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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있었다 2―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2024)

저자명; 현대미술포럼

기획; 윤난지 외 52명 지음

출판; 나무연필 2024년 10월

ISBN 9791187890645

가격 40,000원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만든 작가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당연한 명제이지만 여기서 기획이 출발했다. 

현대미술포럼과 외부 연구자가 포함된 53인의 여성 저자들은,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과 활동지가 다양하다. 여성주의 의식과 관계없이 작업 내용과 활동 경력을 기준으로 선정된 작가 105인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부터 미술의 전 영역의 국내외 활동 작가를 아우른다. 

남녀 편차가 극심한 20세기 미술사에서 여성 작가들이 폄하•배제된 경위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살필 수 있게 하며, 70년대 이전까지 공통으로 보이는 결혼•출산•육아•내조 등 약 10년 안팎의 공백기나 각기 다른 모양의 억압 등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작가들을 다양하게 시점에서 읽게 해준다.


책 소개


이 책은 제목처럼,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만든 작가들 중에서

여성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는 다양한 출처의 자료 조사를 통해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준 여성 작가들을 선별하여 소개하고자 했다.

(……)

이는 미술사에서 여성이 배제된 것이 생래적인 재능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여성과 여성성이 폄하되거나

배제된 경위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살피는 계기를 준다.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이렇게 여성 작가들을 단순히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사를 보는 보다 공정한 시각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_‘책머리에’ 중에서


현실은 아직도 충분히 공정하지 못하며

특히 지난 역사를 보는 시선은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5년에 걸친 대작업


한국미술사의 공정한 지형을 탐색해낸 역작


한국 근현대 여성미술가 105명의 예술세계를 여성 필진 53명이 합심하여 엮어내다


20세기 한국 미술가를 선별해 조명한 책에 등장하는 여성 작가는 지극히 적다.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에는 4명, 이후 증보한『120인 선집』에는 5명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에도 여성은 12명밖에 들어 있지 않다. 왜 이렇게 여성 작가의 수가 적은 것일까? 여성의 예술적 재능이 부족해서일까?


이 책의 기획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근현대 미술가 가운데 여성 작가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려는 시도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미술의 전 영역과 국내외 활동을 아우르며 탐색해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해온 여성 작가의 수가 적지 않았다. 

이제까지 한국미술사에 기입되지 않았을 뿐, 분명 “그들도 있었다”. 역사란 조명하고 기록하고 엮어낼 때 비로소 인식된다. 이 책은 가려져 있던 한국의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이를 통해 한국

미술사를 보다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책을 기획한 현대미술포럼은 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여성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1995년에 결성된 뒤 꾸준히 모여 함께 읽고 토론하고 썼다. 그간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등 번역서 4권과 『한국 현대미술 읽기』 등 공저 5권을 출간했다. 한국의 학계에서 상당히 드문, 오랜 

명맥을 이어오며 꾸준히 성과를 낸 ‘여성’ 모임이다. 


이번 책을 만드는 여정은 2019년 9월 말에 기획을 시작하여 출간에 이르기까지 5년이 걸린 대작업이었다. 작가를 선정한 뒤 자료를 찾아 연구하고, 원고를 집필한 뒤 논의하고, 도판을 선택해 수록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필진 53명은 현대미술포럼 회원을 중심으로 하되 외부 여성 연구자를 포함해 꾸렸다. 

30대부터 70대까지 필자의 연령층이 폭넓으며, 학계뿐 아니라 미술관 등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아울렀다. 현대미술포럼의 네트워킹은 필진뿐 아니라 작가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생존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원고의 풍요로움을 더했고, 도판 수록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냈다. 덕분에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탄탄한 글과 함께 대표작 도판을 3점씩 수록하여 시각 자료로서 책의 가치를 더했다. 한국미술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종합적 작업일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을 필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익히 잘 알려진 작가들을 비롯하여 이름조차 낯선 작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성 미술가 105명을 조명하고 있다. 

짙게든 엷게든 이들에게는 시대의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여류’ 화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가족을 비롯한 사회집단이 작가에게 멍에가 되기도 했으며, 여성적인 것을 표현할 때면 진지한 비평 대신 엉뚱한 말이 뒤따르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이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창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은 미술사로서든 여성사로서든 도전의 서사가 가득한 텍스트다.


