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1.- 7. 19
부산현대미술관
몸은 말보다 먼저 반응하고 언어보다 오래 기억합니다. 언어는 때로 사건을 매끄럽게 요약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미세한 떨림은 가공할 수 없는 정직한 신호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은 신호가 다시금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는 순간 몸은 단순한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증언의 매개가 됩니다. 이번 전시는 숨길 수 없는 몸의 반응들이 다시금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는 지점에 주목하며 이를 몸의 증언이라 명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삶의 순간을 정의하고 결론을 내리는 동안에도 몸에는 기록이 포착하기 어려운 긴장과 흔적이 잔류합니다. 이러한 미세한 감각은 삶의 과정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몸이 내뱉는 가장 정직한 발화이기도 합니다. 증언은 단순히 과거를 되풀이하는 행위라기보다 기록이 놓친 감각을 빌려 지나간 시간을 현재의 체감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사실이 과거를 고정된 장면으로 박제한다면 증언은 몸을 매개로 그날의 실재를 오늘로 되돌려 놓습니다.
《몸의 증언》은 부산현대미술관 수장고 내부에 머물던 세 개의 몸을 선택하여 현재의 지평 위로 소환합니다. 오랜 기간 보관되어 온 소장품을 다시 꺼내어 배열하는 행위는 과거를 전시하는 차원을 넘어 그 안에 축적된 생명력을 오늘날의 질문으로 다시 불러내는 실천입니다. 수장고의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이 세 개의 몸은 이제 전시장 조명 아래에서 감상자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합니다. 그 전언 속에는 몸을 매개로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실존적 근거를 마주하며 사유의 경로를 개척할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출품작;
김순기, 〈바카레스 호수〉, 1985,
프로젝터 1대에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20초, ed. 3/7.
김순기, 〈준비된 피아노〉, 1985,
프로젝터 1대에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56초, ed. 3/7.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나란한 몸들: 세 가지 양태
《몸의 증언》은 크리스 버든과 김순기 그리고 아나 멘디에타의 작품을 병치한다.
병치는 종합이 아니며 서로 다른 요소가 차이를 유지하며 나란히 놓이는 배열이다. 종합이 이질적 요소를 하나의 상위 개념으로 통합하는 작업이라면 병치는 개별 특성이 보존되는 배치에 가깝다. 이 세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하지 않는다. 이들 작업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으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작가의 작업에서 얻은 감각은 다음 작가의 작업 앞에서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감상자는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동하며 이전 감각을 수정하고 새로운 지각을 형성하는 순환에 놓인다. 전시는 이 순환을 상처와 호흡 그리고 흔적이라는 세 구성으로 병치한다. 처음 구성인 상처는 크리스 버든의 〈발사〉(1971)와 〈침대 조각〉(1972)을 포함한다. 감상자는 전시 입구에서 곧바로 총격과 정지라는 극단 장면과 마주하며 관람의 안정된 출발을 허용하지 않는다. 육체의 피동적 훼손과 의지적 침묵이 교차하는 이 공간은 목격의 책무를 환기하며 타자의 고통을 감각의 전면으로 소환한다. 〈발사〉가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의 흔적을 남긴다면 〈침대 조각〉은 시간의 무게를 육체에 새겨 존재의 한계를 드러낸다. 두 번째 구성인 호흡은 김순기의 〈바카레스 호수〉(1985)와 〈준비된 피아노〉(1985)로 이루어진다. 상처의 긴장을 통과한 감상자는 느린 리듬과 자연 시간 앞에 놓이며 앞선 구성이 남긴 경직이 몸 어디에 어떠한 형태로 남아 존재함을 감지한다. 앞선 인위적 타격을 넘어 본연의 율동으로 회귀하는 호흡은 파열된 지각을 정제하며 내면의 파동을 응시하도록 유도한다. 진동하는 선율과 고요한 물결의 흐름은 외부 압력에 저항하는 신체의 유연한 기제로 작용하며 감각의 이완을 이끌어 낸다. 세 번째인 흔적은 아나 멘디에타의 〈무제: 실루에타 연작〉(1978-1979) 두 점을 배치한다. 감상자는 화면에서 신체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신체가 떠난 뒤 남겨진 자국과 그 자국이 자연에 의해 소거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부재가 남긴 공백은 다시 존재의 흔적을 투사하며 소멸과 생성이 교차하는 대지 위로 존재를 확장한다. 육체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대지의 박동은 유한한 생명이 영원한 자연의 순환으로 편입되는 숭고한 이행을 목격하게 한다. 몸을 다루는 이 전시는 결국 감상자 몸을 통해 완성된다. 크리스 버든의 상처 앞에서 경직된 자세와 김순기 호흡 앞에서 느려진 맥박 그리고 아나 멘디에타 부재 앞에서 긴장한 시선은 전시장을 나선 이후에도 즉각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몸은 경험을 기억하며 그 기억은 물음의 형태로 지속된다. 내 몸은 어떠한 상태인가. 내 감상은 어떠한 책임을 수반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경험을 어떠한 이후로 이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타자의 과거를 대면함을 넘어 우리 역시 미래의 타자에게 도달할 과거 몸이 될 운명을 공유한다. 이 순환은 확정된 결론에 도달하기를 거부하며 현재의 경계 너머 미래까지 포섭하는 부단한 증언의 도정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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