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유령과 더불어

전시 <정서영: Knocking Air>(Barakat Contemporary, Seoul. 2020.05.12-06.05)의 도록에 수록된 글

글 김장언 큐레이터 평론가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내린다. – 마르크스 & 엥겔스, 1848
사유는 조각이다.- 요셉 보이스, 1969

정서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작가에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은 사물이 되었지만, 그것은 조각으로 우리 앞에 있었다. 작가는 공간에 반응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조각을 위한 반응이지, 장소 특정적이거나 공간에 대한 지각 자체를 변형시키는 행위는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총체적인 차원으로 자신의 사물들, 조각을 확장시키지 않았다. 그의 사물들은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과 언어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그의 유머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일상에서 그저 그런 대상들로 간과되었던 사물들이 작가의 예민함으로 재발견되고, 자신만의 엄격한 조형원리로써 재구성되는 심미적 결과물을 지지했던 것 같다. 25년전의 일이다.

나는 정서영의 유머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의 유머에 다가갈 수 있었던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1999년의 2인전, 《스며들다》였으며, 다른 하나는 2008년에 발표한, <괴물의 지도, 15분>에서 였다. 《스며들다》는 최정화와 함께한 전시였다. 나는 이 전시에서 그가 모든 견고한 것들에 대해서 불편해하면서, 그것에 균열을 내기 위한 단단한 농담을 던지는 작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농담이 아니라, 불편함이다. “-어, 당신이 폴리쉬한 때를 미신다면, 저는 전투적 이케바나나 할까 봐요.” 권위를 쌈 싸 먹는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차원에서 정서영은 양상은 다르지만 최정화와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공유되지만,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쿨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전시에서 정서영의 조각과 최정화의 오브제는 서로에 무관심했다.[1]

<괴물의 지도, 15분>은 그의 조각적 견고함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 서사극(epic theater)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 작업은 2008년 6월 24일 1시 23분에서 38분까지 진행된 부조리한 스코어인 파편적 사건의 문장들과 그 사건을 풀어갈 수 있는 지도인 듯한 24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되었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완결된 구조로서의 시적 드라마에 반하는, 사건들의 유물론적 충돌인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작가의 지시문은 어딘가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까지 그가 제시했던 전시의 제목들이나 작품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관객과 조각, 세계와 미술에 대한 소격 효과(Verfremdungseffekt)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서사극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괴물의 지도, 15분>은 구체적으로 나에게 연극적 가능성을 일깨워주었다. 더욱이 이 극본과 그림 카드는 그의 조각이 조각이라는 행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끊임없는 거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 모순적이지만 - 조각적인 작가의 의지로도 읽혔다. 그 의지가 <괴물의 지도, 15분>에서 심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근대성이라는 괴물과 연동되어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의 연극적인 것이 출현한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작가와 나는 2009년 <Mr.Kim과 Mr.Lee의 모험>을 무대에 올렸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사물과 연극의 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조각은 어디에 위치하는 것일까? 조각/사물과 연극 사이에는 공간적 거리가 있으며, 1999년과 2009년이라는 10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다. 이 거리와 시간은 작가에게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은 그 거리와 시간의 차이를 추적해보고자 하는 의도로 쓰였다.


