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리얼 Postmodern Real 展

2017. 10. 11 ▶︎ 11. 28
서울대학교미술관 MoA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www.snumoa.org
참여작가: 고승욱_공성훈_김범_김원화_김차섭_김호득_ 김홍주_백승우_안상철_윤동천_이용덕_이종상_임동승_전준호_정연두_정흥섭_조습_한운성_황재형
1부/ 모던 리얼에서 포스트모던 리얼로 
20세기 전반 한국 미술에서 리얼리즘 미술이라 하면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이래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로 이어진 인물화 · 정물화 중심의 이른바 아카데믹 사실주의 회화, 또는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같은 '형식으로서의 재현'을 주된 흐름으로 들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시대의 상황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1960년대 본격화되었는데 전시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포착한 이종상의 「장비」을 전시하였다. 이어 1970년대에는 이론적 · 개념적 접근을 통한 미술 창작이 두드러졌는데, 그 한 축이 물질을 그대로 작품에 끌어들여 '리얼'함을 획득하고자한 시도였다. 전시에서는 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물질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도로서 김차섭, 김홍주, 한운성, 안상철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물리적인 실재를 통하여 재현을 넘어 더 깊은 차원의 리얼한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한 성공적인 시도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2부/ 포스트모던 리얼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 포스트모던의 현상들은 이전 시기에 추구했던 ''리얼'함'에 대한 개념 및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진, 영상매체, 가상현실 등을 둘러싼 기술 발전은 인간의 인지 및 감각 양태와 범주를 일변시켰다. 가령, 가상에 대하여 곧 사라지고 마는 열등한 존재이자 현실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거짓된 무엇인가로 여겼던 기존의 인식은 동일한 이미지를 언제나 재생할 수 있게 만든 영상 기술, 그리고 대상에 대한 왜곡은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수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개인이 세계를 해석할 때 필요한 어느 매개체에도 굴절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수직적 위계관계에 근거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과 극복으로 통한다. 전시의 2부를 시작하는 일련의 작품들-윤동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김범 「볼거리」, 전준호 「형제의 상」, 고승욱 「엘리제를 위하여」, 조습 「습이를 살려내라」-은 각각 1990년대 이전 한국 사회가 경험한 특정한 정치사회적 양상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이를 한국 사회의 독특한 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는 좌/우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드러내는 탁월한 시도들이다.
김범_볼거리_단태널 영상_00:20:09_2010
김범, 고승욱, 전준호의 작품에서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인 특징이 디지털 영상이라는 기술과 결부되어 발현될 때 모던한 '리얼'함과 포스트모던한 '리얼'함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영상매체 중에서도 디지털 영상매체의 활용은 포스트모던 미술의 주요한 특징이다. 한 때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위력이 강력해짐과 동시에 작품의 원천으로서 사물이 가졌던 역할의 폭은 줄어들게 될 것인가'라는 우려가 미술계에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2부에 전시된 디지털 기술과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은 이러한 우려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정흥섭은 디지털 이미지 자체를 하나의 대상, 새로운 사물로 대하며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의 특징과 이 작품이 준거한 대상을 모두 보여준다. 이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회화가 거쳐 온 노정이기도 한데, 생성 과정상 물질적 기반이 없는 디지털 이미지와 기존의 아날로그 이미지 혹은 사물을 한정된 영토를 두고 싸우는 대립자가 아니라 서로 닮아가며 외부 세계라는 영토를 확장해가는 개체들로 본다. 김원화의 「SLV-DMC Launch」 역시 가상이 현실의 물적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일반적인 우려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라보게끔 사고의 전환을 이끄는 작품이다. 서울의 랜드마크 롯데타워를 대상으로 삼아 이 초고층 빌딩이 로켓 발사 지대로 변신하는 상황을 충실한 시각적 환영으로 보여주고 이에 대해 사람들이 투영하는 여러 생각들을 데이터로 수집한 이 작품에는 가상이 호기심이나 의지와 같은 인간의 내면을 담아내면서 현실보다 앞서 존재하며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가능성이 구체화되어 있다. 열망, 또는 환상과 실재가 서로를 만들어나가는 관계를 예술 작품으로 구현한 성공적인 예로는 정연두의 「로케이션」 연작을 빼놓을 수 없다. 연극 무대와 영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세트와 그 세트의 배경이 되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담아낸 사진 작품, 로케이션은 사진과 영상의 경계에 대한 미술의 형식적인 탐구뿐만 아니라 환상과 실재가 거짓과 참으로 구분되지 않는 인간 삶의 측면 또한 전달한다. 한편, 백승우의 사진 작업은 사진 이미지가 '객관적'이고 '특정적'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를 직관적으로 느끼게끔 한다. 프로파간다 사진을 디지털화 한 후 개별 현상을 한 「유토피아」의 경우나 파노라마의 전통을 끌어들여 이미지의 환영성을 극대화한 「RS」연작은 사진 또한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는 회화, 사진,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매체들의 진화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요컨대, 포스트모던한 '리얼'함이 그 이전의 리얼리즘과 차별화되는 것은 '리얼'함의 기준에 시각적 닮음뿐만 아니라 주관적 변형 가능성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는 점이다. 많은 작품들이 전자기술적이든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측면이든지 간에 종래에 '리얼'하다고 여겨져 온 영역과 가상으로 여겨져 온 영역을 동시에 활용한다. 또한 작품 속 이미지는 시각성 뿐만 아니라 물질적 감각성과 촉각성, 그리고 공간성에 대한 총체적인 지/감각과 연결된다. 이용덕의 역상 조각은 인간의 지/감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상자의 상대성과 개인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한 전형을 대표한다.
컴퓨팅 합성 공간에서 이미지 자체를 대상으로 삼듯 캔버스 위 회화도 재현이 가상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회화에서 재현은 언제나 가상이었다. 단, 인간의 지각방식과 매우 비슷하게 발전해오면서 종래의 회화가 그 가상적 방법들을 숨겨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포스트모던 회화는 이미지가 대상을 온전하게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재현 이미지 자체의 본질을 탐구한다. 임동승의 화면에서 주변 현실, 대중 매체에서 본 이미지, 명작 이미지들은 각각 동등한 오리지널리티를 부여받았는데,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강조되었던 직접 체험한 이미지와 간접 체험 이미지 간의 수직적 서열이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재현에 있어서 이미지의 주관적 변형 가능성을 철저히 자각해야만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전시를 마무리 짓는 한운성과 공성훈의 풍경 회화 역시 회화가 가진 환영적 특징을 매우 자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사진 이미지와 컴퓨터 편집의 특징까지도 회화 안으로 끌어들여 비현실적 풍경을 창출하는 공성훈의 화면과 그야말로 '껍질'에 해당하는 풍경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운성의 화면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리얼리스트 회화의 개방성을 잘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9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한국 미술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이 때의 논의가 일상생활과 제도에서는 모더니티가 수행되는 가운데 진행된 이론적 논의였다면 이번 전시는 '리얼'함을 축으로 삼고 미술 작품에서 출발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전시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2000년을 전후하여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가상이 현실을 혼란시키지 않을까'라는 모호한 불안을 넘어서고 있음을, 또 '리얼'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전시를 통해 조명하고자 한 포스트모던 한국 현대미술의 일면이다. 
글:  오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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