 보잉사에서 이걸 엄청나게 팔아먹고 지금은 비행기가 작아지는 추세라 단종시킨 것 같아요. 지금 나오는 보잉 777이나 787은 엔진이 두 개밖에 없고, 707보다 크기도 작아요. 그렇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을 찾는 건데, 어쨌든 작년에 마지막 단종되었던 보잉 747도 대한항공이 도입을 했다고 해요. 그런 사실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 역사에서 보잉 747을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저도 대한항공은 아니지만 보잉 747을 타고 처음 해외로 나갔고, 그래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아마존에 검색해보면 보잉 747에 대한 책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제가 생각하기에 서구의 선진국과 한국이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이자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서구는 산업 문화나 기계에 대한 문화가 풍부하게 발전되어 있어서 예쁘고 좋은 기계 책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말 조금씩 나오고, 그것마저도 대부분 일본의 책을 번역한 책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기계들이 있는데, 보잉 747, 포드 머스탱 같은 아이콘이 된 기계들에 대한 책이 해외에는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가령 소나타가 생산된 지 40년이 넘었을 텐데, 소나타를 보고 국민 차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소나타가 모델도 많이 바뀌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면서 그 안에 얽힌 사연도 많을 텐데, 그것에 대한 책이 하나도 없죠. 한국이 만든 기계들, 가령 금성 선풍기 같은 것도 많은데, 그것에 대한 책이 일단은 없고, 앞으로도 안 나올 것 같아요. 그래서 나같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오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책이 나올 텐데, 일단 기업은 관심도 없고 아예 자료도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내 소원이, 대한항공이 보잉 747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걸 어떻게 한국화를 했는지에 대해 쓰는 거예요. 기계의 한국화라는 게 내가 이야기해놓고도 개념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문제긴 한데, 일단 대한항공이 모든 자료를 나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그럴 리가 없죠. 그래도 그런 책이 제일 만들고 싶어요.

또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항해에 대한 거예요. 제가 배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 저의 지식을 조금 더 심화해서 항해에 대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책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그건 차라리 쉬운 편이죠. 항만에 가면 사진을 많이 찍을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나거나 메커니즘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직접 조선소를 방문하시기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장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건가요?

중요하게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런 게 당연한 일이죠. 감동적인 일이기도 하고요. 가장 최근에 감동적인 경험을 했던 게,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 한국형 발사체를 보러 잡지사랑 같이 견학을 갔거든요. 그래서 로켓 엔진 테스트하는 걸 보고, 테스트가 끝난 직후에 연소실을 들어가 봤어요. 거기서 로켓 엔진이 성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엔진이 정말 정교하고, 또 거기 있는 기술자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로켓을 만드는 게 엄청나게 까다로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로켓을 딱 만들면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령 실험 모델을 먼저 만들고, 발전시켜서 인증 모델을 만들어서 각 부분별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또 실제로 나는 모델을 만들고, 그거랑 똑같은 모델을 또 만들어서 결국에 쏘아 올린다는데, 구조도 복잡하고 어렵더라고요. 하여튼 나는 내 비평의 가장 기본이 눈썰미라고 이야기해요. 제가 비평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계를 봤을 때 그것이 가지는 존재감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그것에 관심이 있고요. 그 존재감을 설명해보자는 의지에서부터 비평이 시작되고요. 저는 복잡한 담론에는 관심이 없고, 저 물건이 왜 저런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또 저는 경험이 있다 보니 기계를 보면 대강 그것에 대해 알 수 있는데, 로켓 엔진은 봐도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미국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도 가보고 했는데, 로켓 엔진을 직접 보니까 정말 보통 물건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연료로 케로세닌을 쓰는데, 테스트 이후에 벽에 그을음이랑 케로세닌이 뒤섞인 것들이 묻어있더라고요. 만져보니까 케로세닌 냄새가 진득하게 나고요. 그런 경험들 때문에도 현장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가서 보고 경험하는 기계의 스케일이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저도 어릴 때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어머니에게 여쭤보니까 어릴 때부터 소방서에 가서 소방차를 구경하거나 경찰서 가서 경찰차를 구경하곤 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런 경험이나 기억이 선생님께서도 있으신지요?