유령 / 조각

정서영은 1998년 <Ghost will be better>라는 드로잉을 그린 적이 있다. 두 개의 트레슬로 지지된 판재 위에 흘러내린 밀랍 조각상 같은 것을 정사각형의 종이에 그려놓고, 작가는 그 아래 알파벳 대문자로 ‘GHOST WILL BE BETTER’라고 적었다. 흥미로운 것은 유령을 형상화한 듯한 조각상이라기보다 유사 궁서체로 써 내려간 대문자 알파벳이다. 궁서체라는 것이 조선시대 궁궐에서 일했던 나인들이 쓰던 글씨체이고, 그들이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왕궁이라는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평생을 살아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존재는 어쩌면 유령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글씨는 자신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궁서체는 유령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드로잉을 여러 번 실현했는데, 1998년 버전에는 드로잉과 유사한 글씨체를 사용했지만, 2005년에는 유사 고딕체(산세리프체)를 사용했다. 물론 이 두 개의 설치 작업에는 몇몇 또 다른 점들이 있다. 바닥재로 사용된 리놀륨의 문양이 달라졌으며, 유령인듯한 작은 조각이 흙색 유토에서 백색 유토로 바뀌었다. 그리고 첫 번째 버전에서는 텍스트가 독립된 테이블 위에 깔린 한지 문양의 리놀륨에 적혀 있었는데, 두 번째 버전에서는 텍스트가 원목 마루 문양의 리놀륨 위에 적혀 있고, 조각은 그 위에 설치되어 조각의 테이블과 텍스트의 테이블이 합치되었다. 이 변화에 대해서 작가는 1998년과 2005년이라는 다른 시공간으로 인해서 사용된 제품이 단종되었고, 작업 조건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써 서체와 재료를 바꿨다고 했다. 그러나 글씨체가 유사 궁서체에서 유사 고딕체로 변경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궁서체가 인간의 흔적이라면 고딕체는 기계의 각인이다. 문장이 궁서체에서 고딕체로 변이되었다는 것은 문장이 유령의 흔적으로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출현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상황이 의미라는 차원으로 물질화되었다. 2005년 이후, 이 작업은 드로잉의 글씨체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데, 작가는 발화의 시각적 표상인 기계적 타이포그래피로 유령적 상황을 해결해 버렸다. 의미가 선언된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는 유령적이지 않다. 유령은 선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령은 자신이 유령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것은 ‘유령’일 것이다. 유령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유령이 나아진다면, 그것은 유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유령은 없다. 좀 더 좋아진다는 것은 유령의 목표가 아니라 인간의 목적이다. ‘유령인 나는 나아질 거야!’ 이것은 불가능한 언술이다. 유령은 무엇인가를 요구할 뿐이다. 유령의 욕망은 결코 해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목적 없이 순환되며 그 대상도 없다. 그것은 충동(drive)이다. 유령의 충동은 유령이라는 대상 자체의 만족일 뿐이며, 그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고, 텅 비어 있다. 유령의 욕망이 해결된다고 하면 유령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더 이상 유령도 아니다. 그래서 유령은 목적 없이 늘 배고프며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충동의 심연은 비어 있다. ‘Ghost will be better’는 욕망과 충동의 틈을 위장한다. 언뜻 그럴듯한 진술은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징후들만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어긋남을 출현시킨다는 차원에서 ‘Ghost will be better’는 실재의 진술이며 향락의 현재이다.

조각은 이미 유령적이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석재에는 그 내부에 상(statue)이 있으며, 조각가의 임무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리석에 갇힌 천사와 사랑스런 유령(apparition)을 우리의 눈에 드러나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조각의 행위를 종교의 행위로 바꾸어 놓는 이 언술은 의식(consciousness)과 대상(object)의 합일을 통해 절대 정신에 다다르기 위한 헤겔의 현상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지적했듯이 독일어 정신(Geist)은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영혼과 유령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의식과 대상은 언제나 어긋나며, 이러한 차원에서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종교적 신념과 예술적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환영(phantasm)에 불과하다. 나타남(phainesthai/appearance)의 측면에서 데리다는 현상학적 일반 원리를 두 가지로 반박했다. 하나는 세계의 현상적 상태 자체가 유령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상학적 자아가 유령이라는 것이다.[2]

작가는 지속적으로 유령적인 것을 소환한다. 1998년 작 <유령, 파도, 불>은 고정된 형상이 없는 3가지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란색 리놀륨은 목재 바닥 위에 카펫처럼 한쪽 모서리를 벽에 접하고 중앙으로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유토로 만들어진 파도와 불이 있다. 다른 벽면에는 3개의 드로잉이 걸려 있다. 하나는 뾰족하게 스스로 올라선 천 조각이며,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를 가린 듯한 장막이고, 다른 하나는 망토를 뒤집어쓴 듯한 유령의 형상이다. 그리고 인접한 벽면에 다른 드로잉 한 점이 더 걸려 있다. 커튼은 반쯤 접혀 있다. 그리고 같은 벽면에 타원형 선반이 있고, 도자기로 만들어진 망토를 뒤집어쓴 듯한 유령 인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쪽 모서리에 견고한 나무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창문이 설치되어 있고, 유리창에는 주름이 에칭되어 있다.

