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a Marsh: 최근에 작업한 Atlantic Pacific Co.(2011)과 World of job(2008)을 보면 당신의 계획된 노동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작가로써 노동과 작업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관객들이 이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구민자: 미술품에서 ‘labor’는 보통 그림을 그리는 데, 혹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들인 노동력 등을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의 작업에서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들이는 노력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과 미술에서의 작업이 어떻게 일치될 수 있을까, 노동-일, 이것이 어떻게 미술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미술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하 그리고 정말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흥미로운 지점인 듯 하다. 왜냐하면 때로 미술이 생산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미술에서의 노동과 그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사회에서 어떤 생산적인 노동을 해야한다는 가치관이 나에게도 무의식중에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이 직접적으로 ‘노동’을 다루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나는 노동을 작업으로서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은 그 관점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업 안에서 보여주는 조금 이상한 ‘일’에 대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JM: 2007년 당신이 수집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가지고 그것들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적 작업이 내가 당신의 작업을 처음 접한 계기였다. 그 작업들은 소비지상주의를 지속가능성 또는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르게 조명하는 비평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love a la Plato 라는 세미나도 개최하였다. 왜 가시적인 유형의 작업보다 일시적으로 표현되는 작업을 만드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구민자: 비교적 물질적인 것이 드러나는 작업이 아니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에 의미의 장치들을 끼워넣거나 다른 요소로 제한을 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의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기록함으로서 그 지나가는 순간들을 잡아채어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남겨두기 위해 기록하는 과정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순간적인 작업이라고만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결국 내가 작업에서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작업을 하게끔 하는가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간단하게는 내가 보는 세상의 일들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틈에 개입하고 싶은데,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들을 통해서 잠시 개입했다가 빠져나온다. 그렇기때문에 내게 있어 작업은 계속 그 과정이 중요하고 순간적인 것이다. 마치 여행을 다녀온 후 그 여행의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사진과 기억이 남는 것처럼 작업도 그런 것 같다.
JM: 당신의 작업들이 본래 지닌 일시적인 특징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어떠한 참여 관객들이 작품들을 완성시키는가? 참여자들이 일반 관객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민자: 작업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과 작업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최근의 작업인 ‘Atlantic-Pacific co.’의 경우는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관객이 작업의 참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업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깊숙히 관여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그 사람들로 인해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가능하거나 완성될 수 있다. 이를테면 ‘symposion’과 같은 작업에서는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들 혹은 친구의 친구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대화로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직업의 세계(World of Job)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끝까지 모른 채로 끝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반대로 ‘Happily ever after’와 같은 맞선 프로젝트에서는 참여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가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미술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하는 나 자신이 작업에서의 주된 참여자가 되기 때문에 작업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전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은 스스로가 변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JM: 당신의 관점으로 오늘날의 미술 경제를 어떻게 평가 하는가? 당신의 작업이 이러한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는가?
구민자: 실제적으로 작업을 판매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의 작업을 아트 마켓이라거나 미술의 경제 시스템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미술품에 있어서의 경제적 상황보다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경제적 상황들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현실에서의 경제 시스템에 부합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스템을 벗어나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경제 체계를 만들고 공동의 삶을 일구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순응해야 하는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 또 어쩔 수 없이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 시스템은 작가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라서 그것에 점점 의존하게 되어간다. 최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지원금의 체계에서 작가가 타협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생기는데 그 과정은 많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곳도 그저 마음껏 쓰라고 지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JM: 예전 우리의 만남에서 타이페이에 있는 공사현장 근처에서 콘크리트 벽돌들을 이용하는 전시를 계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대부분의 작업들이 작품으로 판매 할 수 없는 비물질인 특성 또는 제작과정에서 잔여로 남는 물건 없이 단기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작품을 또는 제작과정을 기록하는가? 비물질적인 작품의 생산 유지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힘들지 않는가?
구민자: 그 때 생각했던 작업은 전시 장소였던 Taipei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장소, 그리고 노동과 노동의 가치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 공간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 기념비처럼 전시하는 것이 계획 중 하나였는데 결국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작업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 계획이 실현되어 ‘물질’이 보여지는 작업이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와 그 과정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많은 경우 작업의 결과물은 작업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는 것 같은데, 대개는 사진이나 영상이지만 작업에 따라 다른 요소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글이나 드로잉을 함께 사용하기도 하고 작업 내용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다른 이미지나 도구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비물질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고민하게 하는 것은 단지 아트마켓뿐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작업을 어떻게 사람들이 이해하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정, 결과물에 대한 고민이 오히려 무언가를 자꾸 남기고 만들게끔 하는 것 같다.
JM: 최근 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ISCP) 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뉴욕에서의 작업활동은 어떠하였고, 그 곳의 환경이 현재 작업방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뉴욕과 한국의 미술계의 다른 점들 중 놀라웠던 것은 무엇인가?
구민자: 잠시동안 다른 도시에 가서 지내고 작업을 하는 것은 여행자와 작가의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도시라든가 특히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많이 알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놀랐던 점이라면 매우 실험적인 작업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굉장히 뚜렷히 가격을 명시하며 상업갤러리에서 판매된다는 점이다. 팔리는 미술작품에 대해서라면 한국 미술계에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입구 데스크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가격을 명시한 파일이 놓여져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레지던시라는 것을 이용해 외국에 체류하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작업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늘 적극적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 태도로 있기 때문인지 많은 자극이 되고 언제나 좋은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거시적인 시점을 보통 스스로 갖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작업 자체의 큰 방향에서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긴 기간 동안 그 곳에서 작업을 하고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생겼다. 그 곳과 그 곳의 미술계에 대해 조금 알기 시작할 무렵 다시 돌아오게 되어 그런 것 같아서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Questions Translated from English to Korean by Kim KwangSoon
http://sitecited.com/2012/구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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