여성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겹쳐 읽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다층적 초상


마치 사전처럼 원하는 작가에 대한 내용을 추려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진가는 각각의 원고를 

포개어 읽을 때 더더욱 드러난다.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주류적 흐름(가령 1960년대의 앵포르멜, 1970년대의 단색화 운동, 1980년대의 민중미술 등) 속에 놓인 여성 작가들은 때로는 주류와 유사한 결로, 때로는 주류에 빗겨 서며 각자 자신의 자리를 모색한다. 


또한 표현그룹(1971), 한국여류화가협회(1973), 한국여류조각가회(1974), 서울프린트클럽(1980), 

시월모임(1985), 여성미술연구회(1988) 등의 모임을 결성하여 여성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가는 흐름도 병행된다. 여성 작가들의 대응은 각각 편차를 보이는데, 그 다양한 양상을 섬세하게 견주며 지도 그리기(mapping)를 해본다면 이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이 ‘세계화’가 시대적 화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세계라는 좌표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위치를 모색한, 글로벌한 시야를 갖춘 이들이었던 점도 눈에 들어온다. 

시각 장르로서 문자보다 훨씬 직관적인 미술 분야의 특성 또한 세계화를 빠르게 견인한 동력 중 하나였을 터. 이들 중 상당수는 이른 시기부터 일본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하여 타국의 공기를 흡입하고 자신의 예술적 자양분으로 삼은 바 있다. 그러나 유학의 경험이 없거나 동양의 전통에 뿌리를 둔 작업을 한 작가들에게서도 폭넓은 시야와 이에 기반한 고민이 엿보이는데, 이는 상당수의 여성 작가들이 시대의 전위에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여성’이라는 특징을 화두 삼아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겹쳐 읽는 독법을 쓸 때 포착되는 여성‘들’의 같고도 다른 다층적인 결 역시 눈여겨볼 지점이다. 

예를 들어 근대기부터 1970년대 이전까지 활동한 상당수의 여성 작가들에게는 10여 년 안팎의 ‘공백기’가 따라붙는다. 이른바 결혼, 출산, 육아, 내조의 시기다. 당대 사회의 구조적 억압이 빚어낸 현실일 텐데, 요즘 말로 하면 이들은 집단적으로 ‘경력 단절 여성’ 시기를 거쳐온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 시기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가령 아이 같은 시적인 그림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김점선 작가의 경우, 큰 체구와 중성적인 외모 때문에 사람들 속에 동화되지 못하다가 결혼과 출산 이후 ‘평범한 아줌마’로 살게 되면서 비로소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여성적이지 않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작가에게 훨씬 크게 

다가왔다는 뜻으로, 모두가 여성일지라도 개별 여성이 느끼는 억압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인류의 절반이면서도 소수자인 여성으로서의 특징을 검토할 때 당대적 보편성을 읽어내면서도 동시에 정형화된 논리를 넘어서는 다양한 접근으로 개개인의 선택을 규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을 해볼 수 있는 일차 자료로서 이번 책은 손색이 없으리라고 본다.


책을 읽다 보면 선도적인 작업을 선보였건만 ‘광녀(狂女)’라는 말까지 따라붙은 정강자 작가의 에피소드에서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다가, ‘미친년들’이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내세운 뒤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조리의 정곡을 찌르는 박영숙 작가의 시니컬한 결기도 만나게 될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작업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혹은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다양한 화두를 붙잡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친 여성 작가들의 모습 또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여성 예술가의 다중적 초상이야말로 이들이 미술계에서 성취해낸 작업과 함께 여성사가 탐색해야 할 풍요롭고 깊은 장일 것이다.


20세기 한국 여성 작가들이 선보인 다채롭고 풍요로운 예술세계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1장에서는 근대기 미술에서 주목할 만한 선구자들을 수록했다. 

동·서양화뿐 아니라 디자인, 미술교육까지 아우르면서 우리 미술의 근대화를 이끈 작가들로,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수상할 때마다 ‘최초의 여성’이라는 말이 따라붙던 이들이다. 대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큰 굴곡을 거친 이들로, 해외에서 유학한 이들도 있지만 국내에 처음 생긴 미술대학을 통해 미술계에 입문한 이들도 눈에 띈다.


2장에서는 그 후속 세대로 1950년대 중반 이후 미술계에 안착한 작가들을 다루었다. 