나는 이 3가지의 조합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유령, 파도, 불은 형상이 규정되지 않는 것이며 에너지의 흐름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비정형적이다. 한편, 파도와 불은 유령의 현현으로서 신화의 대상이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 대상을 물질화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의 장소를 만든다.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질과 장소는 설치라는 이름의 환영을 생산해 낸다. 데리다가 명확하게 지적했듯이 환영은 신체로의 복귀를 통해서 가능하지만, 그 복귀는 동일한 대상으로의 환원이 아니라 환영의 환영으로서 물질화되는 것이다.[3] 따라서 <유령, 파도, 불>은 조각의 유령이 된다.

유령이라고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더라도 그가 만들어낸 대부분의 사물은 환영의 환영으로서 물질화된다는 점에서 유령적이다. 그러나 <얼룩>(2007)은 예외적이다. 작가는 물질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현되는 조각/사물의 세계와 다르게 나무 바닥에 커피를 쏟아붓고, 얼룩을 만들었다. 얼룩은 라캉의 응시 개념에 따르면 응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지만, 한편 다른 응시를 암시하는 명확한 흔적이자 징후이다. 이제 작가는 유령/조각의 응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의 몫이다.

원형으로서 일(the work)

정서영의 조각 행위를 한국 근현대조각사의 흐름 속에 놓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개별 작업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조각사의 맥락과 흐름 속에서 그의 작업에 대한 위상을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태만은 1990년대 한국 조각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작업을 조각의 전통이라는 중심에서 개념과 구조라는 두 좌표에 반형식(anti-form)이라는 구심력을 작동시키는 작가로 배치한다.[4] 한편, 안소연은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와 설치에 대한 열망 속에서 조각적 특성이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작동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설명한다.[5] 최태만과 안소연의 평가에서 공유되는 지점은 정서영이 사물을 조각적으로 재인식한다는 것이다. 다만 최태만은 그것을 반형식이라고 칭하고, 안소연은 설치로 확장된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사물을 통한 형식에 대한 재 창안과 설치로의 확장은 이미 1970년대와 80년대 활동한 ST 그룹과 난지도, 타라, 메타복스, 로고스와 파토스 등의 맴버들에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서영의 작업은 과거의 역사적 연결 고리 속에서 1990년대적 성취를 획득한 작가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적 성취란 무엇일까? 현대미술사의 논자들은 1980년대 미술의 움직임들을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행위로 평가한다.[6] 포스트모더니즘을 성취해야 할 동시대 미적 카논의 하나로 인식하는 이러한 논지를 받아들인다면, 설치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형식의 궁극적 모델이 되며, 그것이 1990년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태도는 지나친 헤겔적 비약이다. 설치의 열망이 동시대성의 완결된 형식으로 의미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각 영역의 확장은 이미 한국에서도 1960-7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공간과 환경으로 확장되었으며, 그것은 건축적인 것과 비건축적인 것, 조각적인 것과 비조각적인 것으로 넘어섰다. 1990년대적 성취라는 것이 글로벌한 미감에 부합하는 세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1990년대적 성취가 대중문화, 정체성의 정치학, 후기 구조주의 논의 속에서 펼쳐지는 미학적 도전이라고 한다면, 정서영은 다소 어긋난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정치적 사건에 대해서 작업을 통해 직접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1990년대를 새로운 매체와 기술 발달에 대한 매체 실험의 시대라고 정의한다면, 그가 형식과 매체 실험에 집중하기보다, 언제나 만들고 깎고 붙인다는 전통적인 조각의 방법론으로 환원된다는 측면에서 1990년대적이지 않다.