기계 비평을 시작하기 이전에 있었던 가장 큰 관심은 2005년에 지인분의 소개로 인천항에 들어간 거였어요. 모든 항만이 보안구역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는데, 운 좋게 들어간 거죠. 처음으로 인천항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이야 전 세계 항만을 다 다녀봤고 이제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생전 처음 본 인천항은 어마어마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모르는 배에 무작정 올라타서 사진을 막 찍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리스 선적이었고, 원래는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으니 좇아내야 하는데 그리스인 선장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소개를 시켜줘서 구경을 했죠. 그렇게 항만을 샅샅이 보기도 하고, 그렇게 큰 배에 처음 올라가서 충격을 받은 거예요. 크레인도 엄청나게 크고, 이런 놀라운 풍경을 비평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또 옆에는 영국 함정이 있었는데 무작정 뛰어오르고, 올라갔더니 지키는 군인이 이 배는 전투함이라 못 보고 옆에 지원함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함에 갔더니 운 좋게 장교 식당까지 구경하기도 했어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벽면에 엘리자베스 여왕 사진이 걸려있고, 테이블에 함장, 부함장 자리도 정해져 있고. 그런데 웃기는 건 바로 옆에 있는 사병 식당을 봤는데 너무 좁고 거지 같더라고(웃음). 그렇게 구경도 하고, 그 즈음부터 기계를 비평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그 뒤로 배에 관심이 생겨서 배를 타보고 싶은 마음에 2007년 처음으로 화물선을 타봤고, 이후로는 여러 번 배를 타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큰 기계가 있다면 배일까요?

그렇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존재감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물건들이 있잖아요. 건물이나 도로, 자동차 같은 물건이랑 배의 존재감은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일단 배는 쇳덩어리 하나하나가 엄청 크죠. 가령, 여기 학교 위로 넘어가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는 쇠로 된 거터가 있고, 초록색 구조물에 콘크리트 상판을 얹은 건데, 나중에 배를 타고 와서 이걸 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배는 선측 두께가 7 센티미터짜리 쇠를 쓰거든요. 그런데 이 도로는 1.5 센티미터밖에 안되어 보이더라고요. 사실 이 도로는 고정되어 있으니까 덜 강해도 돼요. 그런데 배는 항상 끔찍한 파도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쪼개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강해야 하죠. 그리고 이놈은 허술한 게, 교각이 있고 그 위에 거터가 놓여있는데, 거터가 혼자서 무게를 다 받치는 게 아니라 교각이 같이 받쳐주고, 거터는 상판을 얹기 위한 지지 역할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배는 혼자서 버텨야 해요. 그러니까 배라는 게 굉장히 독특한 거고, 지구상에서 이만한 존재감을 가진 물건이 없는 거죠. 쇠 한 피스로 되어있고, 끔찍하게 가혹한 바다라는 환경을 버텨야 하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도 그렇고, 외관이 가지는 곡선도 묘하게 생겼잖아요.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또 배가 가지는 기계적인 디테일도 그런데, 배를 타다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가령 사진을 보면, 이건 구명보트고, 위에는 구명보트를 내리기 위한 크레인이고, 이건 정박할 때 쓰는 노틸러스고, 이런 메커니즘들이 파악되기 시작하는데, 그런 걸 알아나갈수록 다양한 사물의 존재감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주로 존재감이나 눈썰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기계 비평을 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 관점이 있으신가요?

제가 하려다가 안 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한때는 엔진의 역사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환경 문제 때문에 화석연료가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그 대신 전기차가 많아지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2040년까지 화석연료를 퇴출시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엔진 덕분에 여기까지 왔잖아요. 건물도 엔진으로 짓고, 엔진을 타고 돌아다니고. 근대 전체를 엔진 덕분에 세울 수 있었는데, 환경문제로 이걸 너무 간단히 퇴출시키는 게, 사실 퇴출시키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과연 엔진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퇴출시키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엔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

저는 몇 기통, 이런 것만 아는데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집에 차 있어요? 그 차가 몇 기통인지 알아요?

아마 아버지 차가 4 기통인 걸로 알아요.

대부분의 차 가진 사람들은 자기 차가 몇 기통인지, 아니 기통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기계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는 거예요. 사상가들이 가끔 자기 사상을 그대로 덮어씌워서 판단하고는 하는데, 그러지 말고 기계를 더 잘 이해하자는 거죠. 가령, 헬리콥터를 구성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아요. 여기 위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뭔지 알아요?

아니요. 모르겠어요.

