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길의 사진공책
한국 산업의 자연사 유일한 ‘기록자’ 조춘만
철갑을 두른 방주의 승객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조선소의 용접사는 취부사의 지시에 따라 강철판 조각들을 빈틈없이 이어 붙일 뿐이다. 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유조선 1호인 애틀랜틱 배런호를 한국 최초로 진수했던 1974년부터 그는 쇠를 다루는 노동자였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용접사는 영문이 섞인 취부사의 도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용접사는 공룡처럼 덩치를 키우고 있는 방주 위에 올랐다. 갑판은 운동장보다 넓었다. 그는 깨달았다. 철판을 재단하는 취부사가 되기는 영 글러 먹었다는 사실을.
조선소 하청업체 용접사 조춘만이 1만1300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아퀼라호에 오른 것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사이 그는 사진작가가 됐다. 많은 일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모래밥을 먹으며 3년 동안 송유관을 용접했다. 귀국해서 식당과 슈퍼마켓을 열었다. 틈틈이 공부했다. 학력 콤플렉스 때문이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자 학원 강사는 대학에 가라 했다. ‘무슨 과를 가지?’ 사우디에서 귀국할 때 사 온 니콘 FM 카메라가 생각났다. ‘그래,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그는 서라벌대와 경일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뭘 찍지?’ ‘내가 살던 곳과 내가 했던 일을 찍자!’
인연이란 묘하다. 아들뻘 되는 동기생 덕분에 조춘만의 사진집 <타운스케이프(Townscape)>(2002)가 기계 비평가 이영준 교수에게 전달됐다. 우연이었다. 이영준 교수는 중공업 산업단지의 풍경을 찍은 조춘만의 시선에 주목했다. 2013년 아퀼라호의 승선 티켓을 조춘만에게 건네준 이도 그이였다. 방주에 오른 조춘만은 감회에 휩싸였다. 10만 마력짜리 엔진이 포효하는 굉음, 프로펠러 회전축의 격렬한 떨림, 강철 갑판과 외판의 견고한 이음새…. 이 거대한 괴물은 조춘만이 용접했던 현대중공업에서 건조된 방주가 아니던가! 수많은 노동자의 피, 땀, 눈물로 채워진 도크(dock)에서 몸집을 불린 아퀼라호는 용접사 조춘만을 태우고 망망대해를 향해 출항했다.
유레카! 아퀼라호는 헤엄치는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유체 속에서 물체가 받는 부력은 그 물체가 차지하는 부피에 해당하는 유체의 무게와 같다’는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이해했던 것은 조춘만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육체였다. 쌀알 같은 불똥을 튀기며 쇳덩이를 이어 붙이던 그가 흘렸던 진액의 농도가 바다보다 진했던 것이다. 한데 엉겨 굳어진 시간들은 한순간에 진수된다. 철갑 방주에 올랐던 그해에 조춘만은 프로 사진가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인더스트리 코리아. 2013년부터 시작된 조춘만 사진전의 제목이다. 그는 자신의 사진들 앞에 ‘IK(Industry Korea)’라는 알파벳 접두사를 단다. 국내 유일의 산업 사진가인 조춘만은 범위를 세계적으로 넓혀봐도 손에 꼽힐 만하다. 근대 산업의 유물들을 기록했던 독일의 베허 부부, 증기 기관차의 야경을 촬영했던 미국의 윈스턴 링크, 자동차의 속도에 열광했던 프랑스의 자크 앙리 라르티크. 이 세 명의 이름 이외에는 조춘만과 견줄 만한 사진작가를 나는 알고 있지 못하다. 범위를 좀 더 축소해본다면, 중공업 분야의 산업 이미지를 사진 찍은 작가는 조춘만이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주장해본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들을 처음 촬영했다는 이유로 조춘만의 사진을 소재주의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의 카메라 아이(camera-eye)는 엄격한 베허 부부의 사진술만큼이나 일관성이 있다.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조춘만은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라고 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독일인의 초상들을 정직하게 집대성하려 했던 아우구스트 잔더의 원대한 기획처럼 조춘만은 한국의 산업 풍경들을 차곡차곡 수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진 한 장을 보며 조춘만의 작가 스타일을 살펴보자. ‘IK140870’ 사진이다. 접두사 ‘IK’ 다음에 오는 숫자 ‘14’는 2014년에 찍은 사진이라는 뜻이다. ‘골리앗’이라는 간단한 제목을 달고 사진집 <조춘만의 중공업>에 수록됐다. 사진집을 보지 않았다면 골리앗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골리앗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울의 성은 하늘을 날고, 조춘만의 골리앗은 바다 위를 유영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FPSO(시추선의 일종) 골리앗은 2015년 울산 앞바다에 진수됐다.