이제, 원형으로서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는 1980년대 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작업 활동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드러냈던 시점은 독일에서 학업을 마쳤던 1994년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그 전시의 설치 작업 중 하나는 〈수십 개의 그림과 몇 개의 조각으로 만든 일(The Work made from several tens of drawings and some sculptures)〉이다. 한국어 제목은 다소 어색한 문법적 구조이지만, 영어 제목을 살펴보면, 이 제목은 ‘몇몇 드로잉과 조각으로 만들어진 일’이라고 다시 적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조각이라고 말하기보다 일(work)이라고 명명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작업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몇몇 드로잉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이 작업에는 몇몇 조각이 포함되어있다. 드로잉-조각-사물-설치-일의 순환 구조 속에서 그는 파편적 경험과 기억을 드로잉과 사물화된 조각들로 공간에 배치한다. 이것은 일이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며, 연출된 상황이기도 하다. 그는 설치라는 것이 하나의 장식적 인테리어에 불과한 어떤 것이라고 비웃으며 자신의 설치를 일이자 작업으로 명명한다.

설치된 모든 드로잉을 확인한 길은 없지만, 드로잉들은 사물의 상황과 상태에 대한 리서치라고 생각되며, 그 드로잉들을 근거로 그는 4점의 조각을 설치했다. 흔들리는 대중교통에서 안전을 위해 표시되는 ‘손잡이를 잡으세요’의 픽토그램을 조각으로 변형시킨듯한 봉을 부여잡고 있는 손들(<무제>, 1994), 기울어진 백색 도자기 화병에 기괴한 교차로를 그려 넣은 도자기인지 조각인지 모를 오브제(<꽃병에, 길(On the vase, the street), 1993). 사이즈가 다르지만 동일한 유닛의 검고 작은 통 두 개가 쌓여 올려진 조각(<고무줄 달린 조각(The Sculpture with rubber band)>, 1994). 이 조각 하단의 작은 통에는 고무줄 손잡이가 사방으로 달려 있다. 마지막은 목재 3단 선반과 스탠드 옷걸이가 기묘하게 서로를 지지하고, 옷걸이에는 헤링본 문양의 묵직한 천이 걸려 있는 유사 게양대 조각이 그것이다(<무제>, 1994).

이 사물들은 모두 움직임에 대해서 반응한다. 속도에 저항하기 위해서 안전봉을 잡고 있으며, 기울어진 꽃병에는 돌아 나가는 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중첩된 두 개의 통의 하단 부에는 손잡이 같은 고무줄이 있어 잡아당긴다면 중첩된 이 오브제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두 개의 선반은 위태롭게 서로를 지탱하지만, 깃발과 같은 천은 부동의 자세로 그 구조물 위를 점령한다. 운동과 정지의 긴장이 작품/조각과 일이라는 모순 속에 공존한다. 작가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에 대한 사유를 조각적으로 펼치고자 한다. 심상용은 이러한 정서영의 태도를 조각과 분열로 설명하는데, “작가에게 조각이란 분열됨으로써만 스스로일 수 있으며, 포기됨으로써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7] 정서영이 조각의 개념을 해체하고자 한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지적은 합당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해체라는 언어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해체를 통해서 그가 정의하는 조각의 개념과 그 개념을 통해서 미술사에서 점유하고자 하는 조각의 위치는 무엇일까?

요셉 보이스는 1969년 윌로비 샤프와의 인터뷰에서 조각에 대한 흥미로운 발언을 한다.[8] 그는 조각이 매우 복잡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무시되어 왔으며 조각은 인간에 대한 정의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조각의 기원으로서 사유(thought)를 언급한다. 그는 사상의 형성은 이미 조각이라고 말하면서 사유는 조각이라고 했다. 여기에 많은 함의가 있다. 이 언술은 인간의 모든 창조력을 조각적인 것으로 설정하면서 무형이든 유형이든 무엇인가를 부수고 새로 구축하는 모든 창조적 행위를 조각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스는 사회적 조각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정확히 그는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조각’이라는 대답으로 조각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이야기한다. 보이스에게 지금까지의 조각은 축소된 창조적 자본의 결과물인 것이다.