이건 와이어 커터에요. 예전에 사고가 있었는데, 설악산 케이블카에 헬리콥터가 부딪혀서 추락한 사고가 있었거든요.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많이 하니까 전깃줄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없으면 와이어에 걸려서 로터가 떨어져서 추락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있으면 와이어가 잘려서 추락을 방지할 수 있어요. 물론 끊어진 와이어는 배상해야 하지만(웃음). 이런 게 재밌잖아요. 여기 꼬리에 로터는 왜 있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메인 프로펠러가 회전할 때, 사실 프로펠러가 아니고 로터라고 하는데, 이 로터가 우리말로 회전 날개에요. 이게 양력도 일으키고 추진력도 일으키는데, 이게 한쪽으로 회전하게 되면 반대 방향으로 토크가 생겨서 뱅뱅 돌게 돼요. 그걸 상쇄시키려고 꼬리의 로터가 도는 거예요. 그걸 상쇄하는 또 다른 방법이 큰 로터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건데, 육군에서 쓰는 헬기가 그런 경우이고요. 또 러시아에서는 동축 반전 로터를 쓰는데, 같은 축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로터를 두 개 쓰는 거예요. 맨날 산불 끄러 다니는 카모브사의 KA-32라는 헬리콥터가 그런 경우에요. 저는 이런 게 재밌어요. 또, 헬리콥터에는 조종사 발밑에 창이 있는 게 재밌지 않아요? 헬리콥터는 착륙할 때 발밑을 봐야 해서 창문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헬리콥터는 이제 피스톤 엔진을 안 쓰고 가스 터빈 엔진을 써요. 그래서 헬리콥터 엔진이 돌기 시작하면 슈우웅 하는 소리가 나다가 로터가 돌면서 파카파카하는 소리가 나요. 가스 터빈 엔진이 무게에 비해 출력이 어마어마해요. 가령 소나타에 들어있는 엔진이 150마력 밖에 안되는데, 같은 크기의 가스 터빈 엔진은 3000마력이 나와요. 물론 관리 유지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얘는 돈보다는 군사 작전용이니까 효율이 중요해서 쓰는 거죠. 무게가 가볍지만, 출력이 어마무시하니까. 물론 초기에는 헬리콥터도 피스톤 엔진을 썼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저는 재미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듣는 헬리콥터 소리가 가스 터빈 엔진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메인 로터가 돌면서 바람을 일으키는데, 그 바람이 나오면서 생기는 충격파가 동체를 때리면서 나는 소리가 흔히 듣는 파카파카 하는 소리인 거죠. 또 요즘에는 그 소리를 줄이려고 노력해서 큰 날을 두 개 쓰기보다는 가는 날을 네 개 써요, 끝을 살짝 구부려서. 육군에서 쓰는 UH-1H는 아직 그런 소리가 나는데, 요즘 나오는 헬리콥터는 그냥 위잉 소리만 나고 끝나요. 소리를 줄이는 게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한데, 하나는 민원이 정말 많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항공기 소음 민원이 많이 들어오거든요(웃음). 그리고 전시 상황에는, 사람들이 흔히 레이더에 안 걸리는 걸 스텔스라고 생각하는데, 소음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요소에요. 가령 베트남 전 때 정글에 떨어진 군사를 헬리콥터가 구하러 오면 그 병사는 ‘와 구세주다’라고 생각했지만 적군에서는 ‘와 먹잇감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수님의 비평은 가치 평가보다는 설명과 해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단 다짜고짜 설명하고 평가하기 전에 디테일을 아는 게 중요하죠. 디테일한 부분을 알고 평가하냐 아니냐의 차이가 많으니까, 그런 디테일을 알고 싶은 거예요.

또 그런 게 있어요. 오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걸 엄마라고 생각한대요. 그런 것처럼 저도 어릴 때 처음 접해본 기계가 제일 아름답더라고요. 그게 헬리콥터고요. 그리고 존재감 같은 경우도, 딱 봤을 때 ‘와 크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디테일이나 구조에서 오는 존재감도 크게 작용해요. 기계의 구조나 기능, 기계 특유의 감 같은 것들이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주로 다루고 싶은 주제에 있어서, 앞서 말씀하신 기계의 한국화 같은 것 말고 또 다른 게 있을까요?

일단은 그게 가장 커요. 크게는 두 가지를 하고 싶은데, 항해 경험을 더 쌓아서 잘 이해하고, 보다 심도 있는 책을 쓰는 것. 그리고 앞서 말한 보잉 747의 한국화. 이것들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도 항공 쪽에 관심이 많아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기대돼요. 어떤 쪽으로 관심이 많아요?

어머니가 여행사에서 근무를 하셨거든요. 어머니 덕분에 비행기도 꽤 자주 탔던 편이고, 종종 간단한 항공 지식도 알려주셨어요. 가령, 밤에 건물 위에서 반짝거리는 신호가 나오는 이유는 비행기가 부딪히지 말라고 신호를 주는 거라는 것 같은 사실을요. 그런 것들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맞아요. 혹시 밤에 비행기 날아다니는 것 본 적 있어요? 그때 비행기에 불이 켜져 있는데, 빨간색 불이랑 파란색 불이 들어와요. 내비게이션 라이트라고 부르는 건데, 재밌는 게, 지금은 첨단 장비도 많이 발전했지만, 항공기나 선박같이 안전이 중요한 기계에는 리던던시라는, 일종의 백업을 굉장히 많이 해요. 온갖 첨단 장비들이 있긴 하지만, 그게 고장 날 수 있으니까 고장을 대비하는 거죠. 예를 들어, 멀리서 다른 물체를 봤을 때, 그 물체가 나한테 오는지, 아니면 같은 방향으로 멀리 가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내비게이션 라이트를 보는 거예요. 이건 국제 공통이고, 민간, 군사, 선박, 항공 전부 공통인데, 저 물체가 나랑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왼쪽 날개에 빨간 불이, 오른쪽 날개에 파란불이 나오게 되어있어요. 반대로 왼쪽 날개가 파란불이고 오른쪽 날개가 빨간불이면 나한테 다가오는 거니까 피해야겠죠. 그래서 그런 불이 켜져 있는 거예요. 웃긴 게, 지금은 어마어마한 첨단 테크놀로지가 발전되어 있는데, 가장 쉬운 것에 안전을 의지한다는 거죠. 일단 가장 기본은 제일 쉬운 것에 기초한 백업 시스템을 마련하는 거니까요.

