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 건네는 위로와 희망…영상, 사운드, 설치 등 12점 전시
"예술은 삶에 대해 질문하는 일"
인천에서 태어난 작가 우순옥(58)은 고3 때 인생의 큰 충격을 겪는다.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돌연 수면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가정주부였던 어머니와 4남매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슬픔에 허우적거린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그는 부잣집 미대생들의 틈바구니에서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읽으며 우울한 대학 시절을 견뎠다. 4학년 때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존재와 부재의 질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원까지 나온 그는 비행기표만 간신히 끊을 정도의 여비만 가지고 독일 뒤셀도르프 유학길에 오른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곳에서 평생의 은인인 귄터 우커 교수를 만나 조교를 하면서 7년을 유학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 질문과 함께 작업의 실마리도 찾았다.
지금은 모교 교수가 돼 한국에서 개념미술 작업을 하는 우순옥이 5년 만에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무위예찬'전을 연다. 제목이 다소 거창하다. 그에게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을 이룬다'는 역설적 의미다. "결과중심주의가 일상을 압도하는 시대에 개인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삶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그는 전시 곳곳에 느림과 무위의 풍경을 펼쳐 놓는다. 관람객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작품도 영상 '무위의
그는 전시 곳곳에 느림과 무위의 풍경을 펼쳐 놓는다. 관람객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작품도 영상 '무위의
풍경'(2014)이다. 독일 쾰른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작은 예배당 '브루더 클라우스 채플'을 찾아가는 과정을 찍은 영상이다.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설계한 단순한 직육면체 교회를 찾아가면서 촬영한 10분짜리 영상을 늘려 10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영상은 마치 정지돼 있는 사진처럼 느껴진다.
"영상을 가능한 한 길게 늘린 것은 우리가 목표를 향해서 거기까지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 마음도 다시 만나고, 풀도 다시 보고 하늘도 다시 보고 그 섬세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2000년부터 비움과 무심함을 강조하는 '마인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도 마음의 평정심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고요함이 너무 좋아요."
이번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의 통 유리창에는 'form is emptiness is form'이라는 글자가 황금색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직후 파리 19구 뷔트 쇼몽 공원을 방문한 작가가 땅바닥에 쓴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구절을 줄인 것이다.
물질과 형상의 덧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허무나 부정을 뛰어넘는다.
물질과 형상의 덧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허무나 부정을 뛰어넘는다.
첫 독일행 유학 길에 돌돌 말아 가지고 갔던 그림 '침묵의 바다'는 30여 년 만에 '시간의 그림'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갤러리에 걸려 있다. "우리 모두는 피로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 행복일까요. 제 작품을 보면서 한 번쯤 돌아보고 질문하고 또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예술의 역할은 질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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