조각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정서영에게 있어서 그것은 ‘조각’이라고 지칭되는 조각을 소환하고, 그것을 사물과 대결시키며, 사물의 사물, 조각의 조각이라는 환영을 생산하는 것이다. 조각은 정서영의 입장에서 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엄연하게 작동되는 실체이다. 근대적 의미의 조각이 자의든 타의든 그 토대를 폐기하거나 확장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조각은 실체 없이 여기에 있다. 정서영은 이러한 유령적 대상으로서 조각을 소환한다. 유령을 조각으로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적 상태로서 조각을 지금 여기에 소환한다. 그는 그 유령을 살리기 위해서 혹은 유령을 승천시키기 위해서 그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소환은 유령적 상태라는 조각의 진실을 환영의 환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조각적 행위의 핵심은 유령의 소환이다.

정서영은 <전망대>(1999)의 제작과정을 한 인터뷰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9] 그는 엽서에서 발견된 전망대 이미지를 현실 공간에서 조각으로 재현하기 위한 물리적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지 구현의 물리적 과정이 아니다. 그는 대상과 작가의 물리적 거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지의 육화가 이미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그 육화된 이미지가 찾아야 하는 거리라는 것이다. 그 거리를 찾는 것이 그의 조각적 과정이라고 한다. 이 고백은 대상을 육화시키겠다는 신념의 고백이 아니라, 이미지라는 유령적 대상을 현현 시키기 위한 환영의 거리를 산출하고자 하는 의지처럼 읽힌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간과 유령의 거리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이다. 유령을 소환한다는 측면에서 정서영의 조각 행위를 하나의 애도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애도는 조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각과 자신, 유령과 자신의 가장 적합한 거리를 찾아내어 그 거리를 현실에 출현시키는 것이다. 그 거리를 통해서 유령적 상태의 조각은 현실에 봉인된다. 유령에 대해서 조각에 대해서 이것은 매우 잔인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것은 애도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정서영의 조각은 반형식적이지도 비조각적이지도 않다. 그는 조각이라는 유령을 여기에 불러들이고 유령과 자신의 거리를 산출함으로써 유령이라는 조각/사물의 시간의 틈을 출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조각사를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개념적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조각의 존재 조건을 유령의 거리에서 찾는다는 차원에서 전통적 조각 행위를 배반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조각은 늘 보는 자와의 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크기에서 조각은 실존적이기 않고, 언제나 초현실적이다.

조각은 그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인데, 그가 대면하는 현실의 조각은 지나치게 견고한 것이거나 혹은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우리를 지켜보는 대상이다. 전자의 조각은 그가 한국에서 경험한 조각계가 규정하는 조각의 실체이며, 후자는 이미 확장된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현대조각의 현재이다. 이 두 지점에서 그는 끊임없이 조각으로 다시 환원한다. 첫 번째 환원은 조각의 역사적 무거움을 해체하고 사물로 조각을 환원시키지만, 다시 그것을 조각의 문법으로 등장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환원은 조각이라는 유령과의 거리를 전시장에서 구현시키는 것이다. 그 거리를 통해서 유령/조각이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령/조각을 본다.

조각이라는 유령-육화된 사물-유령/조각과의 거리, 이 3가지 항이 정서영 조각의 존재론(ontology)을 유령론(hauntology)으로 이야기하는 근거가 될지도 모른다. 조각이라는 유령은 과거에서 도착하여 현재에 나타나지만 그 실체는 없다. 그에게 종료된 듯한 역사의 무거움만이 남겨져 있다. 작가는 그러한 조각의 과거를 사물을 통해서 물화시키지만,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물의 구현이 아니라 출현한 유령의 화신으로서 조각과 세계와의 거리이다. 그 거리는 전시장에서 관람객과 유령-조각-사물 사이의 거리로 환원된다. 이 거리에서 조각은 해체되며 다시 조합된다. 그 거리가 산출하는 것은 조각의 동시대성이 언제나 비동시적(non-contemporaneous)이라는 지점을 밝혀주는 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서영의 조각이 출현한다.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조각의 논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되돌아온 조각의 유령과 사물을 통해 육화된 물체의 거리를 경험하는 것이 정서영 조각에서 본질적으로 등장하는 유령학의 실체이다. 그 유령들은 존재와 부재, 출현과 사라짐의 사이에서 명징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실체(material embodiment)와 이탈된 실체(disembodiment) 사이에서 맴돌며, 순수한 가상의 공간에 거주하며, 그 거리가 만들어낸 가상적 공간은 유령/조각의 존재론적 토대로 점유된다.[10]