또 궁금한 점은, 비평이라는 것이 주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기계 비평이라는 것을 시작하신 이유에 있어서, 기계를 예술로서 받아들이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저는 기계들을 봤을 때, 저거는 예술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실 ‘예술이다’가 아니라, 예술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아요. 가끔 작가 중에 기계를 만드는 작가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어설플 수밖에 없는 게 작은 기기를 만들려고 해도 모든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거든요. 기계에는 필연성이 있어서 멋대로 하면 작동하지 않아요. 또 효율성도 있어야 하고요. 기계는 맘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치수든 메커니즘이든 모든 게 제대로 만들어져야 해요. 그런데 작가들이 기계를 만들면 필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설플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기계를 볼 때마다 감각이라는 측면도 그렇고, 기계의 복잡성, 독특한 존재감 등의 요소가 예술작품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술은 감상하고 싶을 때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지만, 기계는 누구나 볼 수 없다는 거죠. 배를 아무나 태워주지는 않고, 공장에 아무나 들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선생님께서 경험하신 현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가요?

조선소에 간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정말 산더미만 한 배들이 한도 끝도 없이 많은데, 역설적으로 그걸 만든 인간이 위대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가령, 배에 곡면이 있잖아요. 물론 휘는 건 기계의 힘으로 휘는 거지만, 그 곡면을 만들려면 노련한 기술자가 토치로 쇠를 달구고,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곡면을 만드는 거예요. 설계도를 놔두고 기계를 만지는데 정말 솜씨 좋은 장인 기술자의 감각으로 휘는 정도를 두는 거죠. 또, 배의 스케일을 알 수 있는 사진이 있는데, 예전에 어떤 중국 배가 좌초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좌초된 배에 가까이 다가간 사진이 있거든요. 자세히 보면, 정말 이 쇳덩어리를 어떻게 이리 크게 만들었는지 놀라워요. 그래서 조선소는 정말 놀라웠어요. 사진을 보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수준이거든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기계를 비평의 중심으로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간단하죠. 내가 좋아하는 기계를 설명해보자. 요약하자면, 기계 덕후의 자기애 정도가 되겠네요.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어요. 덕후가 어떻게 비평가가 될 수 있냐? 그러니까, 애호가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예술에서는 애호가를 좋게 생각하지 않죠. 아마추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사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가장 큰 차이는, 전문적인 작가들은 머리와 감각이 아주 유연해요. 그런데 아마추어는 그런 유연성이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을 던졌을 때, 혹은 어려운 철학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할 텐데,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같은 상황이 펼쳐져요. 가령 어떤 길이 쫙 깔린 아스팔트 도로라면 그 길을 건너면서 생각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징검다리를 건널 때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저길 어떻게 건너갈까, 물속으로 갈까? 돌을 하나 가져다 놓을까? 우회해서 갈까? 이런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거죠. 친절하게 설명을 안 해주고, 사실 일부로 안 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못하는 거지만(웃음). 어쨌든, 전문적인 작가가 하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일부로 징검다리를 놓고, 자기를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 그런데 아마추어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그래서 애호가라는 것도 일종의 아마추어라는 건데, 저는 기계 애호가에 가까워요. 왜 애호가냐면, 헬리콥터가 있다고 쳤을 때 제가 이것에 대해 얼마나 알겠어요. 정말 복잡한데. 그래서 사실 딜레마 같은 것이기도 해요. 헬리콥터의 내부로 들어가면 유체역학도 있고, 구조 공학도 있을 텐데, 내가 이런 걸 모르면서 어떻게 기계비평을 하나 싶기도 하죠. 하지만 존재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까 말한 눈썰미가 그런 거죠. 기계를 딱 봤을 때, 저건 이상한 놈이다. 배가 됐든 비행기가 됐든, 저 이상한 놈의 존재 의미를 밝혀보자 싶은 거고. 그런 의미에서 애호가가 되어도 비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문가와는 다른 시선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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