조춘만은 중공업의 거대한 풍경이 볼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피사체의 눈높이나 그보다 높은 곳으로 카메라를 짊어지고 오른다. 독일 사진작가 베허 부부의 정면성과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을 거론할 때 말하는 ‘신의 시점’이 번갈아 사용된다. 조춘만은 거스키보다 위대할 수 있다. 거스키는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리지만, 조춘만은 카메라의 정직한 기계적 속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러면서도 조춘만은 거스키가 표현했던 선과 면과 색의 추상성을 찍어 낸다. 석유화학 공장의 풍경들이 그렇다. 수평과 수직으로 직조된 배관들, 원통과 공 모양의 저장 탱크,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들을 보며 기계 비평가 이영준은 앙코르와트를 연상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신을 위한 휴식처라면 조춘만의 앙코르와트는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일터다. 울산에서 달까지의 거리만큼 길다는 배관을 통과하는 석유는 우리가 손에 쥐는 거의 모든 상품의 원자재로 탈바꿈된다.
현대인들은 상품의 제조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는 “사물들은 신화 속에서 그 제작에 대한 추억을 잃어버린다”고 책 <현대의 신화>에 적는다. 상품 판매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네 상품을 소유하면 CF가 보여주는 근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조춘만은 상품을 숭배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는 잃어버린 사물의 탄생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킨다. 피안(彼岸). 지난해 열렸던 전시회 제목이다. 조춘만은 상품의 물신성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을 피안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조춘만이 도달한 피안의 세계에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살던 동네였던 울산 부곡동은 마을 전체가 사라지고 석유화학 공장이 들어섰다. 부곡동뿐만이 아니다. 대구 달성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울산살이를 시작했던 1974년부터 울산은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자연부락의 모습을 잃어갔다. 울산의 바닷가 대부분에 공장이 들어서자 해안선이 바뀌었다.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으로 ‘인류세(Anthropocene·人類世)’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 활동이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지금의 시대를 말한다. 카이스트의 인류세 연구자들은 조춘만에게 사진을 요청했다. 조춘만에게는 공장에 의해 사라진 자연 부락과 그 이후의 풍경을 사진에 담은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조춘만의 명함에는 ‘Photographer’라는 영문 옆에 ‘Performer’라는 단어가 하나 더 적혀 있다. 그는 프랑스 극단 ‘오스모시스’의 연기자다. 나는 조춘만의 인연이 묘하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오스모시스의 연출가 알리를 만난다. 세계적인 중공업 도시를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울산을 찾은 알리가 묵었던 민박집 주인이 당신처럼 기계에 환장한 사람을 알고 있다며 그를 소개했다. 조춘만의 사진집을 본 알리는 그의 과거를 물었다. 용접사라는 그의 답변에 알리의 눈빛은 반짝였다. 알리가 물었다. “용접하는 동작을 보여줄 수 있겠소?” 조춘만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산업 사진으로 첫 개인전을 열고, 기계 비평가 이영준과 함께 방주에 올랐던 2013년, 조춘만은 알리가 연출한 <철의 대성당>을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기계의 죽음을 처음 목격했던 곳은 독일이다. 사진집 <푈클링엔(겐), 산업의 자연사>의 작가 노트에 그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감회를 적는다. 프랑스에서 공연 연습을 하던 조춘만은 알리의 손에 이끌려 독일 푈클링겐 제철소를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철모의 원자재 대부분을 생산했던 제철소는 1986년 문을 닫았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의 제철 산업과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4년 유네스코는 푈클링겐 공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적막강산(寂寞江山). 가동이 멈춘 푈클링겐을 설명하는 말이다. 철판 조각을 하나의 세포로, H빔을 뼈대로, 엔진을 심장으로, 전선은 신경으로, 배관을 혈관으로 상상하며 기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했던 조춘만은 푈클링겐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가동이 멈춘 기계에 자연현상은 집요하게 침투한다. 철광석을 녹이는 연료를 생산하던 코크스로의 문은 검붉은 녹이 꽃을 피웠다. 완벽하게 연결됐다고 생각했던 철판의 용접 부위에 빗물이 스미고, 소나무와 자작나무의 씨앗은 그 틈에 파고들어 가지와 뿌리를 내렸다. 조춘만은 두렵다. 머지않아 울산도 푈클링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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