이들은 회화와 그 한 부류인 태피스트리(tapestry), 그리고 조각에서 전 세계적인 모더니즘 조류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섬유예술을 현대적으로 개척한 

이신자와 성옥희의 작업, 반면에 남성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조각 분야에 입문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낸 나희균, 김정숙 등의 작업이 대비되어 눈에 들어온다. 전반적으로 모더니즘의 기조 아래에서 형태의 

추상화를 시도한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3장에 수록된 후속 세대 추상 화가들에게 계승되었다. 


3장에서 살펴본 작가들은 1960년대의 앵포르멜, 1970년대의 단색화 운동에 참여한 이들로, 주류 

경향에 합류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어법을 구사했다. 

‘추상회화’라는 개념으로 수렴되지만, 이들의 작품 세계가 매우 다채로운 것은 도판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될 것이다.


4장은 한국화라는 전통적인 장르가 어떻게 동시대와 만날 수 있는지를 모색했던 작가들을 모았다. 

우리의 것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는 지점을 고민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치열한 

실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것들 중 계승할 것을 가려내면서 현대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을 더해나간 이들의 작업은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바탕으로 개척해낸 새로운 세계였다. 


한편 5장에서는 선구적 조각가들의 뒤를 이어 형식과 재료 실험을 통해 조각의 영역을 넓힌 후속 세대 조각가들을 다루었다. 이들의 작업이 1980년대 이후에 집중된 것은 조각에서의 여성 진출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점을 반증한다. 

초기에 비해 이후의 작업은 같은 조각일지라도 기획과 소재, 표현 방식이 다양해져서 작품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진다.


6장에서 다룬 작가들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에 포스트모던 기류가 형성되고 그 한 국면인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여성과 여성성’을 화두로 삼은 이들이다.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미술의 문을 연 작가들인데, 시월모임이나 여성미술연구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냈던 이들도 눈에 띈다. 물론 이 자장의 바깥 혹은 너머에 있던 이들도 있으며, 이들은 도전적인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예술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는 모더니즘의 맹아인 추상 형식을 벗어나려는 움직임 또한 부상하는데, 7장의 형상 회화 

작가들, 8장의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 작가들의 작업이 그 예다. 기존 틀에 한정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화두와 방법론을 고안해내고 이를 개척한 점이 돋보이는, 그리하여 개개인이 넓힌 지평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할 작가군이다.


이어 9장에서는 몸과 그 감각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추상미술의 근간인 이른바 ‘정신주의’를 벗어나고자 한 예들을, 10장에서는 설치, 사진, 비디오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기존의 장르 구분을 넘어서고자 한 예들을 모았다. 이들 작가들은 철학, 문화인류학,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들어서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현실을 탐색하는 방법론을 넘어서서 세계 자체를 해명하는 데 필요한 이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 윤난지(필진 대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9년까지 같은 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대미술의 풍경』, 『추상미술과 유토피아』,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등의 책을 썼으며, 석주미술상(평론 부문, 2000), 석남미술이론상(2007),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21)을 받았다.



필진_

곽세원 권화영 김가영 김민정 김의연 김지나 김철효 김태이 김해리 김현숙 김현주 김혜신 김홍희 김효정 도화진 박경화 박민혜 박선주 박신진 박영란 박윤아 박윤조 박은영 박주연 성은정 손혜란 송윤지 오유진 윤난지 윤아영 이설희 이소임 이수연 이슬비 이연우 이연재 이유선 이윤희 이주민 이지언 임수진 임은우 장예란 장하영 전유신 정보원 정하윤 조수진 조현아 주연화 최은주 최하림 한희진



기획 | 현대미술포럼

여성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현대미술사 연구 모임으로, 고정된 가치 체계와 정형화된 관례를 벗어난 대안적 미술사 기술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95년 현대미술사 관련 문헌을 함께 읽는 것으로 모임이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1999), 『전시의 담론』(2002), 『페미니즘과 미술』(2009), 

『공공미술』(2016) 등을 함께 번역했고, 『추상미술 읽기』(2012), 『현대조각 읽기』(2012), 

『한국 현대미술 읽기』(2013), 『한국 동시대 미술: 1990년 이후』(2017), 『키워드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2019) 등을 함께 썼다.




