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옴니버스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2024.08.22.~ 2024.11.17.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구기정, 권병준, 권진규, 권하윤, 김실비, 김아영, 김을, 김주현, 람한, 박생광, 박현기, 배영환, 배윤환, 손동현, 신경희, 신승백김용훈, 심래정, 양혜규, 오민, 우순옥, 우한나, 이강소, 이건용, 이목하, 이불, 이수경, 이순종, 이슬기, 이영주, 전혜주, 천경우, 최병소, 한운성, 한지형, 홍승혜, 홍영인, 황선정, 흑표범
SeMA 옴니버스 전시는 2024년 기관 의제 ‘연결’을 장르적, 매체적, 시간적, 사회적 측면에서 고찰하는 대규모 소장품 주제 기획전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독립된 단편들을 엮어내는 이야기 형식인 옴니버스를 차용하여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서소문본관),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북서울미술관), 《제9행성》(남서울미술관), 《아카이브 환상》(미술아카이브)까지 4개 관에서 4개의 전시가 서로 다르지만, 긴밀하게 이어집니다.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동시대성과 여성작가라는 SeMA 소장품의 특징적 키워드를 찾아내면서 한국 현대미술이 주는 역동성과 다양성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는 SeMA 소장품을 매체 사이의 연결과 결합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고자 합니다. 포스트-미디엄/포스트-미디어 시대 매체를 매개로 예술가와 작품의 필연적 구조를 탐색하고,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가상과 현실, AI와 신체 등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조응하는 매체가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 매체/미디어의 다층적 구조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매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운데라는 의미의 메디움(medium), 사이에 있다는 뜻의 메디우스(medius)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매체는 매개, 매질, 영매, 연결로서 작품과 작가, 작품과 관람자, 관람자와 미술관을 이어내는 복합적인 연결의 층들을 구성합니다. 올드 앤 뉴[Old & New], 옐로우 블록[Yellow Block], 레이어드 미디엄[Layered Medium], 오픈 엔드[Open End]와 같은 전시의 키워드들을 클릭하듯 따라가면 지금/여기의 매체적 상황은 단수이자 복수인 중층적 구조로 존재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과 호르헤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의 제목처럼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의 막바지, 세계의 끝에서 예술가들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예술을 통해 묻고 있습니다. 매체를 선택하고 갱신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다양한 진폭을 넘나드는 고민 끝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듯이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연결을 꿈꾸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히 이어진 빈틈없는 연결이 아닌 이미 부분적이고 부서진 연결입니다. 예술은 바로 그 불완전하고 불충분함을 다시금 바라보라고, 그 잔해의 폐허 속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어떤 생명, 성찰, 저항, 희망, 상상 그 어떤 잠재적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 전시 흐름: 섹션 안내
Part 1. 매체로 읽는 SeMA 소장품
미술관 소장품을 후대에 보존되어야 할 고정된 예술작품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항해하는 유연함에 기반한 오브제로 확장하여 바라봅니다. 소장품은 이미 물리적인 작품, 수장고, 관리 카드와 같은 고정되고 물리적인 실체뿐만 아니라 소장품 검색엔진,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유동적이고 비물질적인 데이터로 구축되고 있는 양가적 특징을 가집니다. 다변화하는 현대미술의 변모에 따라 미술관의 소장품도 근대적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이나 활용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디지털 미디어와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블록체인과 같은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새롭게 설정되는 가능성으로 열려있습니다. 소장품을 작품과 작가, 작품과 관람객, 관람객과 미술관이 만나는 접점이자 그것의 작동을 매개하는 연결의 매체로서 제안합니다.
Part 2. 올드 앤 뉴 (Old & New)
매체를 단순한 캔버스나 물감 등과 같은 물적 토대를 넘어 기술적 지지체와 관습의 결합으로 이해하면서 SeMA 소장품을 매체의 구분(회화, 한국화, 조각, 설치, 사진, 판화&드로잉, 디자인) 속에서 살펴봅니다. 매체적 구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분이 얼마나 연결되고 서로를 참조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회화는 드로잉을, 조각은 설치를, 사진은 영상을 보완하고 확장합니다. 그것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가상성과 수공성이 다채로운 층으로 공존하는 매체의 동시대성을 반영합니다. 작가가 어떤 매체를 선택한다는 것은 작품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과의 필연성, 매체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시도,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따른 반응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포스트-매체 시대 매체를 통해 미술 내부나 사회, 기술의 변화를 투영해 내는 창작의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이 시대의 매체적 현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Part 3. 옐로우 블록(Yellow Block)
절대적이고 획일적인 시공간의 개념을 넘어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을 이야기했던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미술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공명하고 기록한다는 소장품의 선형적 개념을 넘어섭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시간대의 사건들이 다양한 층위로 공존한다는 블록 시간(Block Time) 이론에 기대어 과거·현재·미래의 사건을 지금/여기로 소환합니다. 특히 신진작가들의 매체의 다양한 활용을 보여주는 섹션으로 매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보여주면서 전시장 내 토크,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인터-미디어 박스로 기능합니다.
Part 4. 레이어드 미디엄(Layered Medium)
합성, 하이브리드, 블렌딩, 리믹스 등 레이어드된 매체적 현실을 조명합니다. 차이와 복수성을 다원화하는 역동적인 리좀적 체계가 어떻게 소장품의 매체 속에 숨어있는지 탐색합니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둘러싼 사회와 역사, 정치와 재난의 파편들을 감각과 언어, 그리고 미적 질서로 직조해냅니다.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소장품에 새로운 참여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시간의 퇴적층에서 새로운 사건으로 발견됩니다. 소장품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담은 '현재'가 됩니다.
Part 5. 오픈 엔드(Open End)
새로운 매체와의 연결고리를 통해 열린 실천 속으로 참여합니다. AI시대 프롬프트를 만드는 능력처럼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시각, 인간과 사물, 동물과 비인간과의 네트워킹 속에서 잠재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발견해낼 수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이를 위해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을 경험하는 시간을 제안합니다. 100년 전 소설가 구보가 경성 거리를 거닐면서 쏟아지는 신문물과 사회적 검열의 시대적 무게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듯이 오늘 우리는 그 열린 결말에 참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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