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5. 2
이적표현 유죄판결 신학철씨 동료들, '불온한 상상력' 테마전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9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이십일세기 (02 - 735 - 4805)에서 전국민족미술연합 김정헌 (金正憲) 공동대표는 이런 인사말을 꺼냈다.
오늘 (5일) 막을 내리는 '모내기 사건 풍자전 - 불온한 상상력' 의 오프닝 자리였다.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주역인 초대손님들은 여기저기서 킥킥거렸다. 정권이 몇 번씩 바뀌었는데 아직도 '할 일 있음' 을 말하는 대표의 목소리가 뜬금없이 들렸기 때문일까.
모내기 사건이란 최근 대법원이 서양화가 신학철 (申鶴徹) 씨의 '모내기' 그림에 '이적 (利敵) 표현의 혐의가 있다' 고 유죄 판정을 내린 것을 놓고 붙인 이름이다. 89년 검찰 기소로부터 9년. 1심과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은 이로써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전시의 출품작가는 주재환. 김정헌.민정기. 김인순. 임옥상. 박불똥. 최민화씨등 19명. 신씨의 모내기 작품 사진 위에 '대한민국은 예술창작이 자유롭다. 법원의 허락을 받는다면' 이라고 써넣은 김인순씨처럼 대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검열' 을 야유하는 작품을 냈다.
신학철씨는 이렇게 말했다."검찰의 상상력을 작가에게 강요하다니 정말 코미디 같습니다." 김정헌 공동대표는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검열이 존재하는 한 법정 싸움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그 이유로 전시장에 내걸린 편지 한 통을 가리켰다. 신학철씨 등에게 보내진 익명의 편지에는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모두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붕괴된 다음에도 과연 그 말이 유효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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