목차

책 머리에


6장 여성과 여성성을 탐구하다

윤석남_ 여성 주체를 세상에 드러낸, 영원한 페미니스트

김인순_ 교차성의 관점으로 그린 여성의 현실

박영숙_ 여성주의 사진, 그 낯선 길을 열다

김종례_ 직관으로 재현해낸 여성의 현실

노원희_ 기록과 발언으로서 그림의 의미를 묻다

이은산_ 삶에 깃든 여성적 감수성을 탐색하다

윤효준_ 여성에 의한 ‘여성 되기’의 추상

조기주_ 여성성을 화두 삼아 미술의 통념에 도전하다

정정엽_ 여성의 삶과 생명에 경의를 표하다

류준화_ 여성의 현실을 표현하고 고발하고 일깨우다

하민수_ 천 위에 실로 그려낸 삶의 노래


7장 형상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정연희_ 풍경화에 담아낸 광대한 여정의 알레고리

김점선_ 소박하면서도 치열하게 시적인 세계

노은님_ 천진하게 자연을 노래하는 생명의 화가

김명희_ 칠판 회화로 재현과 기록을 넘나들다

이명미_ 이것이 그림이 되겠는가

김원숙_ 동화 같은 필치로 그려낸 ‘여성들’의 일기장

황주리_ 그리기와 쓰기를 통해 관계를 직조하다

심현희_ 이것 아니면 저것? 그냥, 그림!

김명숙_ 무모하되 숭고한, 선 위의 수행자


8장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해체하다

송현숙_ 고향과 타향을 오가는 몸짓의 흔적

양주혜_ 사적인 기호와 열린 해석의 미학

홍승혜_ ‘유기적 기하학’, 그리드의 안팎을 넘나들다

제여란_ 물감 덩어리와 일체화된 초극의 추상성

도윤희_ 시적 감수성으로 숙성된 시간을 탐독하다

엄정순_ 사물을 더듬는 촉각 예술로서의 회화

전영희_ 붓에 의한 들숨과 날숨, 그 회화적 호흡법

신경희_ 기억을 꿰어 만든 그림 세계


9장 몸과 그 의미를 부각하다

정강자_ 여성 행위미술가의 ‘위험한’ 몸

민영순_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탐구하다

이순종_ 삶과 죽음 사이를 채우는 에로틱한 사물들

정경연_ 부드러운 조각이 표상하는 몸과 삶

김수자_ 문화인류학적 탐구를 이어가는 ‘바늘 여인’

홍이현숙_ 미술과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구르기’

이불_ 불완전한 근대성에 깃든 열망과 공포

김옥선_ 세상을 직시하는, 포착된 시선


10장 매체를 확장하다

김순기_ 지금 여기의 순간을 대면하는 미술

차학경_ 시대를 앞서간 급진적 예술의 비전

최재은_ 시간에 대한 성찰을 공간에 담다

장영혜_ 불온한 실험이 만들어낸 위반의 미학

우순옥_ 시공간을 탐색하여 삶과 예술을 잇다

안성금_ 물질과 정신의 ‘균열’ 너머의 세계

조숙진_ 삶과 죽음에 담긴 숭고한 아름다움

이정진_ 무등(無等)한 사진, 맞닿아 울리는 세계

오경화_ 비디오로 바라본 사회와 여성

강애란_ 페미니즘의 옷을 갈아입은 ‘디지털 책’

정서영_ 사물, 조각이 되는 비범한 순간

유현미_ 장르를 넘어서, 자유를 꿈꾸는 도정


주석

필진 소개

도판 목록

찾아보기_인명

찾아보기_용어

페미니즘 미술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2024)


여성 미술인 44명 이야기/ 열화당 / 38.000원

목차

책머리에
여성 미술 문화의 밝은 미래를 꿈꾸다

글을 읽기에 앞서
한국 현대 페미니즘 미술의 흐름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윤석남, 장파