유령에서 괴물로

유령이 괴물이 되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순간인데, 작가가 직접적으로 물질(the materials)의 세계를 다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령의 거리, 즉 조각의 거리를 삭제한다. 그는 유령이라는 이름의 조각의 세계에서 이곳, 물질적(physical) 세계로 이동한다. 괴물과 유령은 둘 다 공포를 야기한다는 차원에서 유사하지만, 실재한다는 차원에서 다르다. 괴물은 명확히 물질적 존재다. 유령은 이미 죽었지만 온전히 죽지 않은 대상이다. 유령은 물질적 존재가 없지만, 괴물은 그렇지 않다. 괴물은 실존한다. 다만 괴물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구분하는 사법적-생물학적 개념에 의해 배치된다.[11] 괴물은 비정상성을 규정하는 법적 판단을 통해서 괴물로 규정된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괴물로 발견되는 것은 공동체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법이다. 이것은 단순히 공동체 내부와 외부라는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내부에서도 언제든지 법적 판단에 의해서 괴물로 규정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 괴물은 언제든지 내부에서도 발견되며, 이것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다. 유령에서 괴물로 작가의 관심이 이동되었다는 것은 유령-조각/사물과 자신-관객의 거리에 대한 관심에서 대상과 대상, 자신과 자신을 구별 짓는 경계를 구획하는 힘의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힘은 방향성을 가지며, 그 방향성은 공간을 구축한다. 그리고 그것은 물리적 결과를 도출한다. 그의 관심은 유령의 거리에서 괴물의 시간으로 이동되었다.[12]

이러한 이동은 그의 신체적 징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의식과 대상의 어긋남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계의 오류는 신체에 물리적 영향을 끼치고, 오작동을 일으켰다. <괴물의 지도, 15분>은 이러한 경험에 근거한다. 정신과 물질의 어긋남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경험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의 오류를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한다. 이 오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 사이에서 우리가 적정한 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거리가 납작해지고 그것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비극적인 것이다. 세계의 어긋남이 주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한다.

<Mr.Kim과 Mr.Lee의 모험>은 <괴물의 지도, 15분>에 대한 실시간적인 반응이다.[13] 그러나 이 작업이 단순히 문자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괴물의 시간을 구현하는 것에 머물지는 않는다. 텍스트로서 <괴물의 지도, 15분>은 이동에 따라 만나게 되는 공간을 묘사한다. 그리고 대면하는 공간에는 흔적이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탄생과 부재의 흔적이다. 이 텍스트에는 하나의 사건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발은 내디디면 밟은 것이 부서진다는 것이다. 행위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차원에서 이것은 사건이지만 물리적 현상처럼 묘사된다. 그 현상은 바로 어긋남(out of joint)이다. 탈구된 상황,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우리가 그곳에 들어간 순간 어긋난다. 거리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동시대적 의미는 이제 깨진 것이다. 그곳으로 무엇인가 이제 출현할 것이다. 괴물은 그곳에서 발견된다.

<괴물의 지도, 15분>의 드로잉은 한편 이러한 서술들의 시각적 암호문이다. 드로잉에는 대부분 대상과 공간이 파편적으로 구축되지만, 작가가 텍스트로 명확하게 작성하고 그려 넣은 문장이 있다. 그것이 ‘Mr.Kim과 Mr.Lee의 모험’이다.

“Mr. Kim 과 Mr. Lee의 모험
Mr. Kim : 그것은 엄청나게 큰 바위였어요. 그는 곧 떠날 예정이었지요. 누군가와 한판 붙고는 급히 가려던 참이었답니다.
Mr. Lee : 가볍게 부는 먼지바람 따위에 흔들려 부를 노래는 아니군요. 그런데 그는 지금 충성스러운 그자의 이마에 번진 땀을 빨려들듯이 보고 있는 중입니다.
Mr. Kim : 두 바퀴 회전 끝에 당신 무릎이 부러졌군요.
Mr. Lee : 당신 모자 끝을 조금 베어내겠습니다.”

이 문장들은 어떤 사건을 기술하지 않으며 그 징후를 드러낼 뿐이다. 두 남성의 불연속적 대화는 가시화되는 비현실적 세계의 힘의 징후를 드러낸다. 그 징후는 특정한 방향성을 갖는 3차원적 좌표를 형성하며 공간, 즉 영역을 구축한다. 구축된 영역은 분명히 우리에게 물리적 힘을 강제할 것이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언제든지 괴물로 낙인될 수 있다. 우리가 괴물로 발견되거나 스스로 괴물이 된다.

객석과 무대 그리고 분장실 모두를 포함한 공연장은 아직은 새로운 힘에 의해서 영토화된 공간은 아니다. 블랙박스라는 공연장은 문자 그대로 어두운 동굴이다. 관람객은 불빛이 아니라 소리를 가지고 그 세계로 들어간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청각적 장치이다. 불빛에 의존할 수 없으며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관람객이 대면하는 것은 젊은 남자 1, 젊은 남자 2, 아이로 분장한 젊고 작은 여자, 요괴로 분장한 젊은 남자, 개와 개주인, 할머니로 분장한 젊은 여자, 서양 남자로 분장한 아시아 남자, 여자로 분장한 젊은 남자, 중년 남자로 분장한 중년 여자이다. 이들의 분장은 분장이 아니라 실재이다. 그들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하나의 징후로서 극장에 배치된다. 시각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있으며, 외형은 정상적이지만 그 내부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이 공연의 핵심은 세계에서 괴물성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괴물성의 이해 불가능함을 관객으로 하여금 자각시키는 것이다. 유령/조각의 삭제된 거리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공간에서 법적 장치가 강제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징후들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현실 세계에서 작동되는 믿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영을 낯설게 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떤 연극적 상태임을 자각시키게 하는 것이다.

<Mr.Kim과 Mr.Lee의 모험>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오브제는 피에로 만조니에서 길버트 앤 조지 그리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이르는 실존적 의미의 오브제와는 다르다. 그들의 살아있는 오브제들은 미술계라는 제도 내부에서 작품과 작가의 개념을 재구축한다. 그러나 <Mr.Kim과 Mr.Lee의 모험>의 등장인물들은 살아있는 대상 그 자체이다. 그들은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 없이 있는 그 상태를 출현시키기 때문이다. 이 점은 괴물의 속성을 닮았다. 괴물은 이미 우리와 함께했다. 그러나 괴물은 사법적 정의가 그것을 괴물이라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발견할 때 비로소 괴물로서의 존재로 낙인찍힌다. 따라서 이 살아있는 오브제는 임의로 규정되는 괴물이라는 경계의 극단에서 괴물(mon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 그대로, 다가올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그곳에 있다. 그들은 이미 생명체이거나 아니면 이미 조각인 것이다.

괴물 이후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이다. 이후 작가는 종종 비정형 다각형 모양의 거울을 다양한 크기로 설치에 포함한다. <밤과 낮>(2011)과 <마음속으로 정해라>(2012)가 대표적이다. 거대한 거울은 공간과 사물에 기대어 세계를 비춘다. 메두사와 거울의 우화를 기억한다면 이러한 오브제의 설치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괴물은 거울 속에 봉인될 것이며, 그는 조각의 유령으로 귀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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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정서영에게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에게 조각은 당연한 것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조각은 그에게 또한 두렵고 낯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조각은 거대한 환영(phanto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환영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환영과의 거리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것이 그 환영을 물신화하지 않으면서 그 환영을 분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유령은 언제나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 실체는 비어 있다. 보이스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조각을 대면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서영이 출발했던 조각의 장소는 그가 마땅히 출발해야 했던 그 장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영에게도 조각이라는 유령은 사실, ‘두려운 낯섦(Unheimlichkeit)’이다. 지금까지 정서영이 보여준 세계의 의미는 그 두려운 낯섦에서 자신의 조각을 시작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그것을 시각화하거나, 극복한 듯이 의기양양할 뿐이다.