몸의 미술
이불, 이피, 이미래

광기, 에로스, 히스테리
박영숙, 이순종, 이은새

퀴어 정치학
정은영, 흑표범, 김나희

저항적 여성서사
임민욱, 송상희, 함양아, 김아영

에코페미니즘
홍이현숙, 조은지, 홍영인

감정노동자의 초상
주황, 신민, 치명타

노마디즘
김수자, 함경아

디아스포라 미술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

추상미술에서의 여성성
양주혜, 홍승혜, 박미나

알레고리 형상
김명희, 김원숙, 조영주

번역의 매체와 양식
이수경, 신미경, 이세경

불편함의 미학
정서영, 김소라, 양혜규

수공예와 민예
이영순, 장응복

페미니스트 컬렉티브
‘입김’의 정정엽, ‘노뉴워크’의 봄로야

글을 마치며


2010년대 중후반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와 이에 맞서는 역풍인 백래시(backlash) 사이를 통과하며, 2024년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여전히 사람들에게 충분히 자각되지 않았다는 입장과 이제는 한물간 주제, 또는 갈등만 부추기는 사안이라는 의견이 공존하는 듯하다. 이러한 시점에 출간되는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는, 지난 몇 년간 문화계에서 붐을 이루던 ‘여성’,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전시와 출판 흐름의 뒤늦은 편승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이벤트 속에서 정작 페미니즘 미술의 담론과 현장을 진지하게 들어다볼 기회는 드물었다. 이 책은 지난 삼십여 년간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 미술 현장에 몸담아 온 김홍희의 도전적 저술로, 198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여성 미술가들이 축적한 성과를 보여주는 여성적 시간의 지형도이다. 

페미니즘이 당면한 15가지 화두를 설정하고 그 안에 다른 세대의 작가, 또는 생각을 공유하는 작가 2-4명을 배치해, 개인을 넘어서는 세대와 작가 사이의 팀워크를 보여준다. 이 지상 전시회에 초대된 44명의 여성 미술가들은 부계적 가치관과 남성중심의 화단 권력에 맞서며, 억압되어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나 부재하는 것을 여성의 상상력과 은유적 언어로써 회복하는 페미니즘의 책무를 수행한다. 

나아가 신분, 인종, 성별, 장애 등 차별 유형들의 교차성에 주목하는 미래의 청사진까지 제시함으로써 현대 페미니즘 미술의 최전선을 확장해 간다. 여기에 작가들의 말, 엄선된 주요 작품들 236점이 컬러로 함께 수록되어 담론과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다각적으로 전달한다.

페미니즘 미술 읽기 - 교보문고

ISBN
9788930107907
발행(출시)일자
2024년 09월 20일
쪽수/크기
464쪽 | 159 * 231 * 34 mm / 1037 g




 페미니즘 미술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출판 기념회

2024.9.30. 더레스토랑 국제갤러리

경향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김홍희 출판기념회 '페미니즘 미술읽기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출판기념회

이 책은 지난 삼십여 년간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 미술 현장에 몸담아 온 김홍희의 도전적 저술로, 198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여성 미술가들이 축적한 성과를 보여주는 여성적 시간의 지형도이다. 

페미니즘이 당면한 15가지 화두를 설정하고 그 안에 다른 세대의 작가, 또는 생각을 공유하는 작가 2-4명을 배치해, 개인을 넘어서는 세대와 작가 사이의 팀워크를 보여준다.


축사는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백지숙, 미술가 정정엽, 정서영, 정은영, 시인 김혜순

질의 응답에는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민 동아일보 기자 등이 참여했다.


김홍희

마지막 국가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아카이브 북, 1995-2024)

 

마지막 국가관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아카이브 북
The Last Pavilion — The Archival Publication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23.11.~ 2024.8.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아카이브 연구, 아카이브 전시 기획, 노송희/백종관 작가 작품 프로덕션, 전자책 국/영 PDF, E-pub2, 종이책 출판.

| 총괄 편집: 호경윤
| 연구: Bf(호경윤, 이다영)
| 글: 김석철, 김홍희, 이영철, 제인 다 모스토, 프랑코 만쿠조 & 세레나 에르네스타, 호경윤
| 연보 정리: 이다영
| 번역: 김효정, 문유진, 장수현, 전진영, 조수지, 콜린 모엣, 하유진
| 영문 교정: 탁영준
| 자료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예술기록원
| 디자인: Bf(조은지스튜디오)
| 사진: CJYART STUDIO 조준용

  • 출판사한국문화예술위원회
  •   
  • ISBN978896583122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 연계 아카이브 북,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마지막 국가관으로 건립된 한국관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이 세계와 만나 교류한 지난 30년간을 담음. 전시 관련 텍스트와 자료, 연보, 한국관 재조명 글을 포함.

역대 커미셔녀/예술감독: 이일, 오광수, 송미숙, 박경미, 김홍희, 김선정, 안소연, 주은지, 윤재갑, 김승덕, 이숙경, 이대형, 김현진, 이영철,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


역대 참여작가: 곽훈, 이인겸, 윤형근, 전수천, 강익중, 이형우, 노상균, 이불, 마이클 주, 서도호, 

박이소, 정서영, 황인기, 김범, 김소라, 김홍석, 문성식, 박기원, 박세진, 박이소, 성낙영(나키온), 

성낙희, 배영환, 오형근, 이주요, 정연두, 최정화, 함진, 이형구, 양혜규, 이용백, 김수자, 문경원 & 

전준호, 이완, 코디 최,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김윤철, 구정아


목차 요약:

제1장 프리퀄

-마지막 국가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계 이야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에 부치며


제2장 역대 미술전시

-[199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에 즈음하여_이일

~(중략)

-[2024]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한국관 예술감독 선정회의 심의 총평


제3장 연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큐레이터십'

-파란만장 30년, 끊어진 궤적 잇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생 이야기


제4장 색인

-연보(1986-2024)

-약력

참고문헌 및 이미지 정보

https://www.venicebiennale.kr/static/source/archive-book-kr.pdf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3개국어 The Multilingual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DOOSAN Humanities Theater Special Exhibition 《3개국어》
𝘛𝘩𝘦 𝘔𝘶𝘭𝘵𝘪𝘭𝘪𝘯𝘨𝘶𝘢𝘭 《3개국어》
2026.6.24.-8.1.
두산갤러리 DOOSAN Gallery

Curated by 장혜정 Hyejung Jang


김익현 Gim Ikhyun
임영주 IM Youngzoo
정서영 Chung Seoyoung
조은영 Choey Eun Young Cho

 정서영 Chung Seoyoung,〈떠돌이〉 𝘈 𝘞𝘢𝘯𝘥𝘦𝘳𝘦𝘳, 2022, Cement, 62 × 142 × 92cm
 (L) 정서영 Chung Seoyoung,〈무제—트랙2〉 𝘜𝘯𝘵𝘪𝘵𝘭𝘦𝘥–𝘛𝘳𝘢𝘤𝘬 𝟤, 2012/2026, Sound, 8min 37sec 
(voice: 홍철기 Hong Chulki, sound: 류한길 Ryu Hankil, edit: 정서영 Chung Seoyoung)
(photo: 이의록 Euirock Lee)

정서영은 ‘사물’의 위상과 관계에 주목하며, 조각의 범주를 확장해왔다. 전시장 한복판에 놓여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는 조각 〈떠돌이〉는 매번 달리 보인다. 삶에서 마주하는 사건과 경험, 정동의 총체인 한 개인은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유동적 초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익숙한 이해의 경로를 벗어나 오해를 받아들이고, 훼손되지 않을 본질에 대한 희미한 믿음을 안고 있어야 한다. 한편, 사운드 작업인 〈무제–트랙2〉(2012/2026)는 길거리의 지각 경험을 언어와 소리로 치환하며, 청각적 층위 속에서 시각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디오 속 인물이 주택가와 대로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할 때, 찰나의 침묵과 생략, 기억의 간섭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일상적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시각이 언어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어긋남의 틈 사이 사운드와 언어 사이의 역동이 하나의 조각적 사건이 된다. 어긋남은 규정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읽기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틈이 된다.

Chung Seoyoung has explored the shifting status and relationships of “objects,” expanding the boundaries of sculpture. 𝘈 𝘞𝘢𝘯𝘥𝘦𝘳𝘦𝘳 (2022), placed in the middle of the exhibition space, will likely appear different each time. The individual, as the sum of all events, experiences, and affects, can only remain a mystery. To approach this fluid portrait, we may need to veer off course from the usual methods of “understanding,” embrace misunderstanding, and hold onto a vague faith in an essence that will never be compromised. 𝘜𝘯𝘵𝘪𝘵𝘭𝘦𝘥–𝘛𝘳𝘢𝘤𝘬 𝟤 (2012/2026) replaces the perceptual experience on the street with language and sound and stimulates visual imagination within an auditory layer. In the gap created as vision gets translated into language, the dynamics between sound and language become a sculptural event. Dissonance is not a failure of definition, but a gap that allows another reading and relation.


지난해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요양병원에서 ‘3개국어 할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1930년생인 그는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자신의 현재를 지우고 과거와 가까워져 가더니, 언어와 인지가 유아적 수준에 이르던 어느 날 불현듯 일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의 새 별명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해 들으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짧은 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는데, 그 순간 그때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나의 할머니는 산산조각 나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이 파편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어차피 나를 통해 이해되는 할머니는 여러 굴절과 왜곡을 겪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애를 써도 나에게 기억되는 할머니는 새로운 할머니로 향할 것이다. 이 전시는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나의 할머니와 마찬가지일 모든 개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기억할 몫을 부여받은 주변인들을 향하는 전시이다. 누구를, 무엇을 떠올리고 어떻게 새길지는 당신의 자유다.

저자도 대상도 없는 조각.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이름 없는 모퉁이 돌처럼, 정서영의 〈떠돌이〉(2022)는 전시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있다. 시멘트로 수습하듯 덕지덕지 덧발라진 이 덩어리는 무엇이든 되고 무엇도 아닌, 잠정적인 응결 상태로 있다. 이곳에서 당신이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떠돌이〉는 아마도 매번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일어나는 숱한 이동과 만남에는 자의와 타의가 하릴없이 뒤섞인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건과 경험, 정동의 총체인 한 개인은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유동적 초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이해’의 방식으로 주로 익숙하게 거쳐온 경로를 이탈하고, 기꺼이 오해를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을 본질에 대한 희미한 믿음을 움켜쥔 채 이곳에 있기를 제안한다.

주인 없는 문장. 조은영의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2026)은 여러 번의 번역과 재작성을 거치며 타인의 몸을 통과한 변형된 발화다. 한국인 할머니와 그에 못지않게 각별한 관계를 맺은 미국인 할머니와의 대화는 조은영에 의해 한글에서 영어로 다시 한글로 번역되고 낭독되는 과정에서 원본은 소실된다. 하나의 서사로 통일되지 않을 서로 다른 세대와 언어, 인종적 배경과 역사적 조건을 가진 두 여성의 기억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건너가는 동안 문장은 조금씩 닳고, 어긋나고, 뜻밖의 리듬을 얻는다. 누구의 기억이 누구의 문장을 빌려 도착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지점에서, 여러 시간과 화자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미래로 향한다.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른 입을 빌려 계속 도착하는 시간이다. 미래시제로 말해지는 사건들은 회상이라기보다 예감처럼 들리고, 기억은 소유가 아니라 경유가 된다. 한 사람의 몸에 새겨졌던 시간이 다른 몸으로 이접되는 동안, 언어는 불완전한 매개로 그 사이를 잇는다.

주워들은 이야기.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입안에 남아 계속 불리는 한 유행가의 멜로디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은 세대를 건너도 여전히 남아있다. 임영주의 〈가쿠메이 鶴鳴〉(2026)는 작가의 고백적 서사를 통해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유산이 어떻게 끝끝내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지고 변형되는지 살핀다. 임영주는 자신의 기억에 아스라히 남은 할머니의 학 울음 흉내와 암호 같은 일본어, 그리고 학춤을 추는 어머니의 몸짓과 내밀한 고백을 교차시키며, 한 가족 안에 남겨진 무속의 잔여와 흉내, 전승, 거부와 동경이 뒤엉킨 감각을 불러낸다. 시집간 첫날 마루 커튼 뒤에 숨겨진 신당을 보고 한 달간 밥도 못 먹을 만큼 무속을 무서워했던 스물네 살의 어린 며느리는, 세월이 흐른 뒤 딸의 카메라 앞에서 다시 몸을 움직인다. 무당집은 싫어하면서도 굿 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이중성은, 지워졌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다른 형식으로 몸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기록과 흉내, 전통과 잔여, 공포와 친밀감의 경계는 느슨하게 멀어지고 여전히 가깝게 붙어있다. 우리는 뜻을 다 잃고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몸짓과 같이 해독되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품고 살아간다.

옮겨지는 믿음. 1836년부터 통용된 ‘청동기(Bronze Age)’라는 시대 구분은 뒤섞여 발견되는 유물들의 관계 패턴을 읽어내 특정 시대의 경향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가 여러 겹으로 뒤섞인 채 미래로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한편, 사진이 객관적 기록의 장치로 신뢰되던 시절, 그 믿음은 실물 캐스팅 의혹에서 오귀스트 로댕을 구해냈다—〈청동 시대〉(1877). 그러나 사진은 언제나 어느 것, 어느 때의 부분일 뿐이다. 로댕이 남긴 수천 개의 분리된 신체 조각—아바티(abattis)와 7천 점이 넘는 〈청동 시대〉의 기록 사진은 영영 전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들의 새로운 관계도를 상상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과 믿음을 경유한 김익현의 〈어느 청동기〉(2026)는 미술사적 재배열을 넘어, 역사와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누락과 이데올로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짚어낸다. 그 시선은 식민지 조선과 전후 한국의 동상 건립 문화로 확장되어 한·일의 근현대 동상을 추적하며, 인물 조각이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음을 환기한다. 정치와 사회적 신념이 바뀔 때마다 시대의 조각은 파괴되거나 이동하고 다시 세워졌다. 어떤 조각은 녹여져 다른 동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동상의 저자는 다음 세대에 의해 동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시대를 통과해 지금 우리에게 당도한 현재는 여러 번 해체되고 엉키며 다시 옮겨지는 진실, 또는 믿음의 흔적이다.

한 사람, 사건, 시대는 그것을 기억하는 누군가를 기대어 잔류한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라고 믿는 순간은 실상 과거와 미래의 혼재이며, 발화하자마자 사라지는 목소리처럼 이미 과거로서 새로운 지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왜곡을 받아들이는 것, 더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것, 그리하여 정답이라고 착각하는 방향을 비껴가는 경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정서영의 〈무제–트랙2〉(2012/2026)는 길거리의 지각 경험을 언어와 소리로 치환하며, 소음과 발자국 소리가 뒤섞인 청각적 층위 속에서 보지 않고 듣는 감각을 통해 시각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디오속 인물이 주택가와 대로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을 즉흥적으로 묘사할 때, 본 것을 말로 옮기는 찰나의 침묵과 생략, 기억의 간섭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일상적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시각이 언어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어긋남의 틈 사이 사운드와 언어 사이의 역동이 하나의 조각적 사건이 된다. 어긋남은 규정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읽기와 다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틈이 된다. 한 개인이 고정된 하나의 문장 안에 담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중에 변치 않을 것도 있다.

* 나의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강성숙은 1930년 북한 함경도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중 이미 결혼한 언니를 두고 나머지 형제들과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피난와 가정을 꾸렸다. 조금 이르게 남편과 사별 후 홀로 키우던 자녀들이 장성하자, 197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주한 형제들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10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며 살았다. 나는 할머니표 삼겹살 샌드위치 맛을 잊지 못한다.
- 장혜정(큐레이터)


작가 소개
김익현(b.1985)은 사진과 영상 매체를 통해 과거-현재라는 시간과 다양한 단위의 얽힘이 만드는 세계를 상상하고 관찰한다. 시청각 랩(2025, 서울), 경기도미술관(2020, 안산), 산수문화(2017, 서울), 공간 지금여기(2016,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2024, 과천), 웨일리아트(2024,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과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2022 부산비엔날레(2022, 부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2016, 서울) 등 국제전에 참여했다.

임영주(b.1982)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미신과 신념, 종교적 믿음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스페이스 제로원(2026, 뉴욕, 미국), 페리지 갤러리(2024, 서울), Hall1(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2025, 서울), 서울시립미술관(2025, 서울), 루드비히 미술관(2023, 코블렌츠, 독일), 아트선재센터(2021, 서울), 타이베이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2019,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으며, 2025년 올해의 작가상 4인으로 선정되었다.

정서영(b.1964)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위상과 관계에 주목하며, 조각의 범주를 확장하고 사물과 세계의 연결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왔다. 개러지 갤러리(2026, 도하, 카타르), 티나킴 갤러리(2024, 뉴욕, 미국), 서울시립미술관(2022,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9회 카네기 인터내셔널(2026, 피츠버그, 미국),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제11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2024, 브리스번, 호주), 기륭미술관(2024, 기륭, 대만) 등에서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조은영(b.1985)은 한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언어, 물질, 기억이 서로에게 가하는 압력과 그 상호작용을 다룬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4, 서울), 홀만 아트&미디어 센터(2023, 인클라인 빌리지, 미국), 선뷰 런쳔(2022, 브루클린,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루이스 홉킨스 언더우드 아트 센터(2023, 러벅, 미국), 퍼스오프 아티스트 콜렉티브(2022, 밀포드, 미국), 폭시 프로덕션(2022, 뉴욕, 미국)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https://www.doosangallery.com/en/exhibitions/detail/237