정서영은 조각을 반성하면서 출현하는 유령/조각의 실체를 거리를 통해서 구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동시대 물질적 삶의 환영들을 들추어 낸다. 사물은 조각의 권위를 해체하기 위해 발견된 대상이기도 했으며, 언어는 우리의 인식을 교란시키기 위한 게임이기도 했다. 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조각을 출현시키는 공간이다. 그것은 실제적이기도 하며 가상적이기도 하다. 유령/조각-조각/사물-거리/공간은 괴물/사회로 치환되었으며, 이제, 유령-조각-사물-괴물-사회는 순환되며 정서영의 현재를 점유한다. 그에게 무엇인 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물질을 통해 대상을 구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 대한 창조적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정서영에게 조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에게 더 내밀한 곳에 존재하는 두려운 낯섦으로 조각을 환대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 애도가 아니라 환대이다. 왜냐하면 유령은 언제나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정서영은 나에게 사물들의 위계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동시대적 삶에서 사물의 역할이나 논의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사물들의 위계가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분명 작가에게 조각의 위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며, 세계의 질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유령이 다시 출현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새로운 ‘두려운 낯섦’을 대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데리다의 유령론으로 되돌아가 그가 책의 마지막에 적어 넣었던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한 구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유령으로 그 책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과의 대화를 권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자네는 배운 사람이야. 그것에게 말을 걸어봐, 호레이쇼.”[14]

note

[1] 이러한 차원에서 이 전시는 두 작가에게는 실패한 전시이지만, 그 둘을 초대한 대안공간에게는 자신들의 변신을 선언하는 중요한 전시였다. 80년대 비판적 미술의 탈출을 ‘자생적’으로 이루어내고자 했던 그 기관은 그 불가능한 목적을 두 작가의 만남을 통해서 표상하고자 했다. 당시 즐겨 사용하던 용어를 다시 호출해 보면, ‘순수’와 ‘키치’라는 이름으로 두 명의 작가를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의 제목이 ‘충돌’이나 ‘폭발’이 아니라 ‘스며들다’인 것은 두 작가의 삼투작용이 아니라, 두 작가의 태도가 그 기관에 스며들기 기대하는 기관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2]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서울: 이제이북스, 2007), 263.

[3] 자크 데리다, 앞의 책, 246-247.

[4] 최태만, 『한국현대조각사연구』 (서울: 아트북스, 2007), 616.

[5] 안소연, 「설치미술의 국제화 흐름 속 1980-1990년대 한국현대조각의 변화」,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6(2018.12): 247-248

[6] 김홍희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1990년대 미술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로 긍정한다. 김홍희, 「1980년대 한국미술: 70년대 모더니즘과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전환기 미술」, 『한국현대미술198090』 (서울: 학연문화사, 2009), 13-37

[7] 심상용, 「분열로부터의 조각에 관하여」, 『미술세계』 (1997.07): 31

[8] Willoughby Sharp, “An Interview with Joseph Beuys”, Artforum 8, No. 4, (December 1969): 47

[9] 주혜진, 「불안한 지점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이 솔직한 것」, 『아티클』(2014.05): 29

[10] 이 문장은 크리스토퍼 프렌더가스트의 데리다의 유령학에 대한 정의를 변형 적용시킨 것이다. Christopher Prendergast, "Derrida's Hamlet", SubStance, 106 Vol.34(Number 2005): 45-46

[11] 미셀 푸코, 『비정상인들』 박정자 옮김 (서울: 동문선, 2001), 75

[12] 작가는 <괴물의 지도, 15분>에 대하여, “‘괴물’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 늘 출몰하는 비현실’이 ‘방향’과 ‘영역’이라는 구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3] 나는 이 프로덕션을 큐레이팅했다. <괴물의 지도, 15분>을 연극적 대상으로 작가는 인지하고 있지 않은 듯했지만, 나는 이 작업이 조각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연극으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극장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이 작업이 그곳에 올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작가는 조각적으로 그것을 해결했다.

[14] 『햄릿』에서 이 문구는 호레이쇼와 동료들의 대화에서 나온다. 선왕의 유령을 본 동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호레이쇼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그 이야기를 불신하고, 동료들은 그를 선왕의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유령이 출현하자 마셀러스는 호레이쇼에